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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자인너마저 Apr 10. 2020

'착한 디자인'이 대체 뭐길래

디자인과 도덕은 과연 어떻게 정의될 수 있을까


# 착함의 정의


'착한'이라는 용어가 유행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이 용어가 널리 사용되면서 디자인에 '착함'을 강요하여 '착한 디자인'역시 유행했었죠. 디자인이 착하다는 것은 대체 무슨 의미일까요. 전문적인 용어는 아닐 테고... 제가 조금 혼란스러웠던 이유는 이 '착함'이라는 단어에 대해 각자 생각이 다르고, 사회적으로  어떠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기준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착하다' 것은  누구도 함부로 비판하기 어려운 그런 긍정적인 덕목이 닐까요?

요즘 IT업계 최대 화두는 '배달의민족'이네요. 작년 말 배민이 DH에 매각되자 '게르만민족'이라 조롱을 받더니, 이번에는 비지니스 모델이 배달 수수료로 전환되면서 '배신의 민족'이라는 볼멘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을 밝히자면, 크게 문제 될 것이 아닌데 '타이밍이 안 좋았다' 생각되고, 그만큼 '배달의민족을 아끼는 사용자가 많았구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볼멘소리 중에 대부분 '치킨값이 오른 원인, 배달 원래 공짜였는데 배달료 생김' 등 근거 없는 원색적인 비난이 이어지고 있어 속상하기도 합니다. 배달료가 생긴 이유가 과연 배달의민족 때문일까요? 그러면 물을 사 먹게 된 건 '삼다수' 때문입니까? 시대와 환경이 변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어릴 시절 물을 사서 마신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냉장고 속 델몬트 유리병에는 언제나 보리차가 담겨있었고, 가끔 다른 음료병에 담겨있는 것도 있었는데, 물이라 착각했다가 멸치 우린 물을 들이켜기도 했습니다... 88 올림픽을 기점으로 생수가 전국적으로 판매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시대가 변하면서 IT기술 덕분에 삶이 바뀌었고 다양한 산업이 없어지기도 하고 생겨났습니다. 주말 점심 중국집에서만 배달을 하던 것이 이제 밤낮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종류의 음식을 직접 배달시켜 먹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일회용 포장재, 라이더라는 직업군이 생겼고, 다양한 매출 관련 데이터와 결제 서비스를 통해 사장님의 손에 잡힐 듯 다양한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게 되었고 어떤 메뉴가 잘 나가는지 나름의 계획을 세움과 동시에, 재고를 더 원활하게 관리할 수 있게 된 것은 앞서 언급한 IT기술의 뒷받침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회사가 이러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을 함에 있어 소량의 수수료(5.8%)를 받는 것이 과연 그렇게 욕을 먹을 일인가... 싶습니다. 자동차를 사면 딜러에게 수수료를 내고, 결혼을 준비할 때도 웨딩플래너에게 일정 수수료 명목의 비용을 지불합니다. 그것이 싫으면 직접 발로 뛰어 알아보면 되겠죠. 결국 4월 10일 오늘, 배달의민족이 수수료 개편 전면 백지화를 선언했네요.


대기업이 작은기업 밥그릇 뺏는것에는 거품을 물면서, 나라가 기업 밥그릇 빼았는건 괜찮은가 보네요


특정 정치인이 주장하는 '배달앱은 단순 플랫폼이 아니냐'라는 말에 반박을 하고 싶습니다. 비슷하게 만드는 것은 쉽겠죠. 군산 공공 배달앱 '배달의명수'가 그러했듯. 그러나 그 비슷하게 만드는 것마저 과연 배달의민족 없이 가능했을까 묻고 싶습니다. 플랫폼을 만드는 것 정말 어렵습니다. 오프라인 쇼핑과 물류의 강자 롯데가 이커머스 플랫폼을 10년이 넘도록 제대로 구축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다시 돌아와서, 특정 서비스 혹은 디자인을 설명하고 평가하는 데는 다양한 요소들이 있습니다. 그 복잡함 속에 도덕적 측면의 '착함'에만 매몰되어 평가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착함은 '미덕'이지 필수가 아니니까요. 그리고 반대로 '착함'의 가치는 성공한 서비스나 제품이 있고 나서 조명을 받는게 순서이지, 착함은 끝까지 지켜냈지만 성공하지 못한 서비스와 제품에 과연 우리가 관심을 가질지 의문입니다.



