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생각보다 괜찮을지도

소설 [디자이너의 마음들]

오늘 그의 일정은 클라이언트를 만나러 서울을 떠나 부산을 향하는 아침 기차에서 시작되었다. 오랜만에 서울을 벗어난다는 생각에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지면서도, 클라이언트를 만나 어떤 이야기를 할지 다시 한번 정리하면서 기차 안에서의 시간을 보냈다. 깐깐한 상대를 만날 때에는 대본을 만드는 것처럼 이야기를 주고받는 식의 프레젠테이션을 상상하면서 준비하곤 한다. 그렇게 준비하다 보면 예상치 못한 질문들이 나올 때 다양하게 답을 할 수 있는 감각이 생기는 기분이었다.


쌀쌀해진 날씨 탓인지 해가 쨍쨍한데도 부산역의 바람은 차가웠다. 기차역부터 미팅 장소까지 택시를 잡아타고 가는 도중, 거칠게 운전하는 차들에 몇 번 놀라고 나니, 금방 도착한 듯했다. 미팅이 조금 남은 시점이라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마시면서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다. 오늘의 미팅이 어떻게 흘러갈지 기대와 걱정이 반씩 섞여 그의 마음을 덮고 있었다.


클라이언트를 만나고 난 후로는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르게 지나갔다. 그는 최대한 마음의 여유를 잃지 않으려 노력했고, 클라이언트의 반응을 살피면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눈빛만으로는 알 수 없던 클라이언트의 마음은 생각보다 금방 움직여졌고, 추후 일정을 논의하면서 미팅은 훈훈하게 마무리되었다.


그의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 것을 느끼면서, 미팅을 마치고 혼자 점심을 해결하러 근처 초밥집으로 들어갔다. 청년들이 운영하는 작은 초밥집에는 늦은 점심을 먹으러 온 사람들로 어느 정도 붐비고 있었다. 런치 세트를 시키고 잠시 눈을 감고 오늘의 미팅을 되새겨보는 사이, 음식이 준비되었다. 배가 고팠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한입 크게 초밥을 털어 넣었더니, 신선한 생선의 맛과 향이 풍부하게 그의 입맛을 돋워 주었다.


흡족해하면서 식사를 마친 후, 그는 잠시 산책을 할 겸 광안리 방향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곧 시작될 주말을 맞이하듯 거리는 젊은 연인들과 삼삼오오 모인 친구들로 가득했다. 선선하게 불어오는 바닷바람이 싫지많은 않아 조금 더 백사장 가까이 다가가 보았다. 이렇게 바다가 넓었었나, 싶은 마음에 양손을 넓게 뻗어 바닷바람을 최대한 받아내 보고, 바다 향기를 맡으려 큰 호흡을 들이마시고 내쉬었다.


이번 주의 고달팠던 일정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고 나니, 생각보다 그의 하루가 괜찮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미팅을 위해 일찍 일어나서 준비했던 시간이 지나 미팅을 잘 마무리했고, 그의 마음도 편안해져서 부산의 바다를 즐길 여유까지 생긴 것이다.


‘이 정도면, 오늘 하루는 꽤 괜찮은 것 같네.’


하루의 끝에서 항상 내일을 걱정하고, 어제를 후회하던 모습이 많았던 그에게, 하루가 만족스럽다는 느낌은 새삼 낯설게 다가왔다. 걱정이 많아서 밤잠 설치는 날이 많은 요즘, 그래도 생각보다 괜찮다는 평을 내릴 수 있다면 그 하루는 꽤나 괜찮아 보였다.


이런 하루들이 모여 일주일이 되고 한 달이 된다면, 이번 달은, 꽤 괜찮은 달이 될 것만 같았다.


하루를 돌아보면서 웃을 수 있어서 참 기분 좋은 날이었다. 잔잔히 다가와서 부서지는 파도의 소리가 부드럽게 그의 마음에 남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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