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꿈은 원래 교수가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석사를 겨우 마치고 시작한 박사 과정은 만만치 않았다. 연구가 어렵기도 했지만 그것보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는게 훨씬 힘들었다. 일 년 반 동안 내가 하고 싶은 연구를 찾아 헤매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결국 중요한 논문 심사를 통과하지 못해 제적을 당했다. 내가 연구실의 첫 학생이자 첫 중퇴자였다. 너무 우울했고 패배자 같았다. 그동안 연구에만 몰두했기에, 아무런 취업 준비도 못한 채 학교 밖으로 나오게 되었다.
무기력하게 몇 달을 지내고 있었는데 연구실 동료들이 하나둘씩 연구실을 나오기 시작했다. 이상했다. 나보다 훨씬 똑똑한 친구들이었는데 왜 그런 결정을 하게 되었는지 의아했다. 안타까운 마음도 들면서 동시에 나만 이상한게 아니었다는 마음에 위로가 되었다. 교수님과 가장 가까웠던 동료마저 연구실을 나오며 정점을 찍었다. 연구실 졸업생 모임이 생기기도 전에 퇴학생 모임이 먼저 생겼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였을까? 연구실 동료들은 똑똑한 사람들이었다. 물론 약한 부분도 있지만 각자 뛰어난 면이 많은 사람들이었다. 그렇게 단체로 나올 정도로 이상한 사람들은 확실히 아니었다.
교수님은 나같이 연구성과가 저조한 학생을 동기 부여하기 위해 남들 앞에서 창피를 주는 방법을 택하셨다. 그때마다 나는 고개를 숙였고 연구실 분위기는 숙연해졌다. 이걸 아시는지 모르시는지 심지어 퇴학 후에도 연구실 동료들에게 나처럼 하지 말라고 자주 경고하셨다고 한다.
교수님을 무작정 비난하려는 것은 아니다. 내가 만약 처음 교수로 임용되어 성과를 내야 하는데 나처럼 못하는 학생을 처음으로 맞이했다면 많이 난감했을 것이다. 교수님이 개인적으로 충고도 하고 이런저런 방법을 사용하시다가 다 통하지 않으니 결국 이런 방법을 택하신 것 같다. (훌륭한 면도 많은 교수님이다.)
박사 기간 동안 나의 마음엔 공포심이 가득했다. 오늘은 또 어떻게 혼날까. 오늘 하루를 어떻게 버텨내야 할까 하는 생각뿐이었다. 교수님이 무서워서 연구가 잘 되지 않았다. 연구 내용을 발표할 때도 자신감이 없었다. ‘또 무슨 소리를 듣진 않을까’, ‘나는 정말 못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자신감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날이 갈수록 내가 아무것도 못하는 바보 같았다. 교수님을 피하고 싶었다. 작은 실패도 너무 두려웠다. 결국 성과는 나오지 않고 나의 박사 생활은 그렇게 끝나고 말았다.
중퇴 이후 오랜 시간을 혼자 보냈다. 아무도 만나기 싫었고 앞으로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막막했다. 부모님도 내 상황을 알기에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다. 한 동안 멍하게 세월을 보냈다. 다시 무언가 시작할 힘이 나지 않았다. 그동안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이번만큼은 쉽게 회복이 되지 않았다.
슬럼프는 생각보다 길어졌다. 의욕과 열정이 넘쳤던 나였는데 아무것도 못하고 있는 모습이 너무 불쌍했다.
어느 날 도저히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 싶었다. 스마트폰으로 우연히 예전 이메일을 읽다가 '이메일은 왜 다 이성적이고 딱딱한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편지를 받으면 설레지만 이메일을 받을 땐 아무런 감정도 들지 않았다. 모든게 디지털로 변환되면서 좋은 점도 많아졌지만 반대로 편지를 주고받는 감성도 사라졌다고 느꼈다.
뭔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디지털 방식에 아날로그의 감성을 더해보고 싶었다. 그리고 내가 꿈꾸는 이메일 앱을 디자인해봤다. 며칠 만에 작업을 마치고 결과물을 100명 남짓한 작은 커뮤니티에 올리고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일어나 보니 내 글에 ‘좋아요’가 100개 넘게 달리고 수많은 댓글이 달려 있었다. 며칠 뒤 구글 내부 게시판에 내가 만든 디자인이 돌고 있다는 소식이 들렸다. 그리고 어느 날 자고 일어나 보니 새로운 이메일이 하나 도착해 있었다. 'Opportunities at Google!'
