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책 없이 리더 대행 비슷한 것을 맡아온 상반기를 돌아보며
내가 지금 소속된 팀은 올해 초에 조직된 신규 팀이다. 기존에 있던 팀에서 조직개편되면서 파트였던 우리 조직이 다른 팀으로 아예 떨어져 나가게 된 것이다. 그러면서 조직의 역할도 달라졌다. 파트 시절 하나의 서비스 운영만 담당했다가 모든 서비스의 운영을 맡게 되었다. 그에 따라서 기존 팀과의 인수인계도 이루어져야 하는데….
문제는 팀장을 새로 뽑아야 한다는 것이다. 조직 내에서 제일 경력이 많은 네가 하면 되잖아?라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회사(를 포함한 상위조직장 분들)는 팀 리더로 원하는 바가 확실했고, 나는 그 원하는 리더상에 부족해 보였다. (이 내용에 관한 것도 조만간 글로 풀어볼 예정!) 팀장 직책은 채용을 진행하기로 했고, 공석인 팀장 대행 자리는 기존 팀 리더 M님이 맡았다.
팀 분리 후의 팀원들은 나 포함 총 5명(팀장 대행 포함)이었다. 이슈를 하나 뽑자면 M님과 나를 제외하고는 모두 기간제 직원이자 주니어였다. 아마 대부분 4-5년 이하의 경력일 것이다. 대행을 맡은 M님은 새 팀장님이 들어오기 전에 두 팀의 리더를 맡아야 했는데, 기존의 팀 역시 굉장히 바쁘게 돌아가고 있어서 두 조직을 함께 볼 여력이 부족했다.(매일 일로 밤을 새던 분이었다) 그러다 보니 이전의 파트장이었던 내가 자연스럽게(?) 부팀장 같은 역할을 하게 되었다. 물론 부팀장이라는 공식 직책은 없지만…
주니어 병아리 사이에 시니어가 혼자 있다는 것은, 주니어들이 모두 나한테 의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전 같았으면 어떻게든 도망치고 싶어 했겠지만! 내가 본격적으로 총대매고 버팀목이 되어야 팀 안팎에 혼란이 생기지 않는다. 나는 M님과 조직 세팅과 어떻게 인수인계를 진행해야 할지 함께 고민했다.
새로 팀이 생기면 세팅해야 할 것들이 많았다. 업무 프로세스, 지라(JIRA) 업무요청 프로세스, 위키(WIKI) 문서 활용 등등. 다행히도 이전 팀에서 나름 위키와 지라를 정리한 경험이 있어서 처음부터 멘탈붕괴가 발생하진 않았다. 다만 전보다 업무의 범위가 더 넓어지다 보니까 살펴봐야 할 것들도 많아졌다. 팀의 role이 바뀌면서 기존 팀에서 받아와야 하는 업무들이 꽤 있었는데, 팀 내 인원이 너무 적어서 이 업무를 모두 한꺼번에 인수인계받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이 때문에 당분간 두 팀이 하나의 조직처럼 움직여야 했고, 새 팀장님이 오시기 전까지는 위클리 미팅도 두 팀이서 같이 진행했다.
팀의 업무 리딩도 내가 도맡아 진행했는데, 이 경우 이전의 파트장 때의 경험이 큰 도움이 되었다. 사실 파트장을 맡기 직전에 내 프로젝트 리딩 실력은 진짜 형편없었다. 어디까지나 나는 주도하는 사람이 아니라, 정해진 방향을 따르는 것을 좋아하는 구성원의 역할이 더 익숙해서 그럴 것이다. 이런 그지같은(?) 흑역사를 겪고 나서 그런지 팀 변화 후 프로젝트 리딩은 이전보다 수월했다. 그렇다고 완벽하진 않지만! 아직도 프로젝트 디렉팅과 리딩에 대한 것은 수행하면서 배우고 고쳐나가고 있다.
업무를 진행하다가 좀 더 높이 올라가야 하는 커뮤니케이션 상황이나 의사결정은 M님께 바로 공유해서 도움을 요청했다. 내가 결정하기 어려워할 때, 더 깊게 들여다보고 결정해야 할 때, 이 프로젝트의 속사정을 더 들여다봐야 할 때(상위조직장끼리 어떤 의사소통이 있어서 이 업무가 왔는지 등) M님에게 얘기하면 언제든지 도와주셨다.
팀 내에서 나오는 산출물들의 퀄리티에 대한 검수도 디폴트 업무 중 하나였다. 마케팅 디자인을 하는 팀인 만큼 업무 속도는 빠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구하는 퀄리티는 놓치면 안 되는 상황이라 매주 몰아치는 디자인 검수 모두 감당해 냈다. 모든 서비스의 업무 인수인계가 완료되지 않은 상황이라 지금과 비교하면 업무량이 적어서 다행이지 하반기에는…(말잇못)
퀄리티 검수를 진행하면서 제일 큰 고민은 주니어 팀원들의 성장이었다. 각각 동등하게 우상향 곡선을 그리면서 성장하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퀄리티는 개개인마다 다르며 그에 따라 개개인별 피드백도 다르게 줘야 했다. 아주 가끔 시안을 보다가 나 혼자 감정적으로 치닫는(!!) 상황도 있었지만, 어떻게든 억누르려 애썼다. 피드백에 감정을 담는 것은 제일 해서는 안될 거라고 생각하니까. 이는 끝나지 않은 고민거리이고, 내가 일하는 시간 동안 항상 되새겨야 하는 부분이다.
