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디자이너의 마음들]
얼마만의 집밥인지 기대감에 가득해서 퇴근하자마자 곧장 짐을 챙겨 지하철에 올라탔다. 요 며칠 동안 계속 밖에서 먹어서 그런지 속이 더부룩하다고 여겨지던 중 오후에 갑자기 초대를 받아 누나의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마침 회사에서 가까운 터라 가는 길에 과일을 좀 사가야 겠다고 생각했다.
현관에 들어서자 따뜻한 온기와 함께 정겨운 된장찌개의 향이 가득했다. 그리고 톡톡 도마를 두드리는 칼질 소리가 들려오는 거실을 배경으로 반가운 얼굴이 그를 맞이했다.
“삼촌! 왜 이렇게 늦게 왔어~?”
이제 막 여섯 살이 된 조카가 팔에 와락 안기면서 매달렸다. 곧이어 휙 돌아보며 짧게 인사한 누나는 다시 저녁 준비에 집중하는 듯했다. 과일을 식탁에 올려두고 세면대에서 손을 씻은 후, 긴장이 풀린 듯 소파에 앉아 조카와 장난을 치며 오랜만에 웃음이 가득한 저녁을 맞이했다.
“감을 사 왔네? 안 그래도 요즘 감이 당기더라니.”
“누나는 감 별로 안 좋아하지 않아? 매형이랑 지민이는 잘 먹는다고 한 것 같은데.”
“몰라, 요즘 입맛이 바뀌는 것 같아. 생전 안 먹던 곶감도 한 박스 시켰어.”
어렸을 적, 누나의 편식으로 홍시나 연감을 독차지했던 그는 머리를 갸우뚱하며 식사를 시작했다. 그리고 어쩌면 조금은 공감하는 듯 말을 이었다.
“하긴, 나도 예전엔 마른반찬만 먹었지. 이젠 국물 없으면 못 먹겠어.”
누나는 둘 다 늙었다는 이야기라면서 언제 막내가 이렇게 컸냐며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어쩌면 엄마의 야채 위주 식단에 익숙해져 있던 그는 이제 거의 안 먹는 음식이 없는 듯했다. 잦은 야근으로 밖에서 먹는 것이 하나의 이유였지만, 정말로 입맛이 변한 것 같기도 하다.
스크류바나 메로나를 좋아하던 그가 어른들이 주로 즐겨 먹던 비비빅 아이스크림을 언제부터 먹기 시작했을까. 언제부터 식혜보다 수정과가 맛있다고 여겼을까. 기억은 나지 않지만 서서히 그렇게 적응된 입맛으로 바뀌어간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면서도 신기하게 요즘도 맛있게 느껴지는 음식이 있었는데 바로 함박 스테이크였다. 한동안 보이지 않던 메뉴가 돈가스 집에서 하나 둘 등장하더니 이젠 함박스테이크 전문점도 보이는 듯했다. 주말에 한두 번 시켜먹었더니 입에 맞아서 요즘은 메뉴를 못 고르면 곧장 시키는 단골집이 되었다.
어릴 적에 자주 즐겨 먹었던 음식이 소울푸드처럼 남아 어른이 되어서도 그 음식을 즐기게 된다고 한다. 그래서 마음이 좀 울적할 때나 입맛이 없을 때에도 그 메뉴를 찾게 된다는 사람이 있다. 누군가는 학교 앞 떡볶이를, 또 다른 누군가는 할머니가 해 주신 칼국수를 그러한 추억으로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그만큼 사랑, 슬픔, 기쁨 등의 감정이 연합된 어떠한 음식이 자신도 모르게 남아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만 하다.
그는 어릴 적 아버지의 손을 잡고 처음 들어가 본 경양식 식당을 아직도 기억한다. 집 근처에 새로 생긴 곳이라 항상 지나다니면서도 가보지 못했는데, 그의 열두 번째 생일날 아버지의 특별한 선물로 방문하게 된 것이다. 갈색 소스가 덮인 함박 스테이크와 도톰하게 쌓인 샐러드 위로 뿌려진 케첩 소스까지 하나도 남김없이 다 먹고 있는 그를 흐뭇하게 바라보시던 아버지의 눈빛이 참 다정하게 느껴졌던 것이 기억에 남아있다. 그래서 그런지 함박 스테이크를 보면 아버지를 떠올리게 된다.
나이가 들어 취향은 변해도 어린 마음을 감동시켰던 소울 푸드는 도장처럼 그 마음에 남아 있었나 보다. 그렇게 음식을 통해 누군가를 기억하고, 자신이 이만큼 자랐구나 새삼 느끼는 동안, 누나는 자신의 자녀에게 감을 잘라서 조금씩 먹여주고 있었다. 조카는 나중에 자라서 어떤 음식을 특별하게 기억하게 될지, 누구의 취향을 닮아갈지 궁금해졌다.
음식을 통해 또 한층 사람을 배워가는 오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