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출산과 퇴사 후, 지난 1년 간의 회고

평화롭고 행복했지만 불안하고 막연했던 구직 생활

by 하니


많은 일이 있었다.

작년 6월, 나는 출산을 위해 내가 다니고 있던 회사에 휴직계를 냈다.

그리고 지난 12월, 회사에서 내려온 희망퇴직 공고에 신청을 했고, 그렇게나 자랑스럽게 다니던, 좋아하는 사람들이 가득한 그 곳에서 퇴사했다.

잠이 부족한 나날 속에 아기를 키우느라 힘들었고, 정신이 없었다. 게다가 키우던 고양이도 크게 아팠다.

그래서 판단력이 떨어졌던 거라고, 당시의 내 결정을 섣불렀다 후회할 때도 많았다.

하지만 결과적으론 그 때 그만두지 않았다면 그렇게 큰 목돈을 마련하지도 못했을 거고,

하루가 다르게 쑥쑥 커가는 아이를 더 보지 못한 채 이르게 복직해 팀장이라는 직책을 처음 맡느라 정신이 없었을 것이다.

(그만 두기 전에 팀장 제안을 받았으나 퇴사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해 미련을 남긴다.

팀장이라는 직책에 대한 새로운 경험과 좋아하는 사람들과 즐겁게 일하던 추억, 회사가 내게 주었던 자존감 같은 것들은 이미 내가 선택하지 않은 '가보지 못한 길'이 되었다.

언제나 최선의 선택을 할 수는 없기에 그 아쉬움이 크긴 하지만, 더 이상 내 선택을 후회하지 않기로 했다.


희망퇴직을 한 덕분에, 실업급여 덕분에, 그리고 2월엔 남편이 육아휴직을 쓴 덕분에.

나는 아무 걱정 없이 내 생에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3월 달엔 남편과 아기와 셋이서 후쿠오카에 한 달 살기를 다녀오기도 했다. 너무 어린 아기와 함께라, 그리고 꽃샘추위가 너무 매서워서 정말 피로하고 힘든 여정이었지만 그 경험은 분명 우리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주었다 생각한다.

다녀온 뒤에는 매일 함께 평일 오전에 산책을 하고, 운동을 하고, 아기와 함께 오늘은 어디에 갈까 고민하는 일상이 이어졌다.

사람이 없는 한가로운 평일 오전의 여유를 즐기며 '언젠가 이 순간이 그리워지겠구나.' 라고 생각했다.

내가 늘 가장 행복한 순간에 떠올리던 그 생각을, 몇 번이고 하게 만드는 일상이었다.



하지만 사회생활을 시작한 뒤로 13년 간, 단 한 번도 다음 회사를 정하지 않고 그만둬본 적이 없기에 이 막연한 '휴식'의 날들은 종종 나를 불안하게 하기도 했다.

그래서 마냥 쉬지는 못하고 끊임없이 포트폴리오를 다듬고, 채용공고를 돌아보며 입사지원서를 쓰곤 했다.


하필이면 인생 처음으로 가져보는 휴식기가 채용 시장의 역대급 빙하기였다. 그 사실을 알았더라면 나는 퇴사하지 않았었을 지도 모른다. 이렇게나 구직이 어려웠던가.

대기업만 다녀봤기에 어디든 척척 붙을 거라 생각했는데 수없이 돌아오는 탈락 메시지에 더 이상 일을 못하면 어쩌지. 이대로 경력이 단절된 전업주부가 되면 어쩌지. 라는 불안감이 나를 덮쳐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도 많았다.

내 포트폴리오가 얼마나 별로면 면접 볼 가치 조차 없다는 걸까? 끝없이 나를 채찍질 했다.


약 6개월 간 40번이 조금 넘도록 서류를 지원했는데, 나는 그 40 몇 번을 매번 희망을 걸곤 했다.

그래서 매번 돌아오는 탈락 메시지에 매번, 일일히 좌절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다듬은 덕분인지, 6월 쯤부턴 조금씩 합격 소식을 듣기도 했다.

얼마나 귀중한 서류 합격의 기회인지 알기에 그 다음의 여정을 매번 영혼을 바쳐 준비했지만 늘 뜻대로 되지는 않았다.

특히 정말 가고싶었던 그 회사의 면접에서 떨어졌을 땐 우울증까지 올 정도였다.

면접을 너무 잘 봤기에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나 희망스러운 고문이었다.

면접봤던 임원분들과 개인 연락을 주고받기도 했기에 희망고문이 더 고통스러웠고, 결국 진짜로 떨어졌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까지 너무 힘들었다.






그 후로도 정말 많은 일이 있었고, 많은 고민을 했지만.......

결국엔 9월 1일부로 새로운 회사에 출근하기로 했다.

너무 가고싶었던 그 회사와 면접을 보는 과정에 합격 연락을 받은 거라 보험처럼 차선책으로 두고 있었고, 사실은 그렇게 가고싶은 회사는 아니었다.

게다가 우울증까지 왔던 시기라 몇 번이나 그냥 무를까, 이 경험을 포기할까 고민했지만 결국 입사하는 것으로 선택했다.

앞서 말했 듯, 내 결정과 내 선택에 후회하고 싶지 않으니 이젠 그냥 밀고 나가는 수밖에 없다.


후회할 수도 있고, 어쩌면 새로운 기회를 얻을 수도 있다.
후회하더라도 괜찮다.

'그 어떤 곳에서도 배울 점과 얻는 점은 반드시 있다.'고 믿는 나이기에, 어떤 것을 배우게 될 지, 어떤 것을 얻게 될 지 그 형태를 지금은 가늠할 수 없지만

지금도 좋지만 더 좋아지기 위해 늘 노력하는 나에겐 언제나 좋은 일만이 생길 것이고, 어떻게든 더 좋아질 것이라 믿기에.

나는 더 좋은 길을 걸을 것이다. 반드시. 내 선택과 내 삶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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