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잘러를 넘어서 함께 일하고 싶은 시니어를 목표로 나아가기
나는 요즘 회사에서 속으로 고군분투 중이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디자이너들과 업무를 리드해야 하는데, 이 프로젝트가 그동안 해왔던 업무와는 다른 부분이 많은 프로젝트다 보니까 나 역시 많이 헤매고 있는 것이다. 정말 오랜만에 리드를 맡았는데, 그 리드해야 할 업무가 완전 새로운 업무고. 나의 불안함과 조급함은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주니어들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을지 또 걱정이 앞서고. 걱정은 걱정을 낳고 많이 예민해졌다.
나는 새로운 업무를 진행하기에 앞서서 우선 걱정되는 요소부터 짚고 넘어가는 타입이다. 위험요소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지만, 새로운 시도를 빠르게 실행하기 힘들어한다는 단점이 있다. 오랫동안 일하면서 새로운 프로젝트는 늘 힘들었다. 어떤 TF에 들어갔을 때에는 나도 개발자도 기획자도 모두 적응하지 못해서 힘들어한 적도 있었다. 이런 버릇이 이제는 어느 정도 고쳐졌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어느새 또 새로운 도전 앞에서 주눅 들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이런 프로젝트가 나한테 기회일 수도 있다. 나는 과연 10년 이상 일한 사람의 모습을 보이고 있는 걸까. 내가 기대한 1N년차 디자이너의 모습을 하고 있을까. 어찌 보면 새로운 프로젝트를 리드하는 과정에서 나는 입으로 얘기만 하던 [시니어 디자이너]의 모습에 더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내가 생각했던 10년차 이상 디자이너의 모습은 뭘까? 나와 우리 조직이 원하는 시니어 디자이너의 모습은 무엇일까?
나는 지금 주니어 디자이너들과 함께 마케팅 디자인에서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업무를 진행하고 있다. 나와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디자이너들은 (내가 관찰해 본 주관적인 기준으로) 모두 내향인이다. 업무에서 나서서 무언가를 하겠다!라고 입을 열기 어려워하는 친구들이다. 하지만 업무에 대한 방향성이 명확하고 가이드가 어느 정도 잡혀있다면 묵묵히 일을 잘 해낸다. 어찌 보면 이전의 나를 보는 것 같아서 “이렇게 도와줘야겠다”가 바로 파악되기도 한다.
이 디자이너들이 새로운 업무를 진행하면서 힘들어하고 혼란스러워하지 않도록 방향을 잡아줘야 한다. 예전의 나라면 나 역시 힘들어하고 지쳐서 당장 출근하기 싫어했을 것이다. 지금도 그런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이전하고 달라진 점이 있다면 어떻게든 그들의 방향키가 되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다. 프로젝트의 목표를 확실히 알고 이를 이루기 위해서 업무의 방향을 잡아주는 것. 이는 아마 디자이너뿐만 아니라 새로운 프로젝트에 돌입하는 리더들이라면 당연히 해야 하는 역할일 것이다.
이전에 박웅현 작가님의 [해적의 시대를 건너는 법] 책을 읽은 적이 있는데, 오랫동안 광고대행사의 리더를 해 온 작가님은 온갖 아이디어들이 난무하는 회의를 할 때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알려줬다. 사람들의 의견을 가만히 경청하면서 수많은 결과물들을 보거나 아이디어를 펼쳐보고, 이 중 프로젝트 방향에 맞는 길로 그들을 이끌어준다. 나는 이 대목을 보고 이것이 바로 시니어가 해야 하는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책에서는 [회의에서의 리더의 역할]을 얘기했지만, 나는 어떤 프로젝트를 진행하든지 리더의 역할은 이거라고 생각했다.
마케팅 디자인은 실무 비중이 매우 많은 분야다. 1주일에 80개 이상의 업무요청이 오고 이를 해결하는 데에 혈안이 되다 보니 반복적인 실무 외의 프로젝트를 진행하려 하면 주니어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주니어보다 오랫동안 일한 시니어는 이런 혼란스러움을 그들보다 많이 겪어본 사람일 것이다. 이 때문에 이런 새로운 업무가 주어졌을 때 어떤 마음가짐으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주니어보다 잘 안다. 그렇기에 회사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진행할 조직의 시니어에게 “아마 새로운 업무를 진행하는 데에 혼란스럽겠지만, 이전의 경험들을 바탕으로 디자이너들이 업무 잘하게 방향을 잘 잡아주는 것“을 바란다.