그다음 날은 드랍박스에서, 그다음 날은 페이스북에서 이메일이 하나씩 와 있었다. 신기했다. 절망스러웠던 삶에 빛이 보이는 것 같았다. 인터뷰 진행 여부를 떠나 이메일을 받은 것만으로도 인정받은 기분이었다. 몇 실리콘밸리 스타트업에서도 연락이 왔었는데 그때 만났던 대표와는 지금도 연락하며 지내고 있다.
구글 본사에 가서 커다란 구글맵 로고 조형물을 봤을 때는 이게 꿈인가 싶었다. 시차 적응에 실패해서 3일간 잠도 못 자고 인터뷰 당일 하루 종일 몽롱한 상태로 온사이트(on-site) 인터뷰를 봤다.
인터뷰 분위기는 좋았어서 내심 기대했는데 안타깝게도 최종 합격하진 못했다. 사실 전혀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래도 크게 개의치 않았다. 그저 최종 면접을 무사히 마친 나를 격려해주고 싶었다. 아무런 취업 준비도 못하고 있던 나에게 기회가 주어진 것만으로도 자신감을 회복하는데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학업을 중단하게 된 것은 인생 최고의 사건이었다. 예상치 못했던 인생의 이벤트로 인해 좌절했지만, 결국 더 큰 꿈을 찾는 계기가 되었다. 생각해보니 나는 학생일 때 교수님이 멋있어서 나도 교수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강제 휴식 기간을 통해 사용자의 문제를 풀고 무엇인가 디자인할 때의 나 자신이 가장 행복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퇴학당한 덕분에 한 번도 흔들려본 적 없는 내 꿈이 교수가 아니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이 사건 이후 기회가 생겨 강연을 하면서 꼭 교수여야 가르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 무대가 학교일 필요도 없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가르치는 것만 좋아한게 아니라 제자들과 잘 지내고 싶은 마음이 컸는데, 조금 다르긴 하지만 회사에서도 동료들과 끈끈한 유대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멀리 보면 절망이 희망이 될 수도 있다.
직업은 없어질 수도 있고 막상 해보면 생각했던 것과 다를 수 있다. 내가 설정한 목표가 원래 내가 원하던 것이 아닐 수도 있다. 혹은 나에게 적성에 더 맞고 내가 더 잘하는 역할이 어딘가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다. 이 사건이 있은 후로 나는 목표는 세우되 그 안에 나를 가두지 않기로 했다. 맹목적으로 목표만 바라보지 않고 당면한 상황에 유연해지기로 했다.
여러 군데 인터뷰를 준비하고 있을 때쯤 한 컨설팅 회사에서 매력적인 프로젝트 제안을 해 왔다. 내가 딱 해보고 싶었던 분야와 서비스였다. 그래서 망설임 없이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었고, 정신을 차려보니 정직원이 되어 있었다. 그렇게 한 컨설팅 회사의 한국 지사에서 첫 회사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곳에선 나를 완전히 신뢰해 주었다. 내가 부담스러울 정도의 결정권을 가지고 일했고, 덕분에 스스로 많은 판단을 내리며 성장할 수 있었다. 또한 분에 넘치게 훌륭한 분들과 함께 일했다.
세계적인 컨설팅 회사 출신 분들, 세계적으로 유명한 분, 카카오 디렉터였던 분, IPO(기업 공개)한 실리콘밸리 스타트업에서 일하던 분, 현재는 유망한 스타트업에서 리서치를 이끌고 계신 분들 바로 곁에서 배우며 성장할 수 있었다.
대표님은 언제나 내 편이 되어주셨다. 나를 온전한 인격체로 대해주셨다. 어차피 우리는 클라이언트에게 부정적인 얘기를 들을 때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다 안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은 공포와 두려움이 아니라 어렵지만 다시 도전할 수 있는 용기와 믿음이다.
매니저는 용기와 믿음을 주는 역할이다. 그 대표님을 보며 정서적 안정감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 다른 리더 분들도 마찬가지였다. 실력뿐만 아니라 인성이 훌륭한 분들과 일하는 것에 감사했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정말 중요함을 느꼈다. 나도 아직은 부족하나 그런 신뢰를 주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같은 사람이 어디서는 완전히 패배자가 될 수도 있고 어디서는 최고의 성과자가 될 수도 있음을 깨달았다. 잘하는 일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환경이 더 중요하다는 교훈을 얻었다. 그리고 리더의 신뢰가 그 모든 것을 좌우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즐겁게 일하는 사이 많은 세월이 흘렀다. 이제는 정말 미국으로 가야 될 때가 온 것 같았다. IT의 중심인 실리콘밸리에서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서비스를 만들고 싶었다. 내가 하는 디자인이 수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끼치고 인류를 더 나은 방향으로 가게 만들고 싶었다.
