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디디 Sep 12. 2020

부탁과 거절 사이

풀지 못하는 문제

메일을 써볼까, 전화를 해볼까 한참을 고민한다. 이 불편한 마음은 올해 들어 유독 심해져 스트레스가 된다. 메일이든 전화든, 이야기를 꺼내 속마음이라도 편하면 좀 더 낫지 않겠냐며 남편에게 조언을 구해보았다. 돌아오는 답변은 반신반의. 속은 편하겠지만, 그 일로 그런 고민조차 할 기회가 없어져버릴 수도 있는데 괜찮겠냐고 한다.

올해 언젠가부터 A의 일에 A+1, A+1+1의 일이 더해지고 있다. 예고 없이 늘어나는 일들, ‘부탁’이라는 이름 하에 늘어나는 일들이다. 다른 클라이언트와 일을 할 때는 대게 다 별도의 비용이 청구되는 것들이다. 공과 사를 확실히 구분하는 나에게 이런 부탁은 나에게 엄청난 스트레스다. 일은 일인 건데.. 상대방은 그렇지 않은 것 같아 늘 괴롭다. 상대방은 부탁이지만 나에겐 그게 다 일이란 말이다.

치킨 한 마리 시키면서 몇 조각 서비스로 그냥 더 달라고 부탁하는 꼴. 뭐 단골이면 서비스로 몇 조각 더 줄 수 있지 않을까 싶지만, 그 몇 조각이 점점 늘어나면? 그럼 금세 반 마리가 될 텐데? 그렇게 괴로우면 그냥 이야기를 해서 비용을 청구하거나, 아니면 못하겠다고 하면 되지 않냐고? 그게 그렇게... 쉽게 해결될 일이 아니란 말이다. 절대. 나는 풀지 못하는 문제처럼 너무 어렵다. 이런 문제가. 이런 상황이.

클라이언트의 사정도 안다. 뻔히 보여서.. 사실 말하기도 어렵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프리랜서로 홀로서기를 시작할 무렵, 나에게 일을 주기 시작했던 분이다. 그 고마움을 알기에 더더욱 어렵다. 하소연이라도 하면 속이 후련해질까 싶은 건데, 남편은 그럼 미안하고 불편해서 앞으로 일을 안 맡길지도 모를 일이라고 했다. 물론 남편 생각이긴 하지만, 주로 클라이언트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기에 그냥 흘려 넘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한참을 생각했다가 결국 이번에도 그만두기로 했다.
혹시라도 더 이상 일을 주지 않게 되더라도
생계에 지장이 없게 되는 날 이야기해보는 걸로.

풀지 못하는 문제처럼 정답을 여전히 모르겠지만,
그래도 글로 적어놓고 나니 아주 조금은 후련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어떻게든 되겠지 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