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폭풍이 두렵긴 하지만
“아휴, 도대체 사천만 원을 어디에 쓴 거야?”
“그래도 나를 위해 쓴 것은 하나도 없다고요.”
나는 부끄럽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했다. 그냥 조용히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었다. 가끔 지름신이 강림할 때면 제어가 되지 않아 이 지경에 이르렀다. 누굴 원망하고 탓하랴.
‘인생 뭐 있니, 그렇게 아등바등 살 필요 없어. 너 자신을 위해 사는 거야!’
‘맞아, 그렇지!’
마치 정답을 알려주듯 달콤한 속임수를 가장한 첫 지름신이 내게 들어왔다.
팔랑 귀를 가진 나는 그럴듯하게 유혹하는 순간을 잠깐의 망설임도 없이 그대로 인정하고 말았다. 당연히 뒷일은 생각하지 않았다. 그때부터 오직 나를 위한 쇼핑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내친김에 백화점 마네킹에 걸려 있는 신상 원피스와 재킷을 샀다. 평소에 갖고 싶었던 명품 가방도 하나 샀다. 지름신의 강림은 짜릿하고 통쾌했다.
카드 결제일은 왜 이리 빨리 오는 거야. 후폭풍이 있을 거란 예상을 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이렇게 빨리 올 것에 대한 대처를 하지 못할 뿐이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결제 금액을 채울만한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렇다고 남편한테 곧바로 도움을 청하자니 자존심이 상했다. 어떻게든 혼자 해결할 생각이었기에 지름신의 강림이 무섭지 않았다. 날이 갈수록 지름신은 시도 때도 없이 찾아왔다. 마치 제집 드나들 듯 들어와선 도무지 나갈 생각을 안 했다. 이미 습관이 되어 버렸다.
나는 쇼핑으로 스트레스를 풀었다. 결국, 카드 돌려 막기를 하다가 그마저도 여의치 않아 담보 대출을 받아서 해결하려 했다. 그 덕분(?)에 남편이 모른 대출이 사천만 원이 되었다. 어쩌다가 여기까지 왔는지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문득문득 빚을 갚아야 하는 부담이 삶의 버거움으로 밀려올 땐 상실감에 빠져 무기력해지는 날도 부지기수였다. 버틸 힘조차 빼앗겨버린 이기적인 행동 앞에서 나는 속수무책이었다.
남편이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조그마한 사업이라도 해야겠다며 대출 상담을 하다가 모든 것이 들통나고 말았다. 어차피 혼자 해결하지 못할 바엔 차라리 도움을 요청할 걸, 그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몇 년을 숨죽이며 살았는지 모른다.
“그동안 숨기느라 고생했어. 바보같이 왜 말 안 했어?”
“혼날까 봐 그랬지. 내가 어떻게든 다 갚으려고 했는데 미안해. 그래도 사백만 원 정도는 갚았잖아. 잘했지?”
“참나, 솔직히 말해봐. 다른 대출 또 있는 거 아냐?”
“맹세코 더는 없어. 진짜야.”
의외로 남편은 화를 내지 않았다. 이제야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목구멍까지 차오른 체증이 단번에 내려간 느낌이었다. 날마다 위태위태하던 나의 감정 상태도 빠르게 안정된 궤도 안으로 들어왔다.
지름신의 강림에 민감하게 반응하던 나는 새사람이 되기 위해 성령 강림을 만나러 가기로 한 날이었다. 현관문을 나서는데 느닷없이 한 통의 문자가 왔다.
-마지막 기회, 백화점 전 매장 구십 프로 할인!
두 마음의 팽팽한 신경전이 볼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