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38 나만 아는 비밀

소설 [디자이너의 마음들]

어렸을 때엔 친구들끼리 비밀을 자주 만들곤 했다. 사실 그 비밀이 끝까지 지켜지는 경우는 거의 없었지만, 누군가와 공유하는 것 만으로 짜릿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자신의 상황을, 또는 누군가의 상황을 알고 있는 것만으로도 그 이야기의 무게를 덜어낼 수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어른이 되어가는 과도기에 접어들자, 어디까지 이야기를 해야 할지, 어디까지가 비밀로 남아야 하는지 가늠하기가 어려워졌다. 부모님과도 거의 대화가 없었던 만큼, 털어놓을 사람은 누나 혹은 친했던 친구뿐이었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전달하고 나면 무거운 짐을 누군가에게 떠맡기는 것 같아서 자책이 되기도 했다. 자신이 책임져야 하는 게 아닌가 싶어 입가에 맴도는 말을 다시 안으로 삼켜버리기도 했다. 


그가 점점 더 말이 없어지고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던 대학교 2학년 겨울, 그의 친구들은 그의 문제를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가 친구들 앞에서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었다.


활기차게 이야기를 나누고, 주말을 즐겁게 보내다가도, 기숙사 방문을 닫고 들어오면 세상의 모든 암흑이 몰려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그 방 안에서, 그는 홀로 고독함과의 씨름을 이어갔다. 그 씨름을 이기지 못하고 허덕일 때마다, 자신의 부족함과 연약함에 좌절하고 자신의 이중적인 모습에 괴로워했다.


결국 그 누구도 알지 못했던 비밀은 그만의 비밀로 남아 학기말까지 지속되었다. 중간에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들 때마다, 누군가에게라도 이야기하고 싶어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밝은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어두운 면모를 드러내는 것이 두려웠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때 그만 아는 비밀로 남았던 것이 수년 후가 되어서야 누나와 부모님께 알려졌고, 그 시절 고민과 고충에 대한 보상을 하듯 누나는 더 각별히 그를 신경 쓰는 것 같았다. 


비밀이 유지되는 기간은 그리 길지 않았지만, 그 비밀을 품고 있던 시절에는 하루가 너무나 길게만 느껴졌다. 기록하기도 힘겨웠던 그의 비밀은 이제 조금씩 그림자에서 나오기 시작했고, 이제는 누군가의 짐을 들어줄 수 있는 동반자로서의 역할을 시작했다. 답답했던 속마음이 한꺼풀 벗겨지고 나면,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시야를 가리던 것들이 사라지면서, 비로소 그의 얼굴이 또렷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37 목표를 통해 그려보는 내일의 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