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코끼리 사슬의 무게

소설 [디자이너의 마음들]

저녁을 먹고 나서 과일을 깎아주던 누나가 조금 머뭇거리다가 아무래도 이제 다시 일을 하기 어렵지 않겠냐는 이야기를 꺼냈다. 첫째를 출산한 이후에 아이에게 더 집중하고자 하는 마음에 한동안 자발적인 육아휴직으로 일을 내려놓고 있었던 터라, 다시 일에 복귀할 거라는 생각에 부담을 가지고 있었던 모양이다. 처음에는 누나의 육아를 적극 응원하고 동참하던 매형도, 최근에 일이 바빠지자 야근이 잦아지기도 하면서 혼자 조카를 보는 것이 쉽지는 않았을 터이지만, 일에 대한 고민을 혼자 끌어안고 있었던 것 같아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래, 회사는 아니어도 누나가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있지 않을까?”


누나를 누구보다도 잘 아는 동생이기에, 그는 요즘 많이들 재택으로 일할 수 있는 콘텐츠 분야에 대해서 더 듣고 싶으면 자신이 아는 마케팅 팀장이나 콘텐츠 관련 업무에 종사하는 친구를 소개해준다고 알려주었다. 그럼에도 누나의 얼굴은 좀처럼 밝아지진 않았다. 그녀의 자신감 넘치는 모습은 어디로 간 건지, 축 늘어진 어깨만큼이나 그녀의 목소리에는 힘이 없었다.


결혼 전 그녀는 여러 기업에서 스피치를 가르치는 워크숍이나 강의 등을 진행하는 일로 스케줄이 빡빡할 정도였다. 그리고 사람들을 좋아하는 성격이라 항상 주중이든 주말이든 모임에 나가기를 즐겨하던 그녀였다. 그러다가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여러 가지 개인적으로 공부해보고자 온라인 강의도 신청하고 책도 많이 읽으려 하는 모습이 보였지만, 막상 아이가 자라면서 일에 복귀하려고 하자 다시 그 모습을 되찾지 못할까 봐 두려워진다고 했다.


예전 누나가 즐겨하던 이야기를 통해, 코끼리 사슬 증후군에 대해 배운 적이 있었다. 코끼리를 길들이는 방법은 생각보다 매우 간단하다고 한다. 아주 어린 코끼리의 다리 한쪽을 사슬로 묶어서 나무 기둥이나 말뚝에 묶어두면 아기 코끼리는 이리저리 몸을 움직이다가 결국 포기하고 만다. 그러면 코끼리가 자라서 어른 코끼리가 되어도 사슬이 묶여있는 다리를 보고 자신이 아무리 애를 써도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아무 저항도 하지 않는다고 한다. 결국 그 사슬을 통해 자신의 한계를 정해둔 만큼, 그 너머의 가능성에 도전하지 않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어릴 적에 더 용감했고, 더 도전적이었으며 열정을 숨기지 않았던 것 같다. 사회를 경험하게 되면서, 두려움을 알아가면서, 거절감과 수치심의 아픔을 겪어보면서, 점점 더 자신의 사슬을 동여매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움직이지 않으면 아프지 않을 것 같아서, 더 이상 도전하지 않고 시도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을 택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도전하지 않는 사람에게 남아 있는 것은 사슬뿐이다. 그다음에 벌어질 수 있는 일들에 대한 기대감도 소망도 잃어버리면 무언가가 새롭게 발생할 확률은 점점 낮아질 수밖에 없었다.


그는 개인적으로 누나는 충분히 무엇이든지 해낼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자신보다 훨씬 많은 것을 경험하고, 많은 것을 보고, 표현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잠시 휴식기를 가지면서 자신감을 잃어가는 바람에 어쩌면 누나 스스로 다리에 묶인 코끼리 사슬을 보고 해보지도 않은 채, 가능성에 도전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무게에서 자유롭게 놓아질 수 있도록, 그 사슬을 끊어버리고 마음껏 다닐 수 있기를 응원하고 싶어졌다. 누나가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것을 믿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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