#착함의 다양한 기준? 친환경

FREITAG

'착한 디자인'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기준은 '친환경적인가'입니다. 지구의 자원은 제한적이고 환경 문제가 언제나 이슈입니다. 빅터 파파넥 Victor Papanek의 '인간을 위한 디자인'을 시작으로 디자이너의 사회적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요구되고 있습니다. 프라이탁은 이제 좀 식상할 테니 바로 넘어가겠습니다.

1년 뒤에 보겠네요

결국 2020 도쿄 올림픽이 1년 미뤄졌네요. 개인적으로 많이 기대했었는데 아쉽습니다. 올림픽을 치르기위해  경기장뿐 아니라 선수들의 숙소인 선수촌 아파트 역시 새로 지었을 텐데요. 아파트야 올림픽이 지나고 나서 분양되겠지만, 선수들이 사용한 가구는 보통 버리는데요. 이 역시 굉장한 자원낭비입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도쿄 올림픽 선수촌에는 종이로만든 재활용 가능한 '카드보드 침대'가 있습니다. 내구성이 강한 카드보드 프레임과 재활용 가능한 폴리에틸렌 소재의 매트리스를 각 선수촌 아파트에 배치했다고 하네요!

ICIS 8.0

최근 국내에도 좋은 사례가 있어서 가져와 봤습니다. 단순히 친환경적인 것만이 아니라 더 좋았습니다. 이쁩니다! 롯데칠성의 아이시스 8.0 생수병은 비닐 라벨을 없앴는데요. 페트병을 재활용하려면 기존 생수병의 브랜드 라벨을 떼어내야 하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과정을 생략하고 분리수거를 하죠. 이를 개선하기 위해 사회적 캠페인이나 광고가 아닌 패키지 디자인으로 해결한 사례입니다. 과감히 비닐 브랜드 라벨을 제거했는데요, 비주얼적으로도 굉장히 멋집니다. 롯데칠성 온라인몰에서만 구입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Olympic Shooting Venue, London

위 사진은 믿기 힘들겠지만, 런던 올림픽 사격장입니다. 친환경적+조형적 관점에서 멋진 사례라서 소개합니다. 이 경기장은 원래 왕립 포병대였으나, 올림픽을 위해 임시로 설치된 경기장인데요. 올림픽을 마친 후에는 본래의 역할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임시로 설치되었습니다. 겉으로 봤을 때는 단순히 디자인을 신경 썼구나 생각할 수도 있는데요, 각각의 구멍들은 공기가 순환하는 역할을 하는 통풍구입니다. 전기 사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건축적 관점에서 해결한 '착한'디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이 경기장에서 진종오 선수가 2012 런던 올림픽 사격 50m 권총 금메달을 획득하기도 했습니다!

NIKE JOYRIDE

반대의 경우입니다. 예쁜 디자인과 기술적 혁신의 나이키의 러닝화인 조이라이드 모델인데요, 발바닥 아랫면에 알맹이들이 보이시나요? 발밑의 작음 '폼 비즈'가 발의 모양에 맞게 변형되어 풍부한 쿠셔닝을 준다고 해요. 그래서 오랜 러닝 시간에도 발에 피로감을 덜어주는 새로운 디자인이라고 합니다. 이 알갱이는 150여 가지 다른 소재를 테스트하여 결정하게 되었고, 고무와 플라스틱의 성질을 동시에 갖고 있어 혁신적인 소재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 미세 플라스틱은 크기가 굉장히 작기 때문에 수거하기가 어렵고, 재활용되기도 힘들다고 합니다. 특히 나이키가 이 소재에 대해 생분해성인지, 아니면 재활용으로 만들어진 소 재인지에 대해 전혀 밝히지 않았기 때문에 더욱 문제가 되었습니다. 그동안 지속 가능하고 친환경 소재 개발에 힘쓰던 나이키였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조금 실망스러웠던 경우입니다.


디자이너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쓰레기를 만든다.

- 스콧 유언 Scott Ewen



#착함의 다양한 기준? 인류애

코로나 19 바이러 스로인 해 전 세계가 혼란스럽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인류애를 발휘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사회적 거리두기 실천을 위해 포르투갈의 Tiago Silva, Hugo Suissas 두 디자이너가 멋진 그래픽 워크를 공개했습니다.


Project info:

Project name: Home Flags Collection

Design: Hugo Suissas and Tiago Silva




#착함의 다양한 기준? 공공환경


좋은 디자인만 하지 말고, 좋은 일을 하라!

