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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O Oct 29. 2023

장기근속에 관한 고찰(1)

이직과 퇴사의 트렌드 속에서 12년이나 한 회사에 다닌 디자이너의 생각

얼마 전, 슬랙(slack)으로 입사기념일 축하 알림이 왔다. 벌써 12년. 그렇다. 나는 벌써 12년차 디자이너가 되었다. 올해 내가 다니는 회사, 우아한형제들의 배달의민족 서비스 론칭 13주년이 되었으니 내가 12년차가 된 게 맞구나. 나는 배달의민족(이하 배민)이 론칭한 지 1년 후 들어온 병아리 디자이너였고, 배민 나이에서 1을 빼면 내 근속연수가 된다.

(*회사 이름을 가리고 글을 써왔지만, 앞으로 얘기할 글감들이 회사나 서비스 얘기를 안 할 수 없는 것들이라 뒤늦게 고백해 본다. 나는 우아한형제들 12년차 디자이너다. 이 참에 작가 소개도 수정해야지...)


오래 다닌 만큼 어느새 나의 근속연수는 상징이 되었고 내가 알고 있는 배민의 성장 과정은 역사가 되었다. 타 부서에서 오래된 디자인의 파일을 구한다 하면 으레 나를 찾았고, 가끔 피플실(우아한형제들의 조직문화를 구축하고 관리하는 팀.) 사람들이 오래 전의 회사 또는 배민의 모습을 찾고자 하면 나에게 슬랙을 보내곤 했다. 사내 디자이너도 1명? 2명이었던 게 어느새 100명이 훨씬 넘었다.


정말 오래도 다녔다!라고 오랫동안 함께 일한 사람들과 징글징글하다고 서로 웃어 넘기기도 하지만(실제로 디자인실에는 나만큼 오래 다닌 디자이너가 꽤 많다), 한편으로는 마음 한 구석에서 불안감이 있었다. 난 이제 이 회사의 공무원이 되는 걸까? 이제 다른 회사로의 이직은 힘들까? 장기근속은 나에게 득일까 독일까?



회사에 오래 다니는 이유


10년차가 되기 전, 오래 다닌 디자이너에게 궁금한 질문을 받고 그에 대한 답변을 발표처럼 진행한 적이 있었다. 당연히 예상은 했지만 장기근속의 비결(??)을 물어보는 사람들도 많았다. 비결이라고 할 것은 없었고, 보통 사람들이 이직을 생각하는 3가지 요인(좋은 환경과 복지 / 성장할 때 뿌듯함 / 좋은 동료들)을 들며 다른 회사에 비해서 나는 이 3가지가 이 회사에서 만족스러웠다고 답했다.


발표 당시 보여준 장기근속 3가지 요인

정말 운이 좋게도, 나는 첫 회사부터 이 3가지를 비교적 잘 충족시켜 주는 회사를 만나서 지금까지 다닐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더더욱 여기저기서 이직 제안이 오면 고민을 남들보다 많이 하게 된다.


지금은 퇴사하고 안 계시지만, 나만큼 오래 다녔던 분이 "이 회사는 첫 회사로 들어오지 말고 2번째나 3번째 회사로 들어와야 한다"라고 얘기했다. 그만큼 다른 회사에서 좋은점 나쁜점을 많이 겪어보고 이 회사를 경험했다면 확실히 좋은 회사라는 것을 느낄 수 있고, 무엇보다도 첫 회사가 우아한형제들이라 자칫하면 다른 회사로 이직하지 않으려 해서 다양한 서비스 업무를 해볼 수 없다는 것이다.




좋은 환경 속에서도

안주하면 안 된다


좋은 회사가 첫 회사라는 것은 독이 될 수도 있다. 그만큼 좋은 회사다 보니 안주하려고 하고, 이 정도면 되겠지~ 하면서 성장을 주저할 수도 있다. 그래서 그 말이 더욱 불안하게 와닿았던 것 같다. 이 회사만한 곳이 있을까? 좀 더 많은 경험을 하고 싶다면 이직의 길도 있겠지만 회사를 보는 기준이 한없이 높아진 이 상황이 좀 더 나은 회사를 찾을 수 있을까?


다른 회사에 다녔다면 나 역시 5년차 또는 최대 9년차일 때 이직을 하려고 했을 것이다. 다행히도 우아한형제들에서는 회사 내에서도 끊임없이 새로운 업무를 하게끔 유도한다. 나도 여기서 광고 디자인을 하게 될 줄 몰랐고, 애프터 이펙트를 다시 쓰게 될 줄은 몰랐으며, 여기서 UI 프로젝트도 진행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마케팅 디자인 길만 걷겠다고 결심한 나로서는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지만, 이런 경험들 역시 나중에 마케팅 디자인 커리어를 성장시키기 위해서 필요한 경험들이었다.


안주하려는 태도는 프로이직러든 장기근속자든 절대 피해야 할 태도다. 당장 엄청나게 환경을 바꾸는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조금이라도 다른 시각으로 일을 바라보고 레벨업을 시도해봐야 한다. 아무리 오랫동안 회사에 다닌 사람이라도 오래 전의 사고방식에서 바뀌지 않는 사람이라면 회사에서도 반기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근속연수만큼 성장했다는 것을 끊임없이 증명해야 한다. (이렇게 글을 쓰고 나니 장기근속도 쉽지 않구나…) 나 자신도 쉽진 않지만 안정적인 상황이 오더라도 이 텀을 길게 두지 않고 다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문제 될 거리를 찾아 헤매려 노력한다.


(비슷한 얘기에 대한 이전 브런치 글은 이 글에서 확인할 수 있다)


(2)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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