리더가 뽑히긴 할까 지쳐가고(?) 있을 때, 새 팀장님은 4월 즈음 최종 합격하셨고 5월 말 입사하셨다. 다행히도 팀에서 해야 하는 역할을 잘 이해하고 이를 전 회사에서 진행한 경험이 있는 분이었다.(팀장 채용 시 이 부분이 제일 중요했으며, 워낙에 원하는 바가 명확해서였을까 채용까지 더더욱 오래 걸렸다) 새 리더 최종합격 소식에 M님과 나는 슬랙에서 엄청나게 좋아했고, 리더들만 모여 진행하는 위클리에서 M님이 걱정봇인 나에게 어떤 고민거리나 생각을 갖고 있는지 물어봤을 때 나는 이렇게 말했다.
“새 팀장님이 오시면 제 역할은 뭘까요?”
보통 암묵적으로(?) 리더 대행을 맡는 사람이 있고, 오랫동안 리더 자리가 공석이라고 하면 보통은 리더 대행을 맡던 사람이 직책을 맡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러라는 법은 절대 없다. 회사에서 원하는 리더 역할에 적합한 사람이 그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럼 이제 그 역할에 맞는 분은 뽑혔고, 그렇다면 새 팀장님에게 내가 현재 들고 있는 역할들을 인수인계 해야 하는데 나는 결국 다시 실무자로 돌아가는가? 새 팀장님이 오시면 내 역할은 뭐지? 이에 대한 답은 팀장 B님이 입사하시고 꾸준히 얘기를 나누면서 명확해졌다.
올해 초 팀이 분리되었을 때에 팀에서 주어진 역할이 있었는데, 이를 위해서는 팀 매니징과 유관부서 커뮤니케이션에 능통한 리더가 필요했다. B님은 이런 팀 운영과 커뮤니케이션에는 자신 있었고 이전 회사에서도 세팅한 경험이 있었지만 단 한 가지를 걱정했다. 바로 [디자인 퀄리티]였다. 회사 디자이너들이 오랫동안 지켜온 높은 퀄리티와 디자인 스타일. B님은 입사 전 M님과 얘기할 때 “자신에게 [이런 디자인을 잘 보는 눈]을 기대할까봐 이 부분이 제일 걱정된다”라고 하셨고, M님은 이미 그 역할을 하고 있는 친구(=나)가 있으니 걱정 말라고 얘기했다 한다. B님은 입사 후 나와의 1 on 1 자리에서 B님은 내가 꾸준히 업무 퀄리티 검수와 디자인 스타일 디렉팅을 진행해 줘야 한다며 내 질문에 대한 답을 주셨다.
팀 내의 시니어라고 무조건 리더 직책을 맡는다는 법칙은 없으며, 어쩌면 나보다 경력이 낮거나 더 어린 팀장님이 들어올 수도 있다. 그러나 팀 내에서 나의 역할이 무엇인지만 명확하게 파악하고, 이를 리더와 꾸준히 얘기하면서 확립해 나간다면 나의 정체성도 흔들리지 않고 팀원들과 함께 팀 내에서의 역할을 충분히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직책도 중요하지만, 직책만이 나의 커리어의 정답은 아니다. 내가 정의하는 나의 역할이 정답이지.
상반기가 지나간 지금, B님의 수습기간도 끝나서 정규 팀장 발령을 앞두고 있다. 나는 B님과 함께 하반기에 우리에게 주어진 목표를 향해서 어떤 걸 해야 하는지 일주일에 1번 이상 100분 토론을 방불케 하는 시간을 갖는다. 리더인지 아닌지 모를 상반기를 지나서 이제는 새로 오신 리더분과 팀의 역할과 업무 수행에 필요한 것들을 고민하고 있다. 물론 도대체 나는 직책 없이 왜 이 역할을 하고 있으며 나중에 팀장님이 안 뽑히면 어쩌지 같은 불안감에 휩싸였지만, 상반기에 했던 역할들 덕분에 이전보다 더 깊은 고민을 할 수 있는 거라 생각한다. 그러지 않았으면 나는 계속 디자인 퀄리티라는 범위까지만 고민했겠지.
올해 상반기에는 내 회사생활 중 다이내믹 한 기간 중 손에 꼽을 정도로 변화가 많았다. 그래서 지나온 6개월간 했던 고민들을 기록하고 싶었다. 제일 혼란스러웠고, 제일 할 일이 많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저것 다 경험하고 배웠던 기간이었다. 특히 ”시니어로서의 나의 역할은?“ “나는 앞으로 팀에서 어떤 역할(팀 매니징, 리더, 디렉터, 스페셜리스트 등)을 하고 싶어 하는지?”에 대해 생각하고 답을 찾아갔던 순간이었다. 그렇다고 온전히 답을 찾은 건 아니고, 아직도 의문거리과 고민사항은 줄줄이 사탕이지만! (원래 고민이 아예 없던 적은 없다) 내년 초에 나는 하반기에 대해 어떤 시선으로 돌아보고 평가할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