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회사는 우리 조직 리더로 어떤 사람을 원할까
우리 팀의 B팀장님은 추천이나 오퍼가 아닌, 채용을 통해 입사하셨다. 나의 편협한 시각과 한 회사에 오래 다닌 고인물의 시선으로 봐서 그런지 나는 리더급 인사를 공식 채용을 통해 합격시킨 경우를 거의 처음 본다. 물론 채용으로 뽑는 경우도 많겠지만 대체로 기존 직원 중 리더로 승격시키는 경우가 많고, 새로 영입한다면 주변 사람 추천을 선호하는 것 같다. 이전 회사에서의 태도와 일하는 방식, 그리고 사람 됨됨이를 미리 경험한 사람을 통해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나한테는 리더 채용 과정이 흥미로웠다. 그리고 아주 잠시 M님 대행으로 리더 채용을 담당한 적이 있었고, 그때의 경험과 부문장님으로부터 들은 내용들이 리더에 대한 나의 생각을 많이 바꿔줬다. 그래서 이때의 경험을 머릿속에만 남길 수 없어서, 나의 리더에 대한 사고방식을 바꿔준 리더 채용 관찰기를 써보려 한다.
앞선 글에서도 얘기했지만 우리 팀은 올해 1월 신설, B팀장님은 5월에 입사하셨다. 2022년, 팀이 조직되기 전, 마케팅 운영 조직을 이끌 수 있는 팀장급 사람을 데려오려고 부문장님이 여기저기 수소문한 걸로 알고 있다. 보통 리더급을 외부에서 데려온다 하면 주변의 추천을 통해서 스카우트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그러나 생각보다 우리 회사에서 원하는 마케팅운영디자인팀의 리더는 찾기 힘들었다.
왜 찾기 힘들까? 당시 부문장님과 팀장 채용을 진행하려 했던 M님한테 들은 바로는 생각보다 아래 조건에 부합하는 사람을 찾을 수 없었다고 한다.
회사에서 앞으로 커머스에 집중해야 하는데, 커머스나 IT플랫폼에서 "리더"를 경험한 사람이어야 한다.
충분히 IT 플랫폼의 생태계를 이해하는 전문가여야 한다.(굉장히 급박하게 돌아가고, 업무도 나노단위 등등등)
프로모션 페이지, 배너나 팝업 등의 마케팅 구좌, 외부 광고체계 등의 마케팅과 디자인의 전문가여야 한다.
"리더를 경험했다 하면 대부분 프로덕트 디자인 쪽이고, 마케팅 디자인에 잔뼈가 굵다 하면 리더보다는 실무자가 많고..."
이 얘기를 듣고, 나는 생각보다 "IT플랫폼(커머스면 더더욱 좋음)에서 마케팅 디자인 조직의 리더를 경험한 사람"을 모셔오는 게 힘들다고 느꼈다. 그리고 이 조건에 부합하는 사람이 있다 해도, 현재 다니는 직장에서 절대 안 놔줄 거라고도 했다. 당연하지. 능력 있는 사람이 회사를 떠나려고 하면, 회사에서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면서 붙잡으려 한다.
이후에 타 회사 디자인 리더들을 추천받고 M님이나 부문장님이 커피챗을 진행했지만, 좋은 결과로 이어지진 않았다. 그렇게 회사에서 팀장 채용을 진행하게 되었다.
채용 JD(Job Description)를 올리고 M님은 1차 면접관인 S님과 함께 서류 검토와 면접을 보느라 정신이 없었고, 가끔 괜찮은 서류를 발견하면 나에게도 의견을 물어보셨다. 이후에 M님이 근속휴가로 부재중일 때 채용 담당을 대행하게 되었는데, 이때 서류를 보면서 어려웠던 점에서 첫 번째는 "우리 조직에서 원하는 리더상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내가 원하는 리더를 내가 스스로 기준 삼아서 심사하면 되는 건가? 정확히 어떤 사람을 뽑아야 하는 거지? 포트폴리오는 아무래도 실무에서 어떤 과정을 거쳐서 디자인을 진행했는지 보여주는 창구라서 그런지 조직 매니지먼트나 리딩 관련된 사항을 찾기 쉽지 않았다. 수많은 서류 지원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한 명도 통과시키지 못한 나는 결국 부문장 H님한테 해당 이슈에 대해 얘기하고자 면담을 신청했다.
