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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독서에 심취하는 밤

소설 [디자이너의 마음들]

한동안 독서를 하고 싶어서, 틈만 나면 새로 나온 신간을 온라인 보관함이나 장바구니에 넣어둔 적이 있다. 고민 끝에 구매한 여러 한꺼번에 들어있는 커다란 박스가  앞에서 퇴근하는 그를 기다리고 있었고,  박스를 열어보는 즐거움으로 울적한 퇴근길을 달래던 적이 있었다. 그러다 보니 책상과 책장에는 책들이 쌓여만 갔고, 읽고 싶은 책들은 끊임없이 새로 나오고 있었다.  


하루는 커피를 여러 잔 마셔서 잠이 안 오길래 책상으로 가서 노란 불빛의 스탠드를 켜고 오랜만에 원목 독서대를 꺼내어 눈앞에 펼쳐두었다. 그리고 지난달에 친구가 추천해준 책을 펼쳐서 첫 장부터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원래 잘 읽지 않던 에세이였지만, 요즘은 생각을 정리하는 속도에 맞춰 누군가의 에세이를 속으로 낭독하듯 따라 읽어 가다 보면 자신의 생각도 함께 정리가 되는 기분이라 가끔 꺼내 읽고 있다. 일상의 속도에 따라가려고 발버둥 치다가, 조금 느린 템포로 책을 읽다 보면, 마음이 숨을 쉬는 것 같았다. 마음의 심호흡처럼 독서로 하루를 마무리하는 것이, 불안한 눈동자로 계속해서 소셜미디어의 스크롤을 내리는 것보다 좋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막상 실천에 옮기기는 쉽지 않았나 보다.  


이렇게 다시 독서대를 쓰면서 책을 읽다 보면 아버지의 독서대가 생각이 나곤 했다. 얼마나 썼는지 모를 정도로 오랜 기간 그의 서재에 있던 플라스틱 독서대는, 낡고 낡아 많이 바랜듯한 색을 띠고 있었다. 항상 다른 두께의 책을 담아낸 흔적으로 고정대도 조금 느슨해진 상태였다. 하지만 아버지는 언제나 책을 읽을 때마다 고정대를 사용하고 옆에 노트를 두고 항상 문장들을 적어 내려가곤 했다. 말이 많이 없으셨던 아버지는 아마도 글을 통해 마음의 숨을 쉬고 계셨는지도 모른다.  


이제야 조금은 이해할 것 같은 아버지의 독서대, 그렇게 한 움큼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으로 이전에 모르던 것을 알게 해 준 밤이었다. 독서를 통해 사람을 알아가고, 삶을 알아가는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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