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서로를 완벽하게 채워주는 퍼즐 한 조각

서로 다른 두 디자이너가 만들어낸 최고의 팀워크

by 하니


약 2~3년 전, 그러니까 디자이너로서 10년 쯤 일했을 때 쯤.

나는 그제서야 '디자이너끼리의 진정한 협업'을 배웠다.



디자이너는 혼자서 일할 수 없다.

기획자나 개발자, 마케터 등 다양한 사람들과 손발을 맞춰야 한다.

나 혼자 예쁘게 그린 그림은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다. 수많은 태엽이 뒤엉켜 돌아가며 하나의 기능을 동작시키듯, 우리는 다양한 직군의 사람들과 협업해야 했다.


그런데, 디자이너끼리 협업한 경험은 별로 없었다.

음... 아니다. 표현이 잘못되었다.

외주와 정규직, 혹은 시니어-주니어 사이처럼 메인과 서브 디자이너로 역할이 구분되지 않는, 모두가 메인 디자이너인 협업 경험은 좀처럼 없었다.

내가 경험한 대부분의 업무는 야근을 하더라도 혼자 처리가 가능했다. 너무 버거울 땐 서브 디자이너가 따라 붙거나 외주 디자이너에게 일을 분담했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다녔던 회사에서, 처음으로 메인-메인 디자이너가 파트너를 이뤄 업무를 진행했다.


내가 당시 담당하고 있던 서비스는 메신저였다.

PC와 모바일 버전이 있었고, 라이트와 다크 테마가 있었으며, 메신저라는 프로덕트는 대화방 뿐만 아니라 초대, 보이스, 채널, 미디어 뷰어 등 수많은 기능을 내포하고 있어 매우 까다롭고 복잡한 서비스였다.

최근에서야 디바이스 (PC, Mobile) 기준으로 파트를 나누고, 주니어 디자이너도 붙어 안정화가 되었지만 꽤 오랜 시간 동안 그 서비스는 나와 다른 한 명의 디자이너가 함께 공동으로 담당했다.






우리의 스타일을 표현하기 위해 먼저 '디자이너로서의 나'에 대해 소개하자면, 한 마디로 '폭주 기관차'라 할 수 있었다. (실제로 내 별명이었다.)

어떤 업무가 할당되는 순간 일단 별 고민없이 프레임을 만들고 이것저것 갖다붙여 머릿 속에 떠오르는 느낌대로 시안을 뚝딱뚝딱 만들어 갔다.

그러나 섬세함과는 거리가 멀고 매우 덤벙거리는 편이라 놓치는 케이스도 많고 틀어진 오브젝트도 종종 있었다.

그래서 모래성을 무너뜨리 듯 여러 번 엎어 치우고 다시 설계하는 시행착오가 잦았다.

대신 판단력과 실행력이 빨라 작업 속도가 폭주 기관차처럼 빨랐다.

내가 협업 부서나 팀장님에게 "시안 작업이 완료되어서 공유 드립니다." 라고 말하면 다들 눈을 휘둥그레 뜨곤 했다.

"버... 벌써요?"


그러나 나와 파트너였던 그 디자이너 분은 나와 정반대의 스타일이었다.

나보다 네 살이 어리고 경력도 조금 더 짧지만, 매우 신중하고 조심스럽고 생각이 깊은 분이었다.

업무 하나가 들어오면 깊은 고민 끝에 일정을 산정하고, (나는 한 1분 생각하고 "3일 정도 걸리겠네요!" 라고 후딱 대답했다. 그리고 이틀 만에 공유했다.) 작은 한 부분 한 부분까지 다양한 케이스를 고민했다.

눈을 가늘게 뜨고 자세히 봐야 할 정도로 미묘한 컬러 차이를 두거나, 오브젝트의 위치를 위에 둔 버전과 살짝 아래에 둔 버전, 작은 뱃지 하나도 위치와 형태에 따라 시안을 뽑아냈다.

그 분의 피그마엔 늘 A-1, A-2, A-3, B-1, B-2... 얼핏 보면 비슷비슷해 보이는 시안이 주루룩 나열되어 있곤 했다.


대신 단점은 그렇게 신중하고 고민이 깊은 만큼... 결단력이 살짝 부족했다.

항상 나에게 수많은 시안들을 보여주며 어떤게 나은지 의견을 물어보셨다.

그 분의 피그마엔 수많은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가지처럼 뻗어나가 있었다. 마치 머릿 속 지도처럼.

그러나 신기한 건 그 시안들 중에 쓸데 없는 시안은 하나도 없었다. 전부 그럴싸한 고민과 사연을 담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늘 하나하나 같이 살펴보고 깊게 고민해보다 하나의 시안을 골랐고, 이 시안이 제일 나은 이유를 명확하게 설명하려 애썼다.


물론 나만 도움을 준 건 아니었다. 오히려 내가 더 도움을 받았다.

그 분은 늘 내 시안을 보며 뭔가를 곰곰히 생각하다 "그럼 이런 케이스일 땐 어떻게 되나요?" 라고, 예리한 칼날 같은 질문을 던지곤 했다.

그럼 나는 "헉, 그건 생각 못했어요...!" 라고 대답하는 일이 대반사였다.

결국 다시 돌아가 꼬인 동선을 푸느라 머리를 싸매야 했다.

나는 왜 이런 케이스는 생각을 못한 거지. 자책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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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2~3년 정도를 그 분과 함께 일하다 보니, 서로가 서로에게 물과 물고기 같은 존재가 되어갔다.

나는 나만 그 분에게 업무의 95% 정도를 의존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그 분 또한 똑같이 그렇다고 해주셔서 신기했다.

우리는 그 어떤 어렵고 복잡한 일이라도 함께 캄캄한 벽을 짚어 나가며 해결책을 만들어내곤 했다.

그 분이 엉켜있는 실을 꼼꼼하게 앉아 풀어내면, 나는 그 실을 가지고 성큼성큼 출구로 이끌었다.


폭주 기관차처럼 진흙을 튀기며 대충 얼기설기 시안을 설계하던 나는 그 분을 만나고 정말 많이 배울 수 있었다.

'다 됐다!'라고 생각하고 시안을 공유하기 전에 '아냐... 또 내가 놓친 케이스가 있을지도 몰라.' 라며 다시 한 번 신중하게 돌아보고 되짚어봤다.

'만약 그 분이라면 이 부분도 케이스를 나눠 시안을 뽑아 봤겠지?' 라고 생각하며 다 된 시안도 한 번 더 생각을 비틀어 하나 더 뽑아보았다.


그 분에게 내가 도움이 된 건 어떤 게 있을지, 지금 생각해보니 좀 미미한 것 같긴 하지만... (빠른 퇴근 정도...?)

나에게 그 분은 나의 부족한 퍼즐 한 조각을 완벽하게 채워주는 파트너였다.

이렇게 좋은 동료는 아마 다시 만나기 어려울 거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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