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윤택하다는 감각에 대하여
최근 SNS에는 장소를 소개하는 글들이 유난히 많이 올라온다. 특히 크리스마스나 아이들 방학처럼 “어디라도 가야 할 것 같은” 시기에는 더 그렇다. 지금 여기를 가지 않으면 후회한다는 후킹에 이끌려 릴스를 정신없이 따라가다 보면, 나만 모르던 장소들이 줄지어 나오기도 하고 이번 주말에 가봐야 하나 고민이 되기도 한다. 이처럼 어디가 좋다는 글 하나가 뜨면, 사람들은 망설임 없이 저장하고 서로를 태그 한다. 마치 그 흐름에 올라타지 않으면 주말을 잘 보내지 못할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가보면 직접 경험하게 되는 환경은 상상했던 것과 조금 다르다. 나 이외에도 그 장소를 저장했던 사람이 많아서인지, 수요에 비해 공간은 좁고, 사람은 많다. 뭐라도 먹으려고 하다 보면 줄을 서다 지치고, 아이는 금방 보채고, “한 번 와봤으니 됐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집에 돌아와 후기를 찾아보면 비슷한 말이 반복된다. 장소에 비해 사람이 너무 많아서 쾌적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로 가득하다. 그럴 때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이게 정말 장소의 문제일까?
언제나 그랬듯이 사람과 돈이 몰려있는 수도권에는 놀거리가 많다. 그래서인지 주말마다 특정 지역, 특정 장소로 사람이 몰리는 현상은 이제 낯설지도 않다. 아이들이 가고 싶어 하는 장소도, 커플들이 좋아하는 장소도 이미 포화 상태다. 선택지는 많아 보이는데, 실제로 우리가 선택하는 곳은 늘 비슷하다. 어쩌면 우리는 ‘많은 선택지’를 가진 게 아니라 동일한 선택지를 동시에 받아보고 있는 건 아닐까.
지방에서 올라오는 사람들의 입장을 떠올려보면 이 생각은 더 분명해진다. 수도권에 오면 뭔가 더 많을 것 같고, 더 나은 선택이 있을 것 같다는 기대감이다. 더현대에서 하는 브랜드 행사, 성수에서 열린다는 팝업스토어, 명동의 크리스마스 데코레이션 등등 화려함으로 가득한 모습이 SNS를 채운 것도 그 기대감을 더욱 증폭시킨다. 하지만 막상 도착하면 모두가 같은 정보를 따라 같은 시간대에 같은 장소로 이동한다. 선택지가 많다는 인상과 달리, 실제로 활용 가능한 선택은 꽤 제한적이다.
최근 들어 친구와 나눈 이야기에 꼬리를 무는 생각이 이어지면서 ‘삶이 윤택하다’는 말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우리가 기대하는 윤택함이란 더 유명한 곳에 가는 걸까, 더 핫한 장소를 경험하는 걸까. 다들 가봐야 한다고 주장하는 곳에 다녀오고 나면 나도 동일한 경험을 했다는 사실에 만족하는 것이 윤택함일까.
돌아와서 느끼는 헛헛함의 이유를 곱씹다 보니, 내가 느끼는 윤택함은 조금 다른 곳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주도권을 쥐고 있다는 감각, 그리고 선택지가 많다는 사실 그 자체보다 주말의 행선지를 선택할 수 있다는 데서 오는 안도감이 더 중요해진다.
모두가 가는 곳이 아니라 지금의 나와 우리 가족에게 맞는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나에게는 선택의 만족도로 이어진다. 그 선택이 남들 보기엔 평범해 보여도 적어도 나에게는 덜 흔들리는 결정이라는 확신이 오기 때문이다. 어쩌면 요즘 주말이 유독 피곤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마땅히 갈 곳이 없어서가 아니라, 너무 많은 추천 속에서 주도권을 잠시 내려놓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선택의 결과를 더욱 만족스럽게 하는 것은 무엇인지 고민해 보게 된다.
이번 주말에는 어디로 가야 할까?
아이의 취향과 나의 취향을 더한 곳을 찾아가는 여정으로 방향을 잡아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