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릉도 도동항에 따개비 밥 먹으러 같이 가실래요?
불현듯 제주도에서 잠수함을 탔을 때가 생각났다. 그날따라 파도가 높아 잠수함에 간신히 오르긴 했지만, 그때부터 죽음의 시간이 계속되었다. 마지막 물 한 방울까지 다 쏟아냈던 생각조차 하기 싫은 최악의 상황이었다. 기진맥진하였기에 당연히 바닷속에 있는 것들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육지로 나가고만 싶었다.
나는 그 이후 배를 탄 적이 별로 없었다. 그런데 또다시 배를 탈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해 왔다. 아픔의 기억이 있었기에 나름대로 뱃멀미에 대한 준비를 단단히 했다. 상미는 멀미하지 않는다며 일단 먹는 즐거움부터 챙겼다. 유독 뱃멀미가 심한 나는 당연히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그런대로 출발은 순조로웠다.
대략 한 시간 정도 지났을까 드디어 잠잠하던 속이 울렁이기 시작했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고통스러움이 재연되는 것 같아 불안했다. 아니나 다를까 나는 무서운 공포에 휩쓸린 듯 사지에 힘이 다 빠졌고, 절반은 이미 정신을 잃은 듯했다. 도동항에 어떻게 왔는지 아무런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 와중에도 배가 고팠다. 울렁거린 속이 채 가라앉지도 않았는데 내리자마자 식당부터 찾았다. 그러고선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홍합 밥과 따개비 밥을 빛의 속도로 먹어 치웠다. 천천히 먹으라는 상미의 시선을 피해 가면서 말이다.
그제야 푸르디푸른 울릉도의 바다가 제대로 보였다. 도동항에서 바라본 해상 절벽은 환상 그 자체였다. 내생에 이처럼 첫눈에 반하여 볼수록 빠져드는 황홀한 비경은 처음이었다.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는 별천지의 세계였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다 담을까 행여 놓칠세라 잠시도 눈을 뗄 수 없었다. 어디 그뿐이랴. 환상적인 바닷길을 따라 해안도로를 달릴 때는 그 짜릿한 순간들이 내 가슴 안에서 화려한 불꽃처럼 퍼트려지며 아름답게 수놓은 듯했다. 황홀했다. 시간을 두고 나리분지, 봉래폭포, 관음도, 행남등대 가는 길, 그리고 성인봉까지 있는 그대로의 멋스러움을 고스란히 가슴에 담았다.
다음날 해 질 녘쯤 노을이 물든 바다를 품에 안고 도동항에서 저동항까지 이어지는 둘레길을 트래킹 했다. 나는 바다와 맞닿아 있는 둘레길 쪽으로 몸과 마음을 최대한 밀착시키며 걸었다. 때때로 절벽에 부딪히는 파도 소리에 매료되어 넋을 잃고 바라보다 하마터면 바다로 추락할 뻔한 위기마저도 즐겼다. 걷는 낙을 즐기던 중 절벽 사잇길로 한 사람씩 지나가야 할 만큼 좁은 길을 만났을 땐 아찔한 전율을 느끼며 뱃멀미로 고생했던 기억을 까맣게 잊어버렸다. 참으로 위로가 되었고 고생 끝에 주어지는 어떤 특별한 보상 같았다. 그런데 아직 울릉도 구경도 다 하지 못했는데 상미는 느닷없이 다음날엔 독도에 가자고 했다.
