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니어가 아닌, 시니어 디자이너의 고민을 기록하기 위해 시작한 글
코시국 이후로 꾸준히 일기를 써왔다. 중간중간 비는 타임도 있긴 했지만 네이버 블로그 챌린지 덕분에 작년 2022년에는 꾸준히 하루하루를 기록한 것 같다. (꾸준히 썼지만 상품에 당첨되지 못했다) 정말 일적으로 다사다난했던 한 해를 보냈다. 글마다 분노와 자책이 가득가득했다는 것은 그만큼 많이 갈등하고 힘들어했다는 거니까. 그 과정을 거쳐서 지금의 나는 작년 3월의 나와 완전히 다른 고민을 하고 있다.
2022년에 나는 11년차. 올해는 햇수로 12년차 된 디자이너가 바로 나다. 일을 좋아하고 디자인을 좋아하고 마케팅디자인을 좋아해서 10년을 넘게 일해왔다. 디자이너 포함해서 주변에 10년 넘는 경력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처음 이 회사가 재밌겠다고 생각해서 생긴 지 얼마 안 된 스타트업에서 알바를 시작한 지 벌써 12년이 흘렀다. 회사는 성장했고, 나 역시 함께 성장했다. 디자인 실력도 그만큼 빠르게 성장했는데 근데 생각만큼은 성장하지 못한 것 같다.
대부분 퍼포먼스가 좋은 주니어 디자이너들은 실무를 계속하고 싶어 한다. 고민도 실무 위주다. 나 같은 경우 마케팅 관련 디자인이기 때문에 주로 퍼포먼스나 실무 관련 고민이 많았다. 반면 일정 시간 지나 어느 정도 경력이 되면 자연스럽게 회사에서 리더 역할을 요구한다. 리더는 퍼포먼스 고민이 아니라 디자이너를 관리하는 고민을 해야 한다. 나는 바로 그것이 제일 무서웠고 자신이 없었다.
(주니어 디자이너와 시니어 디자이너의 고민의 차이는 이 브런치 글을 보고 크게 공감했다 : https://brunch.co.kr/@96chan/63)
작은 팀의 팀장이나 파트장 대행 역할은 몇 번 맡아봤다. 그렇다고 내가 잘했냐고? 지금 생각하면 정말 못했다. 어떻게든 그 자리를 도망치려고 했던 것 같다. 극 내향인인 나는 내가 잘하는 것에 집중하고 싶었고, 사람을 다뤄야 하는 리딩의 역할을 두려워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이제는 정말 리딩에 대한 고민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 왔다.
어느 날, 이전에 투닥거리면서 함께 일한 마케터에게 자신이 마케팅 총괄로 가는 회사에 디자인 리드로 와줄 수 있냐고 제안이 왔다. 이전에도 한번 그가 전 직장에서 함께 일하자고 연락했을 때 거절한 이력이 있었는데 (그 당시 회사에 내가 입사할 경우 매우 힘들어할까 봐 커피챗 할 때 회사 상황을 현실적으로 알려주셔서 거절함) 이번에는 꼭꼭 정말로 같이 일하고 싶다고 강력하게 얘기하는 것이었다. 해당 회사는 20대 사이에서 많이 쓰는 소셜 커뮤니티 플랫폼이었다. 그가 여러 번의 통화와 카톡에서 엄청난 조건들을 제시할 때, 아 이 사람이 진짜 데려오려고 안달났구나 느끼면서 내 귀는 팔랑거리기 시작했다. (이렇게 내가 줏대가 없다) 나는 오랫동안 준비하지 않은 포트폴리오를 급하게 만들기 시작했지만 혼란스러운 마음을 추스르고자 내 첫 사회생활 상사였던 두 분(편의상 A님, B님이라고 하겠다)께 조언을 구했다.
A님은 굉장히 현실적인 조언을 해주었다. 디자이너로서의 커리어가 아니라, 지금 회사를 나오기에는 이 회사에서 나의 의미가 너무 크다는 것. 그 네임밸류는 그 어디서도 얻지 못한다는 것. 폭발적으로 성장한 회사의 초창기 멤버가 아직도 그 회사에 남아있다는 것은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참고로 A님은 예전에 회사에 오래 다니는 사람은 진짜 고인물이라고 낮게 본 적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때를 후회한다고…. A님이 후회 섞인 현실적인(…) 조언을 해줬다면 B님은 좀 더 커리어에 초점을 맞추는 조언을 해줬다. 여기서 뼈를 좀 많이 세게 맞긴 했는데. A님이 한 얘기 역시 B님한테서도 들었고, 거기에 더해서 이 회사에서 원하는 나의 포지션, 내가 앞으로 키우고 싶은 역량과 미래 등등을 더 깊게 생각해야 하며 회사에 대해서도 좀 더 자세히 알 필요가 있다고 얘기해 줬다. 이때 당시 나로서는 전혀 생각해보지 않은 주제들이었다. 나는 좀 더 자세한 얘기를 듣고자 해당 회사 창업멤버들과 어떻게든 영입하려는 마케터와 함께 커피챗을 진행했고, 나는 고심 끝에 이직을 하지 않겠다고 연락했다. 그 이후에 마케터가 급발진하면서 여러 번 붙잡기도 했지만… 이전에 커피챗을 함께 진행한 멤버 중 한 분이 나를 긍정적으로 봤는지 연락처를 넘겨줬다고 한다. 이직은 안 했지만 어찌 되었든 나한테는 좋은 경험이자 큰 전환점이었다.
이 날을 기점으로 정말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그리고 내가 평소에 생각하던 리더의 모습은 리더도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더 깊게 생각하고 이해해야 했다. 실무 디자이너들보다 업무를 더 잘 파악해야 했고 여차하면 타 부서와의 갈등도 맞닥뜨려야 했다. 이에 비해 나는 회피형 인간이었으니… 이러한 태도로 좋지 않은 피드백을 들었고, 정신이 번쩍 든 나는 내가 그동안 보고 생각했던 것보다 더 넓고 깊게 보려고 노력했다.
이 글을 쓰는 시리즈는 아마 그 노력을 기록하는 시리즈가 될 것이다. 시니어 디자이너로서의 고민과 방향성을 찾는 여정을 무의식적으로 풀어내는 시리즈라고 할 수 있겠다. 단지 내 머릿속에서 떠다니는 고민과 해결방안들을 글로 써봐야 나 스스로도 정리가 될 것 같고, 고민의 과정을 기록하는 것도 나 자신에게 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이 글도 저장했다가 안 했다가 썼다가 지웠다가를 반복하고 드디어 발행해서 본격적으로 내 넋두리로 활용하려고 한다. 솔직히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만한 멋들어진 글을 쓸 수 있을 거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온전히 리드를 맡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내가 이 분야의 아주 빠삭한 전문가도 아니고 어디까지나 시행착오를 겪고 있는 디자이너이기 때문에… 내가 지금 쓰고 있는 이 글과 시리즈가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디자이너 또는 비디자이너에게 도움이 될까 하는 마음으로 끄적거리기로 했다. 왠지 오타투성이에 무의식의 흐름이 될 것 같지만…!! 아….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