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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찬호 Jun 19. 2023

1-2. 대만 예류지질공원과 지우펀, 자연의 아름다움

영원하지 않기에 소중하고 잊을 수 없는

대만에서의 첫째 날은 무려 30000보라는 유례없는 걸음수를 기록하며 마무리되었습니다. 다음날은 한국 관광객들에게 유명한 코스인 예스진지(예류지질공원-스펀-진과스-지우펀) 투어 중에서 진과스를 제외한 예스지 투어가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투어 집결지는 타이베이 중앙역으로 제가 머물던 곳에서부터 전철로 이동하였습니다.


이동 중, 타이베이 지하철의 귀엽고 발랄한 디자인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전철로 이동하는 동안에도 곳곳에 있는 디자인들이 눈에 들어왔는데, 그중에서도 하트로 도배되어 있던 엘리베이터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알고 보면 사랑의 도시는 파리가 아니라 타이베이였나 봅니다. 이렇게 귀여운 디자인들을 지나쳐서 타이베이 중앙역에 도착했고, 집결지에서 가이드님을 만나 첫 번째 목적지인 예류지질공원으로 향했습니다.


예류지질공원 입구에 부착되어 있는 지도와 관광안내판

예류지질공원은 바닷물과 바람의 침식과 풍화작용으로 인해 오랜 세월 동안 깎여나간 다양한 형태의 사암, 기암괴석들이 특징인 대만의 대표적인 관광지입니다. 입구에 들어서면 보이는 안내판에서 공원의 지도와 관광 포인트들을 상세하게 볼 수 있었는데, 이곳의 가장 유명한 바위인 여왕 바위가 번호를 장식하는 메인 그래픽 요소로서 사용되고 있는 점이 매력적이었습니다. 안내판에 붙어있는 관광 포인트들의 이름들을 쭉 살펴보니, 요정의 신발, 생강 바위, 벌집 바위, 킹콩 바위 등 자연이 깎아 놓은 것들을 인간의 관점으로 그 형태를 해석하여 명명해 놓은 것이 굉장히 재밌게 느껴졌습니다. 그에 덧붙여, 가이드님은 바위들을 설명하시면서 "그렇게 보이지 않더라도 우리는 그렇게 봐야 하는 거예요, 그러기로 약속해 주세요"라고 말씀하셔서 모두를 웃음 짓게 하셨습니다:D


1. 공원에서 발견한 반가운 한글 표지판 2. 귀여운 얼굴에 그렇지 못한 머리장식을 올려놓은 캐릭터


실제로 본 바위들은 사진보다 웅장하고 신비로웠습니다.

예류지질공원은 대만의 대표적이고 유명한 관광지인 까닭에, 각종 여행 프로그램이나 인스타그램에서 그 사진을 많이 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실제 두 눈으로 본 이곳의 풍경은 사진으로 다 표현하지 못할 정도로 신비롭고 매력적이었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유명한 여왕두(Queen's Head)는 10년에서 20년이 지나면 바람의 풍화작용으로 인해 그 머리가 떨어질 예정이라고 하지만, 대만 정부는 자연이 빚어놓은 이 작품들을 인간이 인위적으로 손대면 안 된다고 판단하여 별도의 보수작업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따라서 여왕두는 향후 20년 후에 사진 속에서만 볼 수 있게 되지만 그렇기 때문에 의미 있는 게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사람의 삶도 언젠간 끝이 나는 것을 알기에 소중하고 의미 있게 느껴지는 것처럼 이곳의 풍경 또한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두며 그 자체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것이 중요한 것 아닐까 싶었습니다.


예류지질공원에서의 일정을 끝내고 다음 행선지로 향하는 길에서 발견한 귀여운 타일 모자이크

이렇게 신비롭고 아름다운 자연의 작품들을 충분히 감상한 뒤 향한 곳은 대만의 오래된 마을 스펀이었습니다. 스펀은 관광객들에게 풍등을 날리는 곳으로 유명한 관광지입니다.


