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디디 Nov 17. 2019

사무실에서 집으로, 집업실 생활


집 + 작업실,

집업실


한평 남짓한 작은 방을 작업실로 만들었다. 그래 봐야 책상과 책장, 컴퓨터가 전부이긴 하지만. 작은 책상을 처분하고 로망이었던 크고 기다란 책상을 새로 들였다. 덕분에 작은 방이 더 좁아졌다. 좁지만 하루 종일 앉아서 일해도 질리지 않을 만한, 마음에 드는 구조로 가구를 이리저리 재배치했다. 사실 재배치라고 하기엔 방이 워낙 좁아서 경우의 수는 적었다. 아무튼 드디어 다시 시작됐다. 집에 있는 작업실, 이름하여 집업실 생활!


초창기 나의 집업실 책상엔 달랑 노트북 하나였다.



집에서 일을 하는 게 어려운 이유는 아마도 ‘집이니까’, ‘집이어서’, ‘집이기 때문에’. 집만큼 편안한 곳은 없으니까, 바로 일에 집중하기 위한 방해 요소들이 많다는 데 있다.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드러누울 침대가 가까이에 있다는 점, 아무 생각 없이 멍 때릴 수 있는 tv가 있다는 점, 그리고 나에겐 곳곳에 눈에 거슬리는 살림살이가 매일같이 보인다는 점 등등. 다양한 유혹이 있기도 하지만 반대로 남편이 출근하고 나면 이 텅텅 빈 집 전체가 나의 사무실이 될 수 있다는 점은 나에게 가장 중요한 장점이었다.


본격적인 집업실 생활을 시작하면서 스스로 꼭 지키기로 한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출근하는 남편 배웅해주기, 나머지 하나는 일이 있을 경우, 아무리 늦어도 9시엔 업무 시작하기. 집이기 때문에 가장 흔들리기 쉬운 부분을 아예 사전에 차단해버리겠다는 의지였다. 출근하고 없는 꼭두새벽의 시간부터 남편이 퇴근하고 집으로 오는 그 시간까지. 아이가 없는 내겐 그 시간 전부를 자유롭게 컨트롤할 수 있는 오롯이 내 시간이다. 이 두 가지를 지키는 건 프리랜서로서의 나, 아내로서의 나. 두 역할을 모두 만족시키는 기본적인 일이라 여겼다.


출근하는 남편을 배웅해주고 나면 나의 집업실 생활이 시작된다. 일이 몰려있지 않은 날이면 잠깐 눈을 붙이곤 하지만(그럼에도 지키는 9시!), 일이 제법 있는 날엔 일찍 하루를 시작한다. 침실에서 그냥 몇 발자국이면 닿는 나의 집업실. 컴퓨터를 먼저 켜 두고 공복에 마실 쓰디쓴 아메리카노 한 잔을 내려 책상 앞에 앉으면 집업실 업무가 시작된다.


몇 년간 이어온 집업실 생활을 통해 얻은 건, 일이 많을 때 집중이 가장 잘 되는 시간은 오히려 이른 아침 시간이라는 것. 희한하긴 하지만 글을 쓰기에도, 아이디어를 쏟아내기에도 보통의 창작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과 다르게 나는 밤보단 이른 아침이 더 효율적이다.


처음부터 완벽하게 지켜내진 못했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시간 분배에 있어서만큼은 마스터를 한 것 같다. 비록 클라이언트의 일정은 언제나 유동적인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그럼에도 나는 일정을 칼같이 지켜내고자 한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스스로 설계하니, 때로는 미팅을 나갔다가 좋아하는 서점에 들러 책 한 권 사 올 수 있는 여유도 생겼다. 집업실에서 일하는 중간에 빨래를 돌리는가 하면, 잠시 바람 쐴 겸 장 보러 마트에 다녀오기도 한다. 회사에 다닐 때보다 저녁 준비를 할 시간적 여유가 좀 더 생겼다. 조금씩 내 시간도 지켜내고, 클라이언트의 시간도 지켜낸다.


아마 혼자였다면 실패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니 어쩌면 혼자였으면 시작도 못했을 일이다.

그리고 언제나 그 중심에는 나와 남편이 있다.


햇수로 4년째 이어오고 있는 나의 집업실 생활. 일과 삶의 균형을 찾는다는 말은 뭐랄까, 인생에 있어 굉장히 커다란 주제를 짓는 느낌이다. 일과 삶의 균형, 뭐 별거 있나. 그저 회사에서보다는 조금 더 주도적으로 일을 할 수 있고, 퇴근하고 돌아올 남편과 함께하는 저녁 한 끼를 위해 조금 더 시간을 내어 식사 준비를 할 수 있는 삶. 일에서든 삶에서든, 조금 더 즐겁고 조금 더 시간을 낼 수 있는 것에서 잦은 행복감을 자주 느낄 수 있으면 되는 게 아닐까?


집업실 생활이 언젠가 다시 끝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그게 일이 점점 늘어나서 사무실을 구해야만 하는 상황이라면 좋은 일이겠지만, 반대로 일이 없어서 다시 직장을 구해야 하는 상황에 처할지도 모른다는 생각 말이다. 지금의 프리랜서 생활에선 가혹하고 슬픈 결과지만, 그런 순간이 오더라도 나는 기쁘게 돌아갈 수 있다. 회사든, 프리랜서든 조금씩 채워나가는 지금의 행복을 이어갈 수만 있다면!


    

작가의 이전글 회사생활의 끝, 프리랜서가 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