이 역할은 사람마다 생각하는 것이 다를 수도 있다. 예전에 다른 리더분과 얘기를 나눌 때, 제일 힘든 것이 바로 팀원들 케어라고 했다. 성향이 모두 다른 친구들에게 각자 다른 방식으로 케어한다는 것은 다수의 사람들을 이끄는 리더에게는 고역일 것이다. 특히나 MBTI가 T인 사람들은 더 힘들지도… (MBTI가 유행이어서 다행인 것은 팀원들이 팀장님이 T라는 것을 알고 어느 정도 이해하는 친구들이 많다는 사실이다)
나는 아직 어느 조직의 공식적인 리더가 아니라서 멘탈케어까지 해야 하는 고충을 겪진 않지만, 팀원들의 멘탈이 업무를 진행하는 데에 지대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퍼포먼스가 좋은 친구라고 해도 그때의 멘탈 상태(연인과 헤어졌다거나, 부모님과 싸웠다거나, 반려동물이 아프거나 등등)에 따라 업무 진척도나 퀄리티가 미묘하게 달라진다. 그래서 팀원들 케어가 중요하다고 하나보다.
이러한 개인적인 멘탈 관리도 중요하지만, 일을 대하는 그들의 자세를 케어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 오히려 멘탈 케어보다 더 쉽다고 생각하는데 바로 [일에 대한 동기부여]다. 팀원들을 케어한다고 하면 사사로운 사정까지 듣게 되어서 힘든 경우가 종종 있는데, 그들의 동기 부여를 케어할 때에는 그런 부담이 조금은 줄어드는 것 같다. 이 일에 대한 팀원들의 자세, 프로젝트에 대한 생각(좋은 점, 어려운 점, 바라는 점 등등)을 듣고 그들이 일을 더 재밌고 활기차게 하기 위해 활력을 불어넣는 것. 이 또한 시니어의 중요한 역할이다.
나는 이런 동기부여 때문에 요즘 고민이 많았다. 우리가 맡은 프로젝트는 다소 호흡이 긴 편으로, 항상 며칠 이내에 결과물이 나왔던 마케팅 디자인 실무와는 그 간극 차이가 너무나도 컸다.(이전에 비슷한 프로젝트를 진행했을 때에도 주니어들이 이 때문에 힘들어했다) 그래서 한 번도 이런 프로젝트를 해보지 않은 주니어 디자이너들이 힘들어한 것은 당연했다. 그래서 비슷한 업무를 하는 다른 팀 디자이너들에게 제일 긴 프로젝트 기간이 몇 달 정도 되었냐고 묻기도 했다.
동기부여 중 중요한 것 중 하나는 바로 [성취감]이다. 내가 무언가를 해냈다는 성취감. 아무리 어려운 일이더라도 완성된 결과물을 보게 되면 “내가 해냈어!”라는 성취감이 상승하고 이를 토대로 다른 업무들도 척척 해낼 수 있다. 아마 지금 프로젝트를 쪼개서 작은 결과물이라도 나오게 스텝을 나눠서 진행하면 디자이너들의 동기부여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 생각을 토대로 이다음에 진행하는 업무들에는 그들이 좀 더 성취감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
지금처럼 리드의 역할을 하지 않았던 시절에는 무조건 실무 진행하는 것에만 집중했는데, 리드를 해야 하는 입장이 되다 보니 실무 진행보다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그룹의 운영과 디자이너들(동료들)케어가 더 중요해졌다. 이전에도 파트장을 맡아서 짧게 리더 역할을 경험하긴 했지만, 이렇게 본격적으로 프로젝트 리드를 진행하다 보니 어려운 지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래서 본질적인 시니어의 역할에 대해 스스로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10년 이상 일한 디자이너에게 회사가 어떤 모습을 바랄까. 내가 주니어 시절에 제일 이상적이라고 생각했던 시니어 디자이너의 모습은 어떤걸까. 공식 리더가 아닌 시니어에게는 어떤 역할을 기대하는 걸까. 위에 얘기한 2가지 사항 외에도 시니어가 해야 하는 역할은 많을 것이다. 프로젝트 리드를 진행한 지 이제 2개월 정도 지나서 깨달은 것이 저 2가지라면, 아마 앞으로도 수많은 과제들을 진행하면서 [나의 역할]에 대한 문항은 점점 늘어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