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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signer Felicia Oct 15. 2021

퇴사 후 해외에 산다는 것

캐나다 밴쿠버에서 새로 커리어를 시작하는 UX 디자이너

한국을 떠나기 전, 그간의 안정적인 직장생활을 박차고 떠날 만큼 오매불망 원하던 해외유학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빨이 빠져버리는 꿈을 꿨다. 문자 그대로 'uprooted'된 기분이었다. 스스로가 느끼는 상반된 감정이 당혹스러웠다. 퇴사를 하면 시원할 줄 알았는데, 그렇게 원하던 제대로 된(?) 디자인일을 할 수 있는 첫걸음을 떼게 되면 신날 줄 알았는데 그런 긍정적 감정이 느껴지는 기간은 상당히 짧았다.

밴쿠버에 온 지 9달 정도가 지났지만 아직도 문화적 충격을 받을 때가 많다. 남의 나라 문화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말하는 것은 삼가려고 노력하지만, 여태 까지 나도 모르게 동경해왔던 서구 문화라는 것이 얼마나 허상이었는지를 깨달을 때마다 깊은 빡침을 경험하게 된다.


지금처럼 인터넷에 모든 정보가 있는 시대에도 어떤 지역이나 문화에 대해 이렇게까지 잘못된 이미지를 가지고 있을 수 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그냥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봤던 것 같다. 

의료 기록을 받으려고 팩스로 신청서를 보내고 그 팩스를 받았는지 확인하는 데에만 한 달이 걸렸고, 사는 건물의 엘리베이터가 4주째 작동을 안 해도 아무도 불만을 말하지 않았다. 한국은 장애인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데 비해 서구 사회는 배려심이 넘친다는 얘기를 오만 번은 들었던 거 같은데, 그 의도를 떠나서 실제 사는 데 있어서 더 편리한가에 대한 몹시 큰 의구심이 든다. 여기는 건전지부터 침대 매트리스까지 대형 생활폐기물을 구청에서 수거해가는 시스템이 없다. 자기가 직접 운반해서 동네 센터에 가서 폐기하거나, 매우 비싼 비용을 지불해서 폐기해야 한다. 동네 센터라고 모든 종류의 폐기물을 받아주는 것도 아니라 폐기물 종류에 따라 여기저기 찾아다녀야 한다. 포장이사라는 개념은 거의 없고, 수주에 걸쳐서 알아서 짐 싸고, 자기가 알아서 폐기물 처리하고, 이사한 후 손수 이삿짐 풀고 정리해야 한다. 주택의 비중이 높고, 택배를 받아주는 리셉션이 있는 아파트가 많이 없기 때문에 택배를 놓치게 되면 아무리 무거운 물건이라도 택배회사에 찾아가서 물건을 찾아와야 한다. 택배를 받기위해서 팀 회의에 지각한다는 건 우리나라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여기서는 그게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알기 때문에 좀 더 이해하는 분위기가 있다. 


결국 내가 장애인이거나 일시적으로 몸이 불편한 상태라면 계속 누군가의 도움을 받거나 엄청난 비용을 지불해야 하고, 딱히 몸이 불편하지 않다 할지라도 일상생활의 자잘한 오버헤드가 과도하게 큰 시스템이다. 매트리스를 거뜬히 옮길 수 있을만큼 근력이 좋지 않거나, 친구들에게 신세 지기 싫어하고, 경제적으로 크게 여유가 없는 사람이라면 서울에 비해서 정말 살기 어려운 곳이다. 품앗이 개념이 강하다는 점에서 더 옛날 시골스럽기도 하다. 그나마 지금은 Covid 때문에 많이 디지털화된 것이 이 정도라고 한다.


UX 디자이너로서의 직업병 때문에 우리나라에 살 때도 비효율적인 프로세스나 좋지 않은 사용자 경험에 분노를 많이 했지만, 아! 우리나라가 얼마나 뛰어난 나라인지 떠나 보기 전에는 정말 몰랐다. 캐나다 사회가 미국에 비해 진보적이고 사람들이 친절하다는 것도 보편화하기는 어렵다. 물론 미국에 가서 살아보면 또 기겁해서 '아! 캐나다가 얼마나 진보적이고 친절한 나라였는지 몰랐다'라고 생각할지는 모르겠다. 일단 밴쿠버는 캐나다 본토 사람의 비율이 적고, 아시아계 이민자가 많지만 백인우월주의는 은근한 형태로라도 남아있다. 새로 도착한 사람에 대한 차별은 매우 엄연히 존재한다. 친절한 사람도 있지만 진상들도 한국과 비슷한 비율로 있다. 서구라서 직설적인 커뮤니케이을 선호하고 위계도 없을 것 같지만, 직설적으로 문제 제기하는 것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달가워하지 않고 미묘한 권력관계를 잘 관찰해서 걸맞게 행동해야 하는 건 한국과 마찬가지이다. 특이할 점이 있다면, 우리나라에 비해 나이에 크게 관심 없다. 팀에 도움이 되는지, 어떤 기여를 할 수 있는지가 명확하면 누가 몇 살인지 크게 상관 안 한다. 물어봐도 얘기 안 하면 그만이다.


그렇다고 캐나다에 온 선택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개인적인 커리어 목표에는 부합하는 길을 걷고 있고, 나에게 꼭 필요한 시간이라고 믿는다.  한국에 다시 돌아가게 되면 격하게 감사하는 삶을 살 수 있게 되리라고 확신한다.


매우 힘겨워 보이던 다람쥐


그저께 재활용센터에 폐건전지를 버리러 가는 길에 나무에 올라가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다람쥐를 보았다. 보통 다람쥐들은 엄청 잽싼데, 오늘은 컨디션이 안 좋은 건지 비가 와서인지 너무 힘겨워 보였다. 우리나라에서의 힘겨움이 나무에 올라가는 기분이었다면, 밴쿠버에서의 힘겨움은 비 오는 날 나무에 올라가려고 애쓰는 기분이다. 밴쿠버는 비가 많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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