풍등 가격표와 글씨를 쓸 수 있게 고정되어 있는 풍등


이곳 스펀에서는 너 나 할 것 없이 풍등을 날리는 것이 정해진 수순이었습니다. 풍등은 메뉴판(?)을 통해서 빨간색 혹은 4면이 다른 색을 고를 수 있었습니다. 다양한 선택지를 보여주는 풍등 메뉴판은 그 자체의 디자인도 매력적이었습니다. 형형색색인 풍등의 색과 다양한 선택지들을 꽉꽉 채워놓은 메뉴판을 보자니 게임에 과금을 하며 끝없이 옵션을 추가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알 것만 같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튜닝의 끝은 순정이라는 신념에 따라서 가장 기본인 빨간색을 골랐습니다. 또한 중화권에서 빨간색은 행운을 상징하기 때문에 이왕 소원을 비는 김에 행운을 추가하는 마음으로 선택했습니다. 풍등은 글씨를 쓸 수 있게 고정되어 있었고, 여기에 붓을 가지고 먹물을 묻혀 원하는 소원을 4면에 채우는 방식이었습니다. 저는 디자이너로서의 자존심을 걸고 그동안 갈고닦은 타이포그래피 실력을 보여주고자 긴장되는 마음으로 차분하게 소원을 써 내려갔습니다. 막상 소원을 쓰려하니 생각보다 인생에서 중요한 것들은 많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나와 가족의 건강, 이루고자 하는 직업적인 목표 마지막으로 따뜻한 마음을 타인과 함께 나누는 감정. 축약하자면 건강, 일, 사랑 이 세 가지가 저의 소원이었습니다. 이렇게 소원을 적고 풍등을 날리며 들었던 생각은, 결국 소원을 비는 것은 저절로 이루어지길 바라는 요행이 아닌 인생의 우선순위들을 되새겨보며 앞으로의 나날들을 다짐하게 되는 행위가 아닐까 였습니다.

지우펀의 상징, 빨간 풍등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하늘로 날아간 소원을 뒤로하며 투어의 마지막 행선지인 지우펀으로 향했습니다. 지우펀은 한국인들에게 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모티브가 된 장소라 알려져 있는 관광지입니다. 하지만 가이드님의 설명에 따르면 그러한 정보는 루머라고 합니다. 그렇지만 영화에 나온 장소가 연상이 될 정도로 신비롭고 아름답기에 그러한 소문이 끊이지 않고 퍼지게 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지우펀은 예상보다 굉장히 사람들로 붐비는 장소였습니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중국어와 일본어 그리고 한국어로 인해 내가 있는 곳이 이승인지 저승인지 모를 정도로 정신이 없었습니다. 겨우 인파를 뚫고 한적한 골목으로 들어가서 구경을 하려는데 코를 덮치는 취두부의 냄새는 다시 한번 저를 저승의 문턱으로 데려가는 것 같았습니다. 네덜란드에서 먹었던 청어는 애교스럽게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투어의 마지막이라 그런지 체력도 떨어지고 붐비는 인파로 인해 지쳤을 무렵 저는 한적해 보이는 한 카페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창가가 트여있는 이 카페는 바글거리는 바깥과는 아주 다른 분위기였습니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지우펀의 바다는 그간 지친 심신을 위로해 줄 만큼 반짝거리고 아름다웠습니다. 자리에 앉았던 시점이 해가 지기 시작할 무렵이어서, 저는 하늘이 깜깜해질 때까지 카페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이 풍경을 다시 보기 위해서라면 지우펀을 또 올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멀리 바다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깜깜해진 후에야 저는 투어에 합류하여 타이베이 시내로 돌아갔습니다.


대만의 대표적인 관광지들을 보며 느낀 점은 한마디로 자연의 아름다움이었습니다. 수천 년의 바람과 물결이 조각한 바위들과 지우펀의 바다는 잊지 못할 풍경이었습니다. 꽃이 피고 지고 눈 내리는 겨울이 오는 것처럼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은 인간이 만든 것들과는 다른 차원의 것이라 생각됩니다. 태어나고 죽어가는 인간의 삶 또한 자연스럽기에 아름다운 것이 아닐까 합니다. 이렇게 자연의 아름다움을 한껏 느낄 수 있었던 대만에서의 두 번째 날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다음 여행기는 대만에서의 마지막 날, 타이베이 현대미술관 방문기를 들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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