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디자인의 꿈을 가진 학생이 IT기업 UX/UI 디자이너가 되기까지
목표가 사라진다는 것을 ‘무망감’이라 한다지요
최근에야 N잡과 업종 간의 이직이 활발해졌지만 대부분 직업 하나를 결정하면 평생의 업으로 살아가는 케이스가 많다. 그렇기에 대학생 때 평생의 업을 어떤 직무로 해야 좋을지 참 고민을 많이 했었다. 지금은 UX/UI 디자이너가 되었지만 과거에는 내가 이 길을 걷게 될 줄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 13살부터 패션ㆍ구두 디자이너라는 꿈이 확고했던 학생이었기 때문이다. 학창 시절 모두가 해봤을 시험지와 교과서에 낙서를 할 때도 옷과 신발에 대한 그림만이 가득했다. 그렇게 어렸을 적 목표대로 입시 때 패션디자인과를 지원했는데 그중에 한 학교는 상황상 시각영상디자인과에 지원하게 되었다. 결과는 모두가 예상한 대로다. 결국 패션디자인과에 모두 떨어지고 가까스로 시각영상디자인과에 합격했다.
학교를 다니면서도 한동안은 시각디자인과를 졸업하면 어떤 직무의 길을 걷게 되는지 몰랐다. 그저 재미없는 컴퓨터 툴을 다뤄야 하는 학과라는 것만 알았다. 그야말로 대학 입학은 재수 성공과는 별개로 7년간 꿈꿔왔던 직업과의 영원한 작별이었고 큰 목표가 사라져 버린 대형사고였다. 그동안 그려온 미래에는 ‘패션디자인’ 외에 다른 선택지가 없었는데 그렇다고 삼수 생활을 할 용기도 없었다. 재수 때 우울증을 심하게 앓은 상처가 있기 때문이다. 일단 컴퓨터를 다루는 데에 소질이 없어서 학과 생활에 도무지 흥이 나지 않았다. 설상가상 동기들 중에는 포토샵, 일러스트레이터 프로그램을 이미 잘 다루는 친구들도 많아 위축되기만 할 뿐이었다. 그렇게 목표를 잃어버리고 나니 학과 생활 따위 될 대로 되라지 하며 감정 없는 학업 공부를 이어갔다.
"고통은 견딜 수 있으나 목표가 없으면 견딜 수 없다."
얼마 전 MBC 선을 넘는 녀석들에서 나온 ‘무망감’이라는 단어는 당시를 떠오르게 했다. ‘무망감’은 계획과 목표가 없어져 희망을 새로 만드는 것 차체를 못하는 것이다. 스물 한 살의 나는 동아리 활동만을 열심히 하며 영혼 없는 1년의 대학생활을 마쳤다. 하지만 점차 그 생각은 바뀌기 시작했다. 전액 장학금을 타면 유럽여행을 보내주겠다는 부모님의 말에 학과 수업에 열심히 참여하게 된 것이다. 애초에 해보지도 않고 소질이 없다고 판단을 내려버린 것은 잘못된 판단이었다. 생각보다 학과 강의들은 적성에 맞았고 과제에는 영혼과 진심이 담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재미있는 것을 열심히 하니 학기 말에는 전액 장학금을 탈 수 있었다.
'목표'라는 것이 다시 생겼습니다
시각디자인과에서는 브랜딩, 영상, 캐릭터 디자인 등 굉장히 다양한 분야의 직무 기회가 주어진다. 그중에서도 UX/UI에 발을 담그게 된 계기는 이렇다. 3학년 때 과제가 헬이라고 유명해 기피했던 교수님의 ‘인터랙션 디자인’ 강의를 들은 것이다. 그 교수님의 강의는 하나의 앱 서비스를 기획부터 프로토타입까지 완성해서 포트폴리오를 만드는 수업이었다. 팀플로 진행되어 협업이 중요했고 그와 더불어 과제가 많은 것은 덤이었다. 처음부터 지레 겁먹고 시작했었지만 팀플을 하며 팀원들과 논의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점과 해결 도출 과정에서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그리고 그런 과정을 통해 제시한 해결방법이 사용자의 편의를 증가시킨 다는 것에 매료되었다. 어릴 적부터 미래에 어떤 직업을 가지게 되던 세상에 선한 영향을 끼치고 싶었기 때문이다. UX/UI 디자이너는 사용자의 불편함을 해결해 주는 해결사 같아 보였다. 매일 같이 반복되는 야간작업으로 몸은 힘들었지만 끝에는 A+라는 점수와 함께 UX/UI 디자이너라는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무망감을 가졌던 상태에서 완벽히 벗어난 순간이었다. 새로운 신기술에 대해 공부하고 그 기술을 통해 공공의 이익이 되는 앱 서비스를 기획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렇게 하면 UX/UI 디자이너 되는 것 맞나요?"
학교에서는 선배와의 교류가 거의 없었다. 특히 UX/UI 디자이너 선배와의 교류가 없었기 때문에 무엇이든 기회가 오면 도전했다. 인생을 살면서 이렇게까지 노력한 적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열심히 했다. 그렇게 밤낮없이 생활하다 보니 과로로 인해 과호흡이 왔고, 숱한 몸살과 염증은 일상이었다. 결국 그 노력은 지금의 회사에 취직을 가능하게 했다. 하지만 취업 성공은 끝이 아닌 또 다른 시작이었다. 아직도 많이 부족한 주니어 디자이너이기 때문에 홀로 다양한 고통을 맛보고 있다. 하지만 목표가 있다는 사실은 내 몸을 열정적으로 움직이게 한다.
평생 목표로 하는 것이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입니다
입사 날 출근하며 다짐한 것이 있다. 앞으로 1년간은 회사에 적응을 하고 난 뒤, 그 이후부터는 다시 다음 목표를 향해 달리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시기는 바로 지금이다. 여러분은 마치 폭주기관차처럼 성장을 향해 불을 뿜으며 달려 나가는 주니어의 글을 읽고 있다.
나의 다음 목표는 이렇다. 스타트업에서 사수없는 나 홀로 디자이너로서 다양한 업무를 맡고 난 뒤, 그중 가장 잘 맞는 업무를 찾아 열심히 파고들어 가고 싶다. 깊은 공부를 위해 미국에 가서 석사학위를 따고 열심히 배운 만큼 더 큰 편리함을 사용자에게 선물하고 싶다. 바램이라면 일하게 될 분야가 좀 더 교육적이고 공익적이면 좋을 것 같다. 처음 UX/UI 디자이너가 되고자 했을 때 다짐했던 것처럼, 10년 후에는 지금보다 성숙하고 영향력 있는 디자이너가 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긍정적이고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싶다.
이렇게 평생 이루고 싶은 꿈을 가지고 실행한 다는 것은 삶에 있어 큰 동기부여가 된다. 물론 누구나 평생 계획하던 목표를 순식간에 잃어버릴 수 있다. 조그마한 압정에 찔려 아파하는 사람이 있고 안 아파하는 사람이 있듯, 고통의 크기와 지속기간은 각자 다를 것이다. 하지만 길게 아파하지 말고 잠시 쉬었다가 다음 목표를 서서히 찾아보자고 말하고 싶다. 불행이라 생각했던 곳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패션 디자이너의 길을 꿈꾸었던 6년 전 나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항로의 키를 돌렸다. 그리고 마침내 폭풍우를 뚫고 잔잔해진 바다를 만났다. 잠시 잔잔해졌다고 거친 파도와 폭풍우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 선택에 만족한다. 말하기 쑥스럽지만 인생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 모두 그렇게 자신만의 항해 길을 찾아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