매우 오랜만의 면담 신청에 H님은 반겨주셨고, 나는 긴장한 상황에서 나의 고민을 얘기했다. 고개를 끄덕이면서 내가 뭘 어려워하는지 들어주던 H님은 자신이 어떤 기준으로 우리 팀 리더를 뽑으려 하는지 알려주셨다.
- 자신만의 팀을 이끄는 원칙이 있어야 한다. 어느 정도 조직의 리더를 했다면 일에서의 우선순위 기준, 자기만의 리더십 원칙이 있어야 한다. 그저 팀원을 다독여주고 얘기 들어주고 케어하는 것만으로는 안됨.
- 문제를 해결하고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려는 태도가 중요함. 문제를 단타적으로 쳐내려는 태도는 좋지 않다. (일이 많아서 야근이 잦은 것을 단순히 현재 인원에서 야근을 많이 하려고 하는 걸로 해결하는 것이 아닌, 일이 왜 많은지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 같은 맥락으로, 문제를 찾아내는 것을 즐거워하며 이를 해결하는 것을 더 즐거워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해결 과정도 당연히 즐거워야겠지? (이때 해결 과정에서 최악의 상황이었던 경험도 들어보면 좋다)
- 우리가 경력자를 뽑는 이유는 이미 시행착오를 충분히 많이 한 사람이 필요해서다. (다양한 해결방법을 시도해 보고 그 과정을 통한 결과를 습득한 사람)
일반 팀원의 채용과 조직 리더의 채용은 확연히 다르다. 이전에 일반 팀원 채용을 진행했을 때에는 그 사람의 스킬, 디자인 관점, 그리고 일할 때 협업 방식 등을 많이 봐왔다면 리더 채용에서는 [조직을 이끄는 자기만의 원칙과 이에 따라오는 힘] 그리고 [팀의 방향에 맞는 큰 프로젝트를 맡길 수 있는지]를 중요하게 본다. 그리고 이미 큰 회사에서는 앞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누구나 할 법한 실수를 최소화하길 바란다. 그 정도로 온갖 실수를 이미 경험해 본 사람들을 원하며, 이를 서류나 면접에서 중요하게 봐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마케팅디자인 조직에서는 고질적인 문제(수많은 업무, 수정요청, 이에 따른 피로도 등)에 따른 해결책을 찾으려 하고 있으며, 이를 충분히 경험해 본 사람을 리더로 뽑으려 한다. 이미 회사 내에서도 이 문제를 충분히 해결하려 했으나 실패했기 때문에 다른 곳에서 이 문제를 경험한 사람을 찾는 것이 중요했다.
H님은 이런 리더의 역량을 지원자들이 잘 어필시키기 위해서 JD(Job Description)를 수정할 것을 제안했다. H님에게 털어놓은 고민 중 하나는 [서류든 포트폴리오(이하 포폴)든 리더 경험이 있다는 것이 보이지 않는다], [모두 실무 작업밖에 보이지 않아서 리더 역량을 알아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그래서 JD를 수정하면, 꼼꼼히 읽은 사람들은 제대로 서류와 포폴을 정비해서 지원하지 않을까 의견을 내주셨다. H님은 이전 지원자들도 서류 지원하면서 어떤 인재상을 원하는지 명확히 몰랐을 것이라며 JD에서 아래 사항에 대한 것을 좀 더 구체적으로 쓸 것을 조언해 주셨다.