본격적인 해외 이직 준비를 위해 일단 퇴사를 했다. 그때 마침 지금 다니고 있는 스타트업에서 연락이 왔다. 합류하면 해외 취업이 늦어질까 봐 고민했지만 잠깐 스타트업 경험을 하는 것은 괜찮겠다 싶었다. 대신 나를 이곳에 묶어두고 싶지 않았기에 일부러 정직원이 아닌 기간제 계약직이 되었다.
계약직이기 때문에 나는 커리어를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이것저것 회사에서 요청한 것은 다 했다. 내 전문 분야인 디자인이 아니더라도 두루 경험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당시에 나는 여러 나라를 다니며 제품을 홍보하고, 교육하고, 판매하는 일을 했다. 잠재 고객이 될 만한 여러 회사를 방문하여 교육했고, 대규모 컨퍼런스에서 수업도 열었다. 또한 판매차 방문했던 기업에선 까다로운 고객들의 질문에 답하고 데모를 보여주며 그들의 신뢰를 얻었다. 덕분에 B2B 기업에서 세일즈가 어떻게 이뤄져야 하는지 체험할 수 있었다.
사실 판매를 하면서 제품이 불편한 점도 꽤 있었지만, 나는 제품팀도 아니고 계약직이었기에 내가 건드릴 영역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제품을 잘 판매하려고 할수록 개선해야 할 많은 부분들이 보였다. 당시 회사에는 공식적인 제품디자인팀이 없었고 디자이너가 각각의 팀에 속해있었다. 따라서 여러 플랫폼의 산발적인 사용 경험을 하나로 엮어줄 역할이 필요했다.
공교롭게도 그때 코로나가 터졌고 하늘길이 막히게 되었다. 그래서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현재 회사와 정직원으로 계약하게 되었다. 굳이 다른 회사를 가지 않은 이유는 내가 좋아하는 제품이었고, 미국에 가지 못할 것이면 글로벌 고객을 대상으로 하는 서비스를 만들어보는 것도 괜찮겠다 싶었다.
정직원으로 계약한 후에 제품디자인팀 매니저 역할을 제안받았다. 나는 하나에 매우 몰두해서 일하는 스타일이기에 매니저보단 IC(Individual Contributor - 개인 기여자)가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매니저는 생각해보지도 않았는데 이런 제안이 오니 고민될 수밖에 없었다.
마침 다른 회사들에서 감사하게도 입사 제안을 주시는 경우가 있었다. 그래서 더 고민이 되었다. 오랜 고민 끝에 기회가 있을 때 매니저 경험을 해보는게 좋겠다고 결론을 내렸다. 일단 해 보고 소질이 없거나 못하면 IC로 돌아가면 되겠다고 가볍게 생각했다.
살면서 언젠간 매니저 제안을 받을 텐데, 그때 지금의 경험을 바탕으로 할지 말지를 결정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지금 해보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았다.
그런데 매니저가 되면 뭘 해야 할까? 어떻게 하면 잘하는 걸까? 기존과 달라지는 것은 무엇일까?
다행히 엔지니어링 매니저를 통해 기본적인 매니징 방법을 듣고 맨땅에서 시작하지 않을 수 있었다. 하지만 엔지니어링과 디자인은 다른 부분이 많기에 스스로 개척해야 할 부분도 많았다.
아무리 내가 매니징과 실무를 겸하는 하이브리드형 매니저라도 이렇게 빨리 변하는 업계에서 실무를 적게 하면 금방 뒤처질 것 같았다. 그래서 일단 일 년이란 기간을 나 스스로에게 부여했다. 한두 달 해보고 성공과 실패를 논하기엔 너무 짧은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일 년은 해보고 싶었다. 나 스스로에 대해 제대로 된 평가를 하려면 그 정도 기간은 필요했다. 일단 일 년은 해보고 매니저를 계속할지 IC로 돌아갈지 판단하기로 했다.
매니저가 되고 가장 먼저 한 일은 일 년간의 로드맵을 세우는 것이었다. 우선 매니저로서 할 일을 나열해봤다. 할 일이 정말 많았지만 모두 다 할 수는 없었고 몇 가지 큰 카테고리로 나눠봤다.
