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익숙한 나머지 소중함을 잊고 있었던 주머니라는 녀석
평소에 너무 익숙한 나머지 소중함을 잊고 있었던 주머니라는 녀석.
요즘처럼 스마트폰이 신체의 일부가 되어버린 시대에서는 더더욱 주머니의 소중함을 새삼 느끼고 있는데요.
주머니는 지극히 '쓸모'에 의해 생긴 녀석이기 때문에 있을 땐 당연하고 없으면 허전한 그런 것 같습니다.
영어로 주머니를 뜻하는 ‘포켓(pocket)은 작은 가방을 의미하는 옛 프랑스어의 ‘포크(poque)’에서 왔습니다. 그러니까 최초의 주머니는 일종의 가방이었던 것이죠. 주머니가 등장하기 전까지 사람들은 허리에 조그마한 자루를 대롱대롱 매달고 다녔다고 해요. 이 자루 속에는 돈이나 열쇠, 거울 등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케이크와 같은 음식(!)도 넣고 다녔다고...
우리나라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사극에서 많이 보셨죠?? 예전에는 주머니가 없어서 두루마기 소매에 엽전이나 서찰 등을 넣어 다녔다고 합니다. 이 두루마기 소매 안에 든 물건을 좀도둑들 훔치면서 생겨난 말이 바로 소매치기!!
우리에게 익숙한 주머니의 형태는 16세기경 남성복 바지에서 처음 등장해 17세기 후반부터는 지금과 비슷한 모습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당시 유행템이었던 바지의 허리 부분에는 회중시계를 넣는 용도의 포브 포켓(fob pocket)과 현대의 슬랙스에도 찾아볼 수 있는 사이드포켓(side pocket)이 있었는데요. 이후 계몽주의와 프랑스 대혁명, 산업화의 영향으로 의복에도 실용적인 측면이 더욱 강조되기 시작됐습니다.
이러한 배경 덕분에 우리는 바지 오른쪽 주머니의 저 작은 주머니를 Watch Pocket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죠! 회중시계를 넣어 다녔다 하여~ 요즘은 굳이 저 작은 주머니가 필요한가 싶기도 한데요... 열쇠도 동전도 시계도 주머니에 잘 넣고 다닐 일이 없으니까요. 그나마 립밤 정도..?
남성 슈트를 보면 슈트 재킷의 위아래, 바지 앞 뒤에 정말 많은 주머니가 각각 다른 용도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단순히 멋을 부리기 위함이 아니라 모두 다 목적이 있는 주머니들인데요. 예전에는 펜, 노트, 티켓, 열쇠 등 다양한 수납이 각각 필요했기 때문에 이러한 슈트 주머니들이 생겨난 것 같습니다.
요즘은 주머니가 패션의 일부가 되어서 기능주의 보다는 브랜드의 아이덴티티, 멋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죠. 스톤아일랜드나 아크로님처럼! 하지만 그 시작은 남성복과 군복의 건빵주머니처럼 철저한 기능주의였다는 사실!
20세기에 들어서야 드디어 여성복에도 주머니를 요구하는 움직임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전쟁 이후 전통적으로 남성의 일이라고 여겨졌던 사무실이나 공장에서의 일을 여성들이 도맡게 된 것이 그 계기가 되어 여성복의 형태도 점차 실용적인 디자인을 따라가게 되었습니다.
그 중심에 코코 샤넬이 있었는데요(네, 그 샤넬 맞습니다). 샤넬은 처음으로 주머니를 단 실용적인 여성용 재킷을 선보였습니다. 또 항상 손에 들고 다녀야 했던 핸드백에도 체인을 달아 어깨에 멜 수 있도록 했죠. ‘편하지 않은 것은 럭셔리하지 않다’는 것이 샤넬의 지론. 샤넬 덕분에 여성들의 생 확 속 편리함은 물론, 가치관까지 변화됐다고 볼 수 있겠네요. 멋있다...
의복은 오랜 시간 '기능'보다는 '美'에 초점이 맞춰져 왔지만, 이렇듯 실용성을 꾸준히 보완해 왔던 것 같습니다(소재의 발전, 주머니의 개발 등). 그 당시의 작은 혁신과 실용주의에 대한 요구가 없었다면, 과연 지금 내 바지에 주머니가 있었을지... 의문이 드네요.
저는 오른쪽 바지 주머니에 보통 립밤과 카드 지갑이 넣고 다니고, 왼쪽 바지 주머니에 스마트폰을 넣고 다니는데요. 모두 저에게 중요한 물건이니만큼 주머니가 터지지 않게 조심히 다뤄야겠네요...
무심코 지나쳤던 주머니가 의복의 역사 속에 꽤나 의미 있는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니, 그 존재감이 왠지 더 크게 느껴집니다. 그럼 이만!
이미지 출처
http://www.keithtio.com/gravity-pock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