- 개인 작업 말고, 협업방식에 대한 본인의 노하우나 경험을 작성하게 할 것 (보통 실무자 채용 시 개인 작업들도 첨부하면 좋다고 JD에 작성한다)
- 디자인 팀워크를 만드는 데에 필요한 소통방식이나 정보관리를 어떻게 했는지 자기소개서에 꼭 기재하게 할 것. (의외로 리더 채용 자기소개서에 이런 사항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약 30분 정도 H님과의 면담을 끝내고, 나는 함께 채용을 진행하고 있던 S님과 함께 JD를 수정해 갔다. 대대적으로 다시 쓰거나 바꾼 것은 아니지만, 좀 더 조직을 이끈 경험에 대해서 작성하길 바라면서 몇 개의 사항을 추가했다. 그리고 팀원 채용 시에 넣었던 몇 가지 사항들은 삭제했다. 조직의 리더를 뽑는 데에 상관없는 조항이라고 생각해서였다.
JD를 바꾼다고 내가 원하는 서류들이 채용지원에 들어오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실무자의 비중은 높았고, 괜찮다 싶은 몇 분은 면접까지 진행했으나 우리가 원하는 조건에 부합하지 않아 1차 면접에서 탈락시킨 경우도 많았다. 비록 내가 채용을 진행하는 동안에는 원하는 사람을 뽑지 못했지만 적어도 [리더는 이런 역량을 가져야 하는구나], [리더 채용은 이렇게 진행되는구나]를 배우는 좋은 시간이었다. H님과의 면담을 통해 리더상을 좀 더 구체화할 수 있었고, 덕분에 리더 채용에 필요한 기준을 좀 더 다잡을 수 있었다. 서류 심사를 진행할 때에 이런 걸 보여주는 포폴을 뽑아야겠다는 기준도 생겼다. 기준이 명확해지니 이전처럼 혼돈의 도가니에 빠진 적은 없었다. 그렇게 채용을 진행하다가 M님이 복귀하고 나는 다시 M님에게 채용을 인수인계 해드렸다. 그리고 현재의 B팀장님이 지원 후 최종합격되었다.
회사나 조직마다 원하는 디자인 조직 리더상은 모두 다르다. 어떤 회사에서는 실무도 함께 하고 팀 매니징도 함께 하는 리더를 원할 것이며, 퀄리티 검수도 함께 진행하는 만능 리더를 원할 수도 있다. 나도 당연히 모든 것을 다 아우르는 리더를 원할까? 생각했으나 내가 현재 재직 중인 회사에서는 달랐다. 퀄리티 검수보다는 팀 매니징, 프로젝트 추진력을 더 중요시했으며 중요한 프로젝트를 잘 이끌고 실수를 적게 하면서 성공시키는 리더를 원했다. 두리뭉실하게 리더상을 막연히 떠올리는 것보다는 구체적인 것이 제일 좋다. 만약에 내가 H님에게 면담을 요청하지 않았으면 나는 또 막연하게 퀄리티 검수 또는 실무를 잘하는 리더를 뽑으려고 했을지도 모른다.
나중에 B님과 여러 번 얘기하면서 들었는데, B님은 포폴에 자신이 진행한 프로젝트들을 보여주면서 마지막 즈음에 팀을 이끌면서 겪었던 것들을 추가해서 넣었다고 했다. 이 부분이 B님을 서류합격시킨 포인트가 아닌가 싶다. 그리고 B님 자신이 평소에 이러한 것을 고민했기 때문에 면접에서도 잘 드러나지 않았을까, 그래서 최종합격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리더를 채용할 때에는 조직에서 원하는 리더의 역량을 분명히 해야 한다. 그래야 채용 진행할 때 기준이 명확해지고, 지원자와 채용 진행자가 서로 덜 피곤해진다. 아마 이때의 경험은 내가 이후에 또 채용을 진행하게 될 때에도, 그리고 내가 나중에 다른 회사로 채용지원을 할 때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여담으로, 내가 마지막으로 리더 채용이 어렵다고 하니까 H님도 역시 어렵다고 하셨다. 그렇지만 사람은 실패를 겪어야 성장하는 거라고, 많이 이것저것 해보고 많이 실패해 보라고 하셨다. 이는 리더의 역량이든, 채용에서 힘들어하는 나의 상황이든 공통으로 적용되는 공식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