그랬더니 우선순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예를 들어 당장 어떤 프로세스를 만드는 것보다 팀 동료들과의 신뢰를 구축하는게 먼저였다. 또한 개인의 역량을 향상시키기 전에 모두가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서 팀이 일정 수준 이상의 퍼포먼스를 낼 수 있도록 해야 했다. 채용은 바로 필요한 상황이었기도 했고 항상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최우선 순위에 놓았다.
그랬더니 다음과 같은 순서가 되었다.
팀빌딩 및 채용 → 신뢰 형성 → 동기 부여 → 시스템 구축 → 역량 강화
다섯 가지 카테고리마다 각각 해야 할 활동 목록을 만들었다. 예를 들어 신뢰 형성 하위에는 1:1 미팅과 디자이너의날 같은 세부 활동이 있었다. 그리고 활동마다 각 주기도 정했다. 예를 들어 1:1 미팅은 격주마다, 디자이너의날은 분기마다 하기로 했다.
지난 일 년간 팀빌딩부터 시작하여 차근차근 순서대로 진행했고 현재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단계이다. (일 년 안에 마지막 단계까지 가는 것이 목표였지만 실무와 병행하고 회사에도 여러 가지 일이 있어서 조금 미뤄졌다.) 실제 내가 진행한 대로 글 순서를 정했고, 디자인에 특화된 내용은 가급적 자제하고 모두 참고할 수 있는 내용 위주로 구성했다.
개인적으로 퇴사까지 고민하는 일이 있었다. 그래서 퇴사하게 되는 상황을 가정하고, 그동안의 경험을 나만의 지식으로 기록해보고 싶었다.
글을 적다 보니 생각보다 많은 것을 배웠다는 것을 깨달았고, 내가 실수한 것들도 발견했으며, 더 잘할 수 있었던 것들도 보였고,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도 생각하게 되었다.
글로 적고 보니 이왕이면 나의 생각을 혼자 간직하기보다 많은 사람에게 공개하여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분이나 경험 많은 분의 의견을 들어보고 싶었다. 내가 이전에 작성했던 글에는 뛰어난 댓글로 통찰력을 주시는 분도 있었다.
또한 글을 통해 여러 사람을 신기하게 만났다. 지금은 다른 회사에서 일하고 있지만, 내 글에 댓글을 달았던 사람과 알게 되어 현재 회사에 추천해주었고, 그래서 그 사람과 잠시나마 같이 일할 수 있었다. 또한 뉴욕 브루클린의 한 카페에서 옆에 앉아있던 개발자가 나에게 말을 걸었는데, 대화를 하다 보니 신기하게도 내가 쓴 글을 읽은 사람이었다. 그 개발자는 트위터에 지원하려고 준비 중이었고, 나는 행운을 빌어줬다.
나는 이 글에서 매니저 역할을 잘 수행하는 방법보다 매니저라는 역할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더 많이 얘기할 것이다. 나는 그게 어떤 방법이나 기술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모두에게 적용되는 하나의 방법 같은 건 없다. 회사마다 조직구조와 매니저에게 기대하는 역할이 너무 다르다. 또한 사람을 대하는 일에 모범답안이 있을 수 없기에 각자의 상황에 맞는 방법을 찾는게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다른 회사의 좋은 문화도 우리 회사에는 독이 될 수 있다는 것도 경험했다.
글을 읽다 보면 어떤 부분은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매니저의 권한 범위를 벗어나는 예시도 있을 것이다. 스타트업이라 매니저에게 부여된 권한이 많기에 조직 구조나 전체 회사 차원의 얘기를 할 때도 있을 것이다. 그게 내가 스타트업에서 배우고 싶었던 부분이지만, 동시에 매우 혼란스럽기도 했다. 그런 부분도 가감 없이 적으려고 노력했다.
사실 매니저로서는 정말 미약한 경력이라 누군가 ‘고작 일 년 해보고 네가 매니저에 대해 뭘 알아’라고 할 것만 같은 두려움도 있었다. 비록 내가 걸어온 길이 최고라고는 말할 수 없겠지만, 비교적 짧은 기간 내에 많은 것을 배우고 터득했다. 그 경험이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길 바라며 글을 적었다. (참고로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IT 업계나 스타트업에서만 사용되는 용어에 대한 설명을 덧붙였다.)
처음부터 매니저가 되고 싶어서 착실히 준비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일을 열심히 하다 보니 어쩌다 매니저 요청을 받았고, 나처럼 가볍고 순진한 마음으로 시작했을 수 있다. 어쩌다 자신도 모르게 깜깜한 터널로 들어간 누군가에게 이 글이 조금이라도 위로와 도움이 되면 좋겠다.
*팀원은 팀 동료 혹은 팀 사람, 팀장은 매니저라고 지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