- 데이비드 버먼 David Berman

염리동 소금길 범죄예방 디자인 프로젝트

새로운 시각과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기란 참 어렵습니다. 범죄 예방에 접근하는 기존의 방법은 CCTV와 순찰이었습니다. 이러한 방식은 대부분 설계자와 이용자가 일방적이고 단절되었다는 단점이 있는데요, 이를 해결한 사회적 서비스 디자인 사례가 있어서 소개드립니다. 염리동 소금길 범죄예방 프로젝트인데요, 주민들의 참여를 통해 커뮤니티 회복과 지역 환경 개선, 서로가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자생적인 범죄 예방의 모델이 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하단의 링크를 참고해주세요! 내용이 많습니다

http://sampartners.co.kr/portfolio-item/design-for-crime-prevention/


하지만 이 역시도 2013년 프로젝트였기 때문에, 지자체에서 얼마나 적극적으로 유지하고 보수해나가는지가 중요했는데, 7~8년이 지난 지금은 군데군데 보수가 필요함에도 방치되어 예전의 효과를 누리지는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안타깝습니다!

서울시내 가판대 개선 사례

한때 디자인 서울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다양한 서울시내 공공 환경 개선 디자인 프로젝트들이 있었습니다. 공사판의 펜스 디자인, 서울시 폰트 개발, 서울시 해치 캐릭터 개발 등 다양한 사례가 있었는데요, 그중 하나로 가판대 개선 사례가 기억에 남아 소환해봅니다. 외관도 깨끗하게 바뀌고, 통일성 있고, 또 길거리에 묻히는 색상이라 거리 미관도 많이 개선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사례를 통해 경기도에서도 가로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가로판매대와 구두수선대를 새롭게 디자인했다고 하네요.



하지만, 모든 공공환경 개선 디자인이 '착한'사례로 남은 것은 아닙니다. 2012년도에 노숙인들을 위한 종이 박스집을 만들어 보급하기도 했는데요. 첫 번째 이슈로 표절논란이 있었고, 두 번째로 부서지기 쉽고 사방이 막혀 폐쇄공포증을 유발한다는 지적이 있었습니다. 이와 별개로 저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공동체 마인드에 어긋난다 생각합니다. 게다가 노숙인들에게 이러한 안식처를 제공하는 것은 그들을 안주하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걱정되기도 합니다. 이는 물고기 잡는 방법을 알려주지 않고, 물고기를 던져주는 행위와 같다 생각합니다. 오히려 노숙인의 자립을 돕는 잡지인 '빅이슈'와 같은 콘텐츠가 더욱 효과적이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착함의 다양하고도 상대적인 기준


한때 미래의 금속이라고 불리던 소재가 있습니다. 바로 알루미늄입니다. 재활용률이 높고 가볍고 인체에 무해하다는 특성 덕분에 지금도 코카콜라 캔 뿐만 아니라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고 있죠. 재활용의 상징과도 같은 알루미늄 캔. 하지만 이 알루미늄의 원료인 보크사이트 Bauxite에 대해서 잘 알고 계신가요? 노천광이나 땅에서 채굴하는 이 보크사이트 때문에 엄청난 환경파괴가 일어난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제련 과정에서 발생하는 폐기물은 지하수를 오염시키고 동물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지속 가능한 소재'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굉장히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합니다. 재활용은 분명히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듯 생산과 소비, 사용과 폐기의 프로세스로 보았을 때 재활용은 가장 마지막으로 해야 할 일이기도 합니다. 가장 먼저 할 일은 아니라는 것이죠.



앞서 말씀드렸듯, 디자인을 설명하고 평가하는 데는 다양한 요소들이 있는데요. 그 속에 '착함'이라는 보편적인 방식으로만 문제를 단순하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항상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면피용 덕목이랄까요. '착하니까 괜찮네, 이거 착한 거니까 진행해도 되는 거죠?' 누군가와의 갈등 없이 쉽게 마음의 짐을 털어버릴 수 있는 치트키, 착함... 저는 '기본으로 돌아가라'라는 디터 람스 Dieter Rams의 말이 지금의 시대에 더욱 필요한 덕목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고(친환경), 불필요한 외출을 자제하고(인류애), 불필요한 디자인을 하지 않고 서로를 배려하는 것(공공환경)이 지금 이 시대가 원하는 '착함'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이미지 출처

https://www.ignant.com/2019/11/14/freitag-sweat-yourself-shop-flagship-store-zurich-switzerland/

https://www.designboom.com/design/nike-joyride-cushioning-system-tpe-beads-07-25-2019/

https://www.designboom.com/design/athletes-sleep-on-cardboard-beds-tokyo-olympics-01-10-2020/

https://www.designboom.com/design/suissas-silva-flags-into-houses-stay-home-fight-covid19-03-27-2020/

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2031001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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