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열등감은 나의 원동력이었다.

진흙탕 속에서 활활 타오르는 '이직'이라는 투지

by 하니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열등감이 많은 디자이너였던 것 같다.


나는 지난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늘 내 처우가 못마땅했다.

내 연봉이, 우리 회사의 복지가, 팀장님이 나를 대하는 태도가, 팀에서 나의 역할이! 내가 맡은 일이! 전부 다!

이 갈망은 언제쯤 멈출까. 자존감은 높은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어째서 회사에 관해선 이렇게나 끝없이 욕심이 생길까.

혹시 나는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고 이상만을 좇는 ‘파랑새 증후군’이 아닐까? 그런 생각도 했더랬다.

하지만 일 욕심이 많은 디자이너라면 다들 한 번 쯤 느껴보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계약직 디자이너라 정규직 사람들의 목에 걸린 사원증을 보며 품은 부러운 마음,

남의 사무실에 얹혀서 일하는 외주 디자이너로서 느끼는 외로움,

안정적으로 일하는 선배들과 달리 매일 팀장님께 깨지기 바쁜 신입 디자이너의 고달픔,

나처럼 배너와 상세 페이지를 만드는 컨텐츠 디자이너가 뭔가 대단한 일을 하는 것 같아 보이는 UI 디자이너를 보며 느꼈던 열등감.


거기에 더불어 내가 하는 일이 ‘하찮은 잡 일’이라고 느껴지기 까지 할 때.

그 억울하고 초라하고 속상한 기분.



하지만, 그게 바로 나의 원동력이었다.


그 기분은 나를 자다가도 이불을 차내며 눈을 번쩍 뜨게 만들었고,

유난히 힘들었던 날, 나를 피곤하게 만든 거지같은 사람들을 짓눌러주겠다 생각하게 만들었으며,

느긋하게 밥 먹고 쉬다가도 ‘내가 이럴 때가 아냐!’ 라며 벌떡 일어서게 만들었다.

비참하고, 고되고, 짜증나는 일을 겪을 수록 나는 꺾이지 않고 속으로 칼을 갈았다.

나를 힘들게 한 상황에게, 사람에게 고맙기도 했다.

덕분에 오늘도 또 이렇게 강해집니다. 어디, 더 해보세요!


그 활활 타오르는 마음을 원동력으로, 퇴근하고 지쳐 쓰러질 것 같아도 컴퓨터를 키고 마치 무기를 다듬 듯 포트폴리오를 갈고 닦았고,

매일매일 습관처럼 즐겨찾기에 저장해 둔 각 회사의 공식 채용 홈페이지를 순차적으로 방문했다.

1년 365일 중 대부분이 이런 날들의 연속이라 가끔 더 이상 포트폴리오를 다듬을 게 없거나, 채용공고도 없는 날이면 ‘내가 뭘 하고 쉬었더라?’ 하고 방황하기도 했다.


이 쯤 되니 아마도 내 취미는 이직, 아니, 이직 준비였던 것 같다.

머리를 쥐어 짜내며 지어서 쓰는 자기소개서도, (요즘은 챗GPT에게 시키지만…) 짧은 기간 동안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 피를 토하며 작업하는 사전과제도, 심장이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은 면접까지, 그 모든 과정을 즐겼다.

이직 준비를 하는 동안엔 회사에서 아무리 나를 괴롭게 하고 힘든 일이 있어도 “괜찮아, 난 떠날 거니까!”라는 위안감을 느꼈다.

그러니 이 과정에 희열을 느낄 수밖에.


그리고 실제로 이직에 성공했을 때, 상위자와 동료들에게 “저… 이직하게 됐어요.”라고 말할 때의 쾌감이란.

특히 나를 괴롭힌 사람에게 전하는 나의 이직 소식은 가히 최고의 복수라 할 수 있었다.

넌 이 진흙탕에서 영원히 뒹굴거라, 나는 더 좋은 곳으로 떠날 테니.

이직이란 건 아마 직장인이 할 수 있는 가장 비폭력적이고 현명한 복수 방법이 아닐까.


물론 떠나며 아쉬운 사람들도 너무나 많았다. 오히려 그런 사람이 더 많았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대부분 이미 회사를 떠나도 인연을 이어갈 수 있는 좋은 사람들이라 많이 아쉽지는 않았다. 우리는 언젠가, 아니 언제나, 언제든, 그리고 어디에서든. 또 만날 수 있으니까요!






이렇게 쓰고 보니 참 인생을 피곤하게 사는 전투적인 사람 같지만… 실제로 회사 생활 외의 다른 일상적인 면은 ‘아저씨 아냐?’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태어난 김에 사는 느낌에 가깝다.

나도 스스로가 참 신기하다. 회사에 있어선 어째서 이렇게 잣대가 높은지, 참을 수가 없는지.

나는 언제쯤 ‘이 회사는 나의 종착역이야.’라고 느끼는 날이 올까?

그런 회사가 있을까?


오늘도 즐겨찾기의 ‘이직’ 폴더를 맨 위부터 아래까지 탐색하며 머리를 데굴데굴 굴려본다.

어떻게 해야 더 행복해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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