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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디 Nov 17. 2019

49vs 51


49대 51. 유독 결정을 심하게 못하는 나에게 언젠가 남편이 해준 말이다. 살면서 겪는 대부분의 결정은 49대 51의 확률이라며, 결정을 위해 90, 100에 이를 때까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스스로 괴로워하기보다 단 1의 차이로 어느 한쪽으로 기우는 순간이 오면, 그때 바로 결정을 하면 되는 거라고.


2016년 5월, 수년간 몇몇 회사를 거쳐가며 이어왔던 회사 생활에 마침표를 찍고 나는 곧바로 프리랜서 생활을 시작했다. 어쨌든 프리랜서가 되고 나서 가장 먼저 해보고 싶었던 일은 내 작업을 해보는 것. 디자이너라면 누구나 다 '해보고 싶을' 일이었다. 회사에 소속되어 여러 가지 제약 속에 진행해야 하는 일들 말고 '처음부터 끝까지 내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어 내보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즈음에 짧게 다녀왔던 일본 여행 이야기를 가지고 나는 회사를 그만두자마자 곧바로 작은 책자로 만들었다. 굉장히 소량이었지만, 나는 그 책을 여러 작은 독립 서점에 조금씩 입고했다. ‘독립출판’의 시작이었다.


그다음엔 조금 더 욕심을 내어 두 번째 책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블로그에 틈틈이 적어놓았던, 2016년도에 다녀온 런던과 암스테르담, 델프트 여행 글을 한데 모아 다시금 고쳤다. 여행 중에 찍었던 사진들을 훑어보며 내용을 구상하고 콘셉트를 정해가며 ‘책’의 형태를 갖추기 위해 노력했다. 내 작업, 그러니까 시작은 포트폴리오였지만, 적어도 사람들이 이 책을 읽는 동안 ‘여행하는 기분’이 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아무도 모르지만 스스로에겐 최선을 다했다.


원고에서부터 디자인, 인쇄까지의 모든 과정은 내가 할 수 있었지만 유통만큼은 너무 어려운 숙제 같았다. 그래서 내 책을 유통해줄 수 있는 출판사를 찾았다. 애초에 예상했던 시간보다 훨씬 시간이 흘러 책은 2년이나 지나서야 세상에 나왔지만, 결국 나는 직접 만든 두 번째 책을 완성했다. 사실 큰 금액의 ‘제작비’ 앞에 머뭇 거리던 순간이 많았다. 그래도 기어코 해냈다(?). 스스로 대견했다.


모든 것을 스스로 한 작업, 인쇄소에서 감리 보던 날


책을 만드는 ‘49대 51’의 확률에서 1은 스스로에 대한 도전이기도 했지만, 언젠가 이 책을 읽을 사람들에게 주고 싶은 도전이기도 했다. 누구나 하나씩은 가지고 있을 진행 중인 무언가를 이 책을 기회로 각자 도전해보길 바라는 마음으로 말이다. 나도 이렇게 해냈으니, 당신도 충분히 이렇게 할 수 있다고.


이제는 책을 만들고 6개월도 넘는 시간이 훌쩍 지났지만, 하나의 결과물을 위해 처음부터 끝까지(유통을 제외한) 혼자 다 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비록 책이 많이 팔린 건 아니지만, 그 덕분에 일을 할 때에도 그리고 클라이언트와 미팅을 하거나 제안을 하는 일도 훨씬 수월해졌다. 무슨 일이든 전체를 통틀어 진행해보고 나니, 시야가 이전보다 넓어졌다.





결정을 앞에 두고 늘 고민하던 내게 남편이 해준 이 말은 결정을 쉽게 내리지 못하는 나에게 강력한 처방전과 같은 약이 되었다. 당장 먹고 싶은 음식을 골라야 하는 사소한 메뉴 선택에서 새로운 일의 시작을 앞두고 선택을 해야 하는 중요한 결정까지. 100에 가까울 만큼의 결정은 없는 거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물론 49대 51이 아닌 40대 60, 혹은 30대 70의 확신이 설 때까지 기다려도 되겠지만, 되돌아보면 결국 답은 1에 기운 쪽이었다.


사실 우리는 어쩌면 이미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모든 결정에 앞서 50대 50의 딱 맞는 평행선과 같은 고민은 거의 없다는 걸.

아주 살짝, ‘1’이 어디로 기울어 있는지만 잘 살펴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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