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말했던 동백이라는 위로와 보상은 과연 나에겐 무엇일까?
오전에 보내야 할 시안을 메일로 보냈고, 도착하기로 한 교정지를 받기 전까지 시간이 잠깐 남았다. 오랜만에 갖는 잠깐의 여유. 100일 글쓰기를 실천한 덕에 잠깐의 비는 시간을 어찌할 바 몰라 고민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서 마음이 놓인다. 세 번째 글까지 쓰고 나면, 작심삼일은 통과한 셈이다.
꾸준히 무언가를 한다는 건 생각보다 대견한 일이다.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을 뿐이지. 어제 자기 전 웹서핑을 하다가 우연히 오정세 배우의 수상소감을 보게 되었다. ‘열심히 사는 보통 사람’이 마치 내 모습 같았다. 꾸준히, 그저 내 할 일 열심히 하는 보통 사람, 보통 디자이너.
“세상에는 참 많은 열심히 사는 보통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런 분들 보면은 세상은 좀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꿋꿋이 그리고 또 열심히 자기 일을 하는 많은 사람들이 똑같은 결과는, 그분들에게 똑같은 결과가 주어지는 건 또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좀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망하거나 지치지 마시고 또 포기하지 마시고 여러분들이 무엇을 하든 간에 그 일을 계속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자책하지 마십시오 여러분 탓이 아닙니다. 그냥 계속하다 보면은 평소에 똑같이 했는데 그동안 받지 못했던 위로와 보상이 여러분들에게, 여러분들을 찾아오게 될 것입니다. 저한테는 동백이가 그랬습니다.”
언젠가 같은 프리랜서 동료인 친구와 ‘천만 원짜리 일 딱 5개만 하며 살고 싶다’는 농담을 주고받은 적이 있다. 그 정도만 하면 먹고살만할 것 같았다. 그야말로 농담이다. 지금의 내 현실에선 그렇게 될 수가 없다. 그만큼의 수익을 내려면 나는 수없이 쪼개진 만큼의 일을 해야 한다.
대학에 다닐 때도 ‘유명한 디자이너가 되겠어!’ 같은 큰 포부는 없었지만 디자인은 늘 잘하고 싶었다. 디자인을 잘하고 싶다는 마음은 십수 년이 훌쩍 지나도 여전히 그대로다. 가끔 스스로에게 던지는 지금 잘하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 앞에는 ‘지금 상황에서 충분히’라는 말이 덧붙는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한다고 늘 생각은 하는데,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아서 속상한 적이 많았다. 프리랜서가 되고서는 더 그랬다. 나는 여러 클라이언트의 일을 동시에 하는 경우가 많지만, 클라이언트는 그렇지 않으니까. 내가 10개의 일을 쥐고 있어도, 어차피 각각의 클라이언트에겐 1개의 일일 뿐이니까.
생각보다 금액이 (너무) 적을 때, 내가 생각한 시안과 클라이언트가 선택한 시안이 다를 때, 얘기했던 일정에서 훨씬 길어지고 늘어질 때... 별의별 상황이 다 있지만, 보통 사람인 내가 별 수 있나. 원래 그랬듯, 그냥 주어진 일들을 열심히 하는 수밖에.
하루에도 수백 종의 새로운 책이 나오고, 어제는 존재하지 않았던 상품이 오늘은 출시하게 되는 날들을 산다. 지금 글을 쓰고 있는 기계인 아이패드를 디자인한 디자이너가 있는가 하면, 검색을 하지 않으면 접하기는 조금 어려울 수도 있는, 그런 책을 만들고 매거진을 만들고, 로고를 만드는 디자이너도 있다.
내가 보기엔 이미 오정세는 대단하고 훌륭한 배우다.
그가 말했던 동백이라는 위로와 보상은 과연 나에겐 무엇일까?
상금? 트로피? 명예?
에이, 무슨.
나는 그저 늘 애써주셔서 고맙다는 말 한마디도
여운을 오래 간직하는 사람인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