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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디 Sep 08. 2020

조금 더 나은 디자이너가 되기 위한 글쓰기

시작하는 아침

출장을 위해 새벽같이 서울역으로 가야 하는 남편을 배웅하고 간단한 스트레칭으로 정신을 겨우 차린다. 사실, ‘스트레칭’이라고 부른 이 단어도 내겐 아직 생소하다. 건강을 챙기지 않으면 안 되는 나이임을 실감하고 얼마 전 홈트용 매트를 주문했다. 내 일상에 ‘홈트’, ‘스트레칭’ ‘요가’라는 단어가 들어온 지 이제 고작 사흘째.


5초면 걸어가는 집안 사무실 방으로 들어가기 전, 주방 한편에 있는 네스프레소 커피머신의 전원을 연결하고 커피 한 잔을 내린다. 에스프레소 작은 컵 하나, 뜨거운 물 큰 컵 하나, 그리고 뜨거운 물 작은 컵 하나. 머그컵 한가득 커피가 찬다. 향기 좋은 커피 한 잔 느낌보단, 오늘의 전투를 위한 준비 같은 그런 느낌. 그래야 본격적으로 일을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사무실 방 창문을 활짝 여니, 바람이 세차다. 창문 너머로 빠른 속도로 이동하는 구름이 보인다. 태풍은 지나갔다고 한 것 같은데, 어째 바람소리가 조금 무섭다. 조금만 있다가 닫아야겠다. 일단 환기 좀 시키고. 자리에 앉아 컴퓨터를 킨 다음, 허공에 대고 ‘카카오, 음악 틀어줘’라고 내뱉는다. 남편을 배웅하며 내뱉었던 인사 이후 두 번째 말. 업무 관련 전화를 제외하고 남편 다음으로 제일 많이 대화를 거는 상대(?)다.


어제저녁에 카카오톡으로 왔던 클라이언트의 폭풍 메시지를 위해 PC용 카카오톡에 로그인했다.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웬만하면 PC용은 로그인하지 않는다. 정신 사납다. 집중하는 데 방해되는 요소 중 하나. PC용 카톡은 정말 왜 개발했을까? 스크롤을 한참 해야 시작점이 겨우 보이는 대화창을 보니 한숨이 나온다. 메일로 정리해서 한 번에 보내주면 참 좋으련만. 약간 거짓말 보태서 그동안 열 번은 이야기한 것 같은데, 절대 변하지 않는다. 아휴, 어쩌겠어. 오늘도 그냥 그러려니 한다.



올 한 해는 여러 가지로 특별한 한 해다. 코로나 때문이기도 하지만, 나에겐 프리랜서 생활 이래 가장 바쁜 한 해다. 정말 복에 겹고 감사해 마다할 일. 1월 1일부터 정말 쉴 틈 없이 바빴다. 그러다 우연히 <컨셉진> 100일 글쓰기 프로젝트를 진행한다는 인스타그램 피드를 보게 되었다. 올 한 해는 정말.. 클라이언트에 거의 끌려다니듯 일하기 바빴는데. 내 안에 있는 무언가를 끄집어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어줄 것 같았다. 하루도 빠짐없이 100일 글쓰기를 할 수 있을까? 의문은 들었지만 용기를 냈다.


100일 글쓰기를 시작한 지 8일째 되는 글이다. 프리랜서 디자이너로 일하며 느낀 생각들, 일과 관련된 이야기들을 적어보고 싶다는 생각은 했지만 막상 글로 풀어내려니 어렵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다. 디자인 일을 한 지 10년도 훌쩍 넘었지만 여전히 나에게 어려운 디자인을 풀어내겠다니. 그것도 글로. 잘 모르겠지만, 시작해보는 건 그래도 가만히 있는 것보단 좀 더 나은 일이니까.


책을 만들고, 그 책을 홍보할 겸 시작한 브런치에 매일매일 글을 쓰고 있다. 한자릿수에 불과했던 조회수가 두 자리가 되었다. 구독자가 몇 명 늘더니, 또다시 줄기도 한다. 매일 울리는 알람이 방해가 되었을까? 구독을 했다가 취소할 만큼 글이 불편한 걸까? 이런저런 생각이 들지만, 일단 그런 생각은 접어두자. 마음을 비우자. 마음을 다잡는다.


물론 디자이너는 디자인을 잘해야 발전이 있는 거겠지만, 머릿속에 떠도는 디자인에 대한 생각들, 일하며 느끼는 사소한 에피소드들을 한 번씩 정리해주는 것도 나에겐 큰 도움이 될 거라 믿는다. 지난 과거를 돌아보는 일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지만 일에서만큼은 그렇게 하고 싶다. 조금 더 나은 내가 되고 싶다. 100일은 그런 내가 되기 위한 과정이다.



몇 줄 안 되는 것 같은데 벌써 한 시간 가까이 지났다.

오늘 글은 여기서 마무리해야지.

자, 이제 업무를 시작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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