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회사에서 UX UI 디자인을 합니다.
주 1회 오피스 주 4회 재택근무를 하고 있습니다.
재택근무를 한다고 하면 다들 부러워합니다. '나도 재택근무 하루만 해보고 싶다~!'라고요. 근데 전 재택근무에 회의적인 사람이었습니다. 디자인을 하기 전, 2년간 재택근무를 했었던 적이 있는데 그때만 해도 재택근무를 돕는 협업툴도 별로 없었어요. 소통의 부재, 관계의 부재... 교류가 적거나 없다는 부분이 가장 힘들었고, 일 욕심 많은 편이라 업무의 on/off가 분명하질 못해서 재택근무의 수많은 장점들을 뒤로하고 현장 근무를 선호해 왔습니다. 그런데 요즘 새삼 재택의 묘미를 느끼고 있어요.
(1) 홈 오피스 변천사
처음 재택근무를 했을 때와 비교해 보면, 그 사이 삭막했던 제 방은 식물로 가득해졌어요. 방에서 머무는 시간이 많아지니 자연스럽게 환경에 신경이 쓰이더라고요. 하나에 3000원? 작은 모종일 때부터 키워서 지금은 제법 규모도 많이 커졌답니다. 덕분에 하루종일 집에 있어도 답답하지 않아요. 공기정화/전자파차단은 물론 모르는 새 피어난 새싹으로부터 좋은 에너지도 듬뿍 받습니다. 또한 식물이 만들어준 소일거리들이 업무에서 잠시 빠져나와 리프레쉬하는데 도움을 주기도 해요. 주 1회 물 주기, 가지치기, 화분 갈아주기, 거치대 설치해 주기 등이요.
(2) 새로운 고민 등장
게다가 기술도 많이 발전했잖아요? 개더만 해도 그래요. 타임존이 다른 다양한 나라의 팀원들이 가상 오피스에서 매일 만날 수 있다니. 다수가 모여 회의를 진행하는데도 연결이 자연스러워요. 딱 10년 전 캐나다에서 어학연수를 했어요. 시차를 고려해 시간을 맞추고 스카이프를 통해 화상전화를 하는데 그조차도 연결이 원활하지 않아 끊기곤 했었거든요. (웃음) 이제는 기술적 어려움이 사라지고 새로운 고민이 생겼습니다. 실제로는 만나본 적 없는 팀원들과 어떻게 get close 할 수 있을까요? 지난번에는 internal process 개선을 목적으로 팀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는데요. 사실 설문은 핑계고 말 한마디 더 걸어볼 요량으로 진행했답니다. 괜히 이름을 이렇게 부르면 되는 거야? 라며 한마디 더 건네어보고 말이죠.
(3) 재택근무 인식 변화
재택은 집중을 방해하는 요소가 많다고 생각했어요. 예를 들면 포근한 침대? 아무도 나를 보지 않는다는 자유로움, 잠깐 개인 업무나 쇼핑을 할지도 모르죠. 프리랜서 생활을 오래 했어요. 근무한 시간만큼 돈을 벌었기 때문에 근무시간에 딴짓하거나 몰입하지 못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그래서 오피스에 나가야만 업무에 온전히 몰입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오피스에도 집중을 방해하는 요소는 있더라고요. 저만해도 그래요. 언제든 편하게 질문하라는 말을 덜컥 믿고 질문공격으로 팀원들의 업무 몰입을 방해하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인 거죠.
(4) 관리자는 바로 나
재택이지만 매일 옷도 단정하게 입고 가볍게 화장도 합니다. 태도를 중요하게 생각해요. 막 일어나서 부스스한 상태로 업무를 시작한다고 일을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흐트러짐을 쉽게 허용하고 싶지 않아서 흐트러짐 없는 상태를 유지하려고 노력해요. 하나를 허용하면 다음도 허용하고 싶어지는 게 인간의 본성이 아닐까 하고 말이죠. 혹시 이효리 님과 이상순 님 의자 일화 아시나요? 잘 보이지도 않는 의자 밑바닥을 열심히 사포질 하고 있는 이상순 님을 나무라던 효리 님께 상순님이 이렇게 말했다고 하죠. "내가 알잖아". 누가 보든 보지 않든 제가 알고 있기 때문에 저는 그렇게 하고 싶어요.
사실 근무방식이 뭐가 중요하겠어요. 구성원으로서 회사의 근무방식에 맞춰가고 그 안에서 업무가 효율적일 수 있게 환경을 다듬고 효율적인 업무 루틴을 만들어가야 하는 게 아닐까요? 이왕 시작한 재택근무와 잘 지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