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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O Nov 06. 2023

장기근속에 관한 고찰(2)

현실은 한 사람이 장기근속할 수 있게 놔두지 않는다

(전편 글은 이 링크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전 글에서 이어집니다)


이전 글은 비교적 안정된 회사에 다니면서 안주하려는 나 자신과의 싸움에 대한 글이라면, 이번에는 지극히 현실적인 이유로, 외부 요인으로 장기근속에 대한 희망(?)을 깨부수는 얘기를 해보려 한다.


2023년 초, 전 세계적으로 경제상황이 악화되면서 여기저기서 정리해고를 진행한다는 기사를 여럿 보았다. 구글과 애플 등 실리콘밸리의 굵직한 회사들이 직원들을 대거 감축했다는 소식을 들은 지 얼마나 되었다고 국내 IT기업에서도 사람을 내보낸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나 또한 그 당시 우리 회사도 인원 감축을 하지 않을까 꽤 불안해했다.


경제 상황이 안 좋든 회사 상황이 나빠지든 결국 회사가 직원을 내보내야 하는 상황, 회사가 없어지는 순은 피할 수는 없다. "우리 회사는 안 그럴 거야"라는 희망만 가질 수는 없다. 현실은 정말 차갑기 때문이다.



한 회사에서 오래 다닐 수 있다는 보장은

그 어디에도 없다


정말 오랜만에 학교 후배에게 연락이 왔다. 후배는 자신이 팀원들 중 회사에서 내보낼 사람을 고르고 해고를 통보해야 한다고 마음이 힘들다고 고민을 털어놓았다. 나만큼 오래 일한 회사에 대한 애정이 컸고, 함께 일한 사람들도 모두 좋았기 때문에 이 회사에서 더 일하고 싶지만, 그렇지 않을 상황에 힘들어했다.


이 후배는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일하고 있었다. 후배는 한 회사에서 8년 가까이 일한 초창기 멤버였고, 현재 회사에 정도 많이 들었고 동료들도 모두 좋은 사람이라고 했다. 그래서 회사 상황 때문에 사람을 내보내야 하는 것, 그리고 자신도 언젠가 그렇게 될 거라는 사실에 슬퍼했다.


나는 사람을 내보낸 경험은 없었기 때문에 정리해고에 대해서는 조언을 할 수 없어서 안타까웠다. 대신 후배가 이 회사에 남았을 때, 반드시 이 회사를 나올 때를 대비하라고 얘기했다. 팀원의 해고를 감안할 정도라면 지금 상황이 좋지 않은 회사일테니, 틈틈이 포트폴리오를 준비하라고 했다. 그리고 포트폴리오에 넣을만한 프로젝트들도 회사에서든 회사 밖에서든 꼭 진행하라고 했다.


결국 "나의 커리어를 위해 이 회사를 오래 다닌다"는 공무원이 아니라면 이룰 수 없는 것 같다.(아니 공무원도 웬만한 비브라늄멘탈 아니면 오래 못할 것 같다) 아무리 내가 이 회사를 오래 다니더라도, 언젠가는 나갈 수 있다는 가능성은 항상 열어둬야 한다. 그래서 포트폴리오라든지 링크드인 등을 한 번씩 업데이트하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아무리 오래 다니더라도

회사는 회사, 나는 나


이런 안 좋은 상황에도 굳건히 버티는 회사에 다닌다고 해도, 나는 회사와 나를 동일하게 생각하는 마인드는 버렸으면 한다. 왜냐하면 나도 알고 싶지 않았으니까.


EO 유튜브 중에 구글 UX리드 김은주 디자이너의 인터뷰 영상을 봤는데, 그 영상 중에 회사와 나의 관계는 연애 관계 같다고 했다. 처음에 모든 것을 다 내놓아 일하면서 회사를 사랑하지만, 나중에 나에게 애정이 떨어진 회사에 내가 질척대는 느낌이라고. 나는 이 말에 뜨끔했는데, 내가 이 회사를 오래 다니면서 들었던 생각과 같았다. 그걸 오래 다니고 나서야 느낀다는 것이 함정이지만.


김은주 디자이너는 회사에서 자꾸 나자신을 잊어버리고 회사에 맞추려 하다 보니 어느새 나자신은 없어지는 문제가 있다고 했다. 그래서 이 분은 회사와 연애하지 말고, 나 자신을 잊지 않은 채 썸만 타라고 조언해 주셨다.


이제 와서 되돌아보면, 내가 회사를 오래 다니면서 제일 힘들었던 것은 내가 회사에 너무 마음을 쏟다 보니 정작 내가 원하는 바를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회사에 너무 마음 쓰면 오히려 나만 상처받는다.(이렇게 쓰니까 정말 질척대는 전여친 같다) 그래서 나는 근무시간 동안에만 회사를 생각하기로 하고 그 외의 시간에는 회사에 대한 생각을 지워버리기로 했다. 우아한형제들을 빼고 디자이너 HYO는 어떤 디자이너가 되어야 할까, 어떤 디자이너 포지셔닝을 해야 할까. 이런 생각을 근무시간 외에 생각하려 했다. 그리고 일하면서도 이 고민을 주축으로, 디자이너 HYO의 커리어를 중심으로 일하려 했다. 현재도 나와 회사의 거리두기는 진행중이다.


결국 회사는 회사, 나는 나다. 아무리 오래 다니고 있다 해도 한 회사에 너무 마음 쏟지 말고, 어디까지나 나의 커리어를 펼치는 장이라고만 생각하는 게 좋다.




10년 넘게 한 회사에 고여가는(?) 사람이 겪어보니까, 빠르게 트렌드가 바뀌는 IT업계에서 장기근속은 양날의 검 같다. 좋은 회사와 안정적인 상황은 그 누구에게도 좋은 환경이지만, 그만큼 자칫하면 제자리에 멈추게 될 수 있다. 한 회사에 오래 다니는 것도 좋지만, 어디까지나 일하는 주체는 회사가 아니라 나 자신이기 때문에 내 커리어에 도움이 될만한 것을 계속 고민하면서 나 중심으로 오래 일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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