‘아뿔싸! 드디어 올 것이 오고 말았다. 그랬다. 나도 어차피 울릉도까지 힘들게 왔으니 우리 땅 독도에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런데 몇 번을 생각해 봐도 뱃멀미 때문에 엄두가 나질 않아 잠잠히 있었다. 나는 자신이 없어 숙소에서 쉬겠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상미는 어떻게든 뱃멀미하지 않도록 도와주겠다면서 부추겼다. 나는 그 말만 철석같이 믿고 어쩔 수 없이 따라나섰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울릉도에서 독도 간 항로는 늘 파도가 높은 편이라 아예 출항을 못 한 날도 허다하다고 했다. 마음속으론 차라리 출항하지 못하기를 은근히 바랐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배는 예정대로 출항했다. 높은 파도 때문이었을까. 생각했던 것보다 배는 더 심하게 흔들렸다. 나는 마음대로 돌아갈 수 없는 망망대해 위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무섭고 두려웠다. 뱃멀미 약을 미리 먹었으니 괜찮을 것 같아 음악을 들으며 잠을 청해 보았지만 허사였다. 괜스레 상미가 원망스러웠다. 큰소리치며 당당하게 도와주겠다던 상미는 예상치 못한 자신의 울렁거림을 잠재우기 바빴다. 뭔가 속은 느낌이었지만, 상미의 표정을 보곤 더는 할 말을 잃었다. 전혀 문제없을 거라며 당당하게 말하던 상미도 이번만큼은 피할 수 없었나 보다.
이미 배 안에서 많이 지쳤기에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런데 그것은 기우에 불과했다. 저 멀리 우리 땅 독도가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내 보이자 저절로 힘이 불끈 솟아오른 느낌이었다. 울릉도와 또 다른 느낌의 설렘이 그날의 파도만큼이나 내 속에서 요동쳤다.
독도는 저 망망대해 위에서 홀로 고독과 싸우며 그런데도 참으로 위풍당당하게 서 있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정말 감개무량했다. 문득 당당함을 지키면서도 사계절 내내 참 많이 외로웠을 거란 생각이 들자 울컥했다. 때때로 밀려오는 나의 고독한 삶에 같은 느낌이 겹치며 나도 모르게 뜨거운 전율이 흘렀다. 잠잠히 그 감정에 머물렀다. 아직도 망망대해에 홀로 서 있는 듯한 나를 기억하며.
비록 정신은 혼미했지만, 이왕 왔으니 좀 더 가까운 곳에서 독도를 제대로 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날따라 선착장 주변 파도가 높아 배를 대기 힘들었다. 할 수 없이 선회 관광으로 대신해야만 했다. 지독한 뱃멀미와 싸우면서 두 시간을 달려왔는데 독도 땅을 밟아보지 못하고 가야 하는 아쉬움이 너무 컸다. 단 10분이라도 독도의 신선한 바람을 직접 땅 위에서 맞이하고 싶었는데 허탈했다. 갑자기 짜증이 밀려왔다. 이것은 또 다른 바람맞은 기분이었다.
‘아, 다시 또 두 시간을 어떻게 버티지?’
말하자면 꼬박 네 시간 동안 고스란히 배 안에 갇혀 버린 꼴이었다. 가만히 있어도 머리가 빙빙 돌았고, 온몸을 타고 흐르는 울렁거림이 큰 파도를 타듯 비틀거렸다.
그랬다. 그저 눈으로 보는 바다는 한없이 평온했다. 하지만 망망대해 한가운데 서 있는 바다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죽음의 문턱을 들락날락하는 상상조차 하기 싫은 바다였다. 어리석게도 난 그렇게 죄 없는 바다 탓만 하고 있었다. 제법 긴 시간이 흐른 후 육지의 따스한 바람이 코끝을 자극해 왔다. 이제야 사람 사는 세상에 온 것 같아 나도 모르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고생은 했지만,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 울릉도 그리고 독도와의 만남이 행복했다. 나는 어떤 두려움 때문에 마음에만 품고 있었던 것들을 하나씩 도전하면서 새삼 살아 있다는 것이 경이롭게 느껴졌다. 이젠 좀 더 편안하게 다시 울릉도를 여행해도 될 것 같은 약간의 자신감도 생겼다. 마침 울릉도 사동항에 공항이 생긴다고 한다. 다행이다. 아직 비행기 멀미는 하지 않은 것 같다. 회심의 미소가 저절로 지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