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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인정받지 못한 아이

소설 [디자이너의 마음들]

회의가 거의 다 끝나갈 무렵이었다. 김 사원의 발제 이후 좋은 피드백이 오고 간 뒤 , 팀 내에서의 아이디어가 대략 잡혀가는 분위기라 그쪽으로 나름 굳히고 있었던 순간이었다. 부장이 앞 일정을 마치고 들어오셔서 진행상황을 업데이트할 겸 잠깐 이야기를 들어본다고 하셨다. 그가 차분히 정리하면서 긍정적인 측면을 드러내면서 프로젝트의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난 이후에 돌아온 부장의 반응은 그것보다 다른 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어떻겠냐는 것이었다. 순간 당황스럽기도 했고, 김 사원의 아이디어가 단칼에 접히는 기분이 들어 괜히 그 앞에서 곧장 알겠다고 말하기가 어려웠다. 그는 최대한 이 방향에 오기까지의 이야기를 다시 한번 설명하면서, 왜 이렇게 생각하게 되었는지를 설명하고자 했다. 하지만 부장 역시나 자신의 생각이 뚜렷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말하고 있었다.  


회의를 마치고 점심시간이 시작되었다. 그는 김 사원이 괜찮아 보이는지를 슬쩍 확인하고, 고생한 팀원들에게 점심을 먹으러 가자며 먼저 자리를 정리했다. 겉으로는 괜찮아 보이려 했지만, 부장 앞에서의 엇갈린 반응보다도 그는 자신이 인정받지 못한 느낌이 들어 마음에 불편함이 남았다. 


팀원들 앞에서 부장의 이야기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기도, 그렇다고 부장에게 밀리는 모습으로 팀원들의 의욕을 저하시키는 것도 그의 뜻이 아니었다. 사원에게도 힘을 실어주는 팀장이 되고 싶었고, 부장에게도 일을 잘 정리하고 처리하는 팀장으로 보이고 싶었다. 그렇게 그는 두 가지의 갈림길에서 인정받지 못한 자신이 아쉽기만 했다.  


깊숙이 들여다보면 그 안에는 인정받지 못한 아이의 아픈 상처가 다시 한번 건드려지고 있는 중이었다. 그는 자신의 일상에서 성취감을 느끼고 싶었지만, 한마디의 지적으로 순식간에 의기소침해지는 자신을 보게 되었다.  


인정받고 싶어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고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인정받지 못한 사람의 마음은 순식간에 파도가 일렁이는 바다로 변해가고 있었다.  




인정 욕구의 끝은 어디일까. 그의 마음은 하루가 멀다 하고 하늘과 땅을 오가는 중이었다. 한 마디의 칭찬이 그를 사람들 앞에서 당당한 사람으로 만들었고, 한 마디의 핀잔이 그를 김 빠진 풍선처럼 어깨를 늘어뜨리게 만들었다.  


한 번의 칭찬이 두 번의 칭찬을 갈구하게 만들었고, 한 번의 핀잔이 두 번의 핀잔을 두려워하게 만들었다. 항상 완벽한 말을 들을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는 바람 앞에서 종이를 전혀 구겨지지 않게 만들고 싶은 마음만큼 불가능한 것을 추구하고 있었다. 인정에 대한 갈망과 두려움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그 뿌리를 타고 들어가다 보면 그가 어릴 적 풀었던 수학 문제집을 떠올리게 했다.  


그는 빨간 색연필로 갱지 종이에 커다랗게 그려진 빗금 자국을 누구보다도 보기 싫어했다. 그리고 가능한 많은 동그라미를 얻고자 계속해서 수학을 공부하고 점수에 집착했다. 그런 그에게 더 자극이 되었던 건 어머니의 채점 방식이었다. 집에서 연습으로 수학을 풀고 있을 때, 그의 어머니는 틀린 문제를 남기고 다른 문제들을 동그라미 처리하곤 하셨다. 다시 틀린 문제를 풀어서 다 맞추는 것이 그의 목표였고, 그렇게 얻어낸 백점은 아무래도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완벽을 추구하는 어머니와 그 아들의 끝없는 질주가 이어져 이젠 누군가의 인정을 듣지 않으면, 채점이 되지 않은 문제를 남겨둔 기분이었다. 그 문제에서, 그 사람에게서 반드시 인정을 받고 싶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지적을 받거나 핀잔을 듣는 날에는 큰 타격을 입기 마련이었다. 얼굴로 티를 내지 않으려고 최대한 숨겨 보지만, 다운된 마음을 일으키기가 쉽지 않았다.  


인정을 바라는 아이에게 필요한 말은 어쩌면 그 인정이 없이도 충분히 괜찮다는 안정감이었다. 그래서 그렇게 달리지 않아도, 겁내지 않아도 받아줄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안심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는 오늘의 일을 돌아보며 왜 그렇게 한 순간에 낙심을 했을까 궁금해졌다. 그리고 그 말을 듣지 않아도, 그는 이미 팀장의 역할을 열심히 수행하고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말로 인해 존재의 평가가 달라진다는 생각이 가득한 사회에서, 말 한마디에 쉽게 흔들리지 않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굳건하게 마음을 지켜야 하는 것이다.  


인정을 바라는 것을 잠시 멈추기로 했다. 숨 가쁘게 달려야만 했던 그 이유를 잠시 덮어두고, 이젠 존재적인 가치에 집중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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