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를 모르면 안 될 것 같은 시대적 분위기에 대해
바야흐로 AI 시대이다. AI를 모를 것 같던 60대 아버지의 입에서 "코파일럿이라고 아니?"라는 말을 들었을 때의 충격을 잊지 못한다. 업무를 위해서 챗GPT를 매일같이 열어보고 있지만, 그럼에도 아직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나였다.
그러다가 우연히 발견한 [AI 블루]라는 책을 보고, 나도 어쩌면 지금 조급함을 느끼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AI를 모르면 대체될 것이라는 말을 믿지 않는 척하면서, 어쩌면 내가 지금처럼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하루가 멀다 하고 수십 개씩 올라오는 AI관련 글들을 읽고 저장하고, 다시 리포스팅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이 시대의 분위기 속에 머무르고 싶어 한다는 건, 10대-20대에도 군중 속에 속하고 싶었던 포모(FOMO, Fear of Missing Out)와 크게 다르지 않다. 나 역시도 그러한 마음으로 매일 들어가서 새로고침을 누르면서 보고 있지만, 보다 보면 같은 내용을 퍼다 나르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요즘 인스타그램이나 스레드만 봐도, AI 도구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음을 알리는 뉴스가 많고, 자신을 팔로우하면 그에 대한 정보와 지식을 전달하겠다는 글들이 많다. 하지만 정작 그러한 글들을 저장하고, 라이크를 누르면서 만족하는 것만으로는 AI의 활용도가 높아지지 않는다는 것을 곧 알게 된다. 자신의 삶에 직접적으로 대입해서 활용해 보고, 자동화의 이점이 무엇인지 실제로 경험하지 않고서는 사용하는 프로그램의 숫자만 늘어나고 결국 인지 부하가 늘어나게 되어 더 피로한 하루가 되어버린다.
[AI 블루]에는 이러한 문장이 등장한다.
"테크 업계는 원체 속도가 빠른 곳이다. 그럼에도 나를 포함하여 많은 업계 종사자가 AI에 있어서만큼은 그 속도를 버거워하는 듯하다. AI가 유난히 버겁게 여겨지는 이유는 뭘까? 한편으로는 “다른 사람들의 속도”에 “뒤처지지” 않아야 한다고 느끼는 그 감정 속에서의 “다른 사람들”이 누구인지도 궁금해졌다.
남들보다 한 발짝 앞서야 한다고, 딱 한 발짝만 앞서려던 것이 서로가 서로의 ‘한 발짝 앞’이 되어 우리가 스스로를 달리게 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결국 코로나 블루나 메리지 블루와 같이, 어떠한 특정 상황이 지속되면서 우울감을 느끼고, 뒤쳐지는 기분을 느끼는 것이 비단 나만의 일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테크와 IT에서 이러한 주도적인 움직임이 일어나면서, 일반 분야의 사람들은 더더욱 그러한 느낌을 받게 된다. 패스트 무버들이 앞서 나가서 AI를 장악하고, 자본주의의 구조 상 상위로 올라갈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이 아닐까 싶다.
어쩌면 한 발자국을 먼저 나가려는 마음은 특히 한국 사회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상위권 성적을 유지하기 위해,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취직에 성공하기 위해 내달렸던 마음은 AI를 학습하는 것으로 이어져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매일 새롭게 출시되는 도구들을 알아가려 노력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언젠가 그 망망대해 같은 기술의 발전 앞에서 나의 한계를 여실히 느끼게 될 것이다. 모든 도구를 잘 사용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하나의 도구를 잘 사용하여 나라는 사람의 콘텐츠를 만들어가기에도 빠듯한 게 24시간이다. 그렇게 내달리다 보면,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좋아하는 사람인지는 잊히고 기술과 IT 도구의 대단한 장점만이 부각될 수도 있다.
물론 AI는 계속해서 발전할 것이고, 나도 그러한 도구의 장점을 활용하여 일을 하고 시간을 효율적으로 보내고 싶은 마음이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러한 파도에 휩싸이기보다, 어떤 방향으로 물길을 내고 파도를 탈 것인지를 파악하는 것이 먼저라는 생각이 든다. 만약 내가 불안해하고 있다면, 무엇이 나를 불안하게 만드는지, 그 원인을 파고드는 것이 중요하다. 나의 근원적인 욕구가 지식을 더 깊이 알아가는 것이라면 AI를 포함하여 다양한 주제에 대한 학습으로 이어지는 것이 필요할 것이고, 만약 다른 사람들만큼 하는 것을 원하고 있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대상을 기준으로 할 것인지 모호한 비교에서 벗어나 실제적인 목표점을 잡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AI 블루]의 저자 역시 이러한 결론으로 책을 마무리한다.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자 나에게 하는 질문으로 생각해 보면서, 잠시나만 요동치던 마음을 가라앉히고 오늘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부터 시작하려고 한다.
"그런즉 AI의 급속한 발전에 두려움을 느끼거나 우울 또는 불안을 느끼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 감정 자체가 기술에 적응하지 못했다거나 새로운 기술을 거부하고 있다는 의미인 건 아니다. 그 무엇도 합의되지 않는 상황에서 섣불리 일상 속에 밀려드는 파도를 그 누가 선뜻 기뻐할 수 있겠는가?
어쩌면 우리의 마음, 왜 이토록 요동치는지 알 길 없는 이 감정이야말로 가장 솔직한 응답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우리는 그 감정을 다스리려 노력할 것이 아니라 귀 기울이고 분석해야 한다. 왜 우울한가. 어떤 점이 불안한가. 지금 이 기술은 우리에게 어째서 문제적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