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난 흔적 채우기

마침내 천 개의 조각이 화합하는 날, 근사한 파티를 했다.

by 이엔에프제이


지난겨울, 지인의 집에 초대를 받았다.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나의 시선을 사로잡은 건 그림 퍼즐 액자였다. 유명 화가들의 작품을 모티브로 한 그림 퍼즐이 다 있는 듯했다. 마치 전시회에 온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어떤 작품은 완성하기까지 한 달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었다고 한다. 그녀의 대단한 인내력과 놀라운 집중력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퍼즐 액자는 보면 볼수록 욕심이 났지만 차마 갖고 싶다는 내색을 할 수가 없었다. 퍼즐 한 조각, 한 조각을 얼마나 힘들게 맞추었는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그녀의 퍼즐 맞추기는 순탄하지 못했던 결혼생활의 끝자락에서 간신히 붙잡은 삶의 연결통로 같은 것이었다. 그 일을 통해 쌓였던 묵은 감정들을 소리 없이 내어 보내길 반복하면서 용서와 화해의 시간들도 함께 채워졌다고 했다.


그 많은 시간 동안 애증이 고스란히 배어 있는 작품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에 드는 작품 하나를 선물로 주겠다고 했다. 나는 미안한 마음과 염치도 없이 빈센트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을 선택했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어디에 걸어 둘까 생각했었다. 그런데 집에 도착하자마자 허망하게 아들한테 작품을 뺏기고 말았다. 표정은 괜찮은 듯 웃고 있었지만 뭔가 아쉬움이 뇌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며칠이 지나도 자꾸만 작품이 아른거려 내친김에 내가 직접 그림 퍼즐 맞추기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림은 내가 좋아하는 해바라기였다.


퍼즐 맞추기는 어렸을 적 함께 많이 해봤기 때문에 문제 될 게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거실 탁자 위에 천 개의 작은 조각들이 펼쳐지는 순간 아찔했다. 아무리 눈을 크게 뜨고 집중을 해 봐도 한 조각도 제 자리를 찾을 수 없어 암담했다. 갑자기 심장이 조여 오는 듯한 압박을 피할 수 없었다. 조금씩 나의 다혈질의 성격이 그대로 보이는 것 같아 부끄러웠다. 몇 일째 백지상태인 그림판을 보니 은근히 화가 났다. 괜한 일을 벌여 나의 인내력을 테스트하는 것 같기도 해서 조용히 치워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렇게 낙심한 채 앉아 있는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그때서야 가족들이 도와주겠다고 한다. 구세주를 만난 듯 내 얼굴엔 금세 화색이 돌았고 꺼질 듯한 절망감에서 한층 여유가 생겼다.


틈틈이 온 가족이 머리를 맞대어 퍼즐 조각을 맞추다가 암암리에 자기 영역이 정해지곤 했다. 나는 잘 맞추지는 못해도 그동안 알게 모르게 개인주의에 빠져 있던 가족들이 하나 된 것 같아 내심 기분이 좋았다.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계속되었다. 깔깔거리며 웃다가 때론 엄청난 집중력을 보이면서 자기 영역들을 채우기 바빴다. 출근하기 전, 진행되어 가는 과정을 체크하는 것은 남편 몫이었다. 다행히 퍼즐 맞추기를 시작하면서 가족들의 귀가 시간도 빨라졌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은 술에 거나하게 취하여 늦은 시간에 귀가해선 절반쯤 맞춰진 퍼즐 판 앞에 앉았다. 나는 행여 흐트러지기라도 할까 싶어 안절부절 견딜 수가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남편은 불안해 한 나의 표정을 본체만체하며 퍼즐을 맞추겠다고 했다. 남편의 완고한 고집을 꺾을 수 없어 포기했다.

“두고 봐. 내가 퍼즐 다 완성해 놓을 테니 지켜보기나 하셔.”

“아니 안 맞춰도 되니까 어서 들어가서 주무시지요. 제발.”

“그럼, 내 영역만이라도 맞춰야지. 지금 나를 무시하는 건가?”

“그게 아니라, 혹시 잘못 건드려서 다 엎어질까 봐 걱정되니까 그렇죠.”

평상시엔 차분하게 잘 맞추던 남편의 실력을 인정했다. 그런데 그 밤, 결국 우려했던 일이 터지고 말았다. 퍼즐 한 조각을 들고 한참 동안 여기저기 비슷한 곳에 맞춰보지만 허사였다. 끝내 한 개도 맞추지 못한 채 달아오른 취기를 견디지 못하고 그만 퍼즐 판 위에 코를 박고 엎어져 버렸다.

맙소사, 이를 어쩌란 말인가. 순식간에 퍼즐 조각으로 난장판이 된 거실 바닥을 보면서 할 말을 잃었다. 내 표정은 그대로 굳어 버렸다. 남편이 원망스러운 건지 술이 미운 건지 감정조차 정지된 듯 한동안 넋을 잃은 채 멍했다. 다음날 아침, 남편은 일어나자마자 내 눈치를 보며 멋쩍은 미소를 보냈다.


“미안해. 빠른 시일 안에 내가 다 맞춰 놓을 게. 그러니 너무 째려보지 마. 당신은 웃어야 예쁜 거 알지?”


어이가 없었지만 남편을 믿어 보기로 했다. 우여곡절 끝에 다시 시작한 해바라기 그림 퍼즐은 남편이 주축이 되어 거의 보름 만에 완성되었다. 결코 웃지 못할 사건도 있었지만 오랜만에 가족이 함께 하여 최고의 걸작품을 만든 것 같아 뿌듯했다. 나는 예쁜 액자를 주문하여 거실 중앙 벽에 폼 나게 걸어 놓았다. 매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해바라기를 바라보며 기분 좋은 미소를 짓곤 한다.


결혼과 동시에 가족이라는 하나의 퍼즐 판이 내 머릿속에 그려져 있었다. 그 퍼즐 판엔 그들이 원하는 삶이 아닌 전적으로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채워야만 만족하곤 했다. 그런 나의 이기적인 욕심 때문에 가족들이 힘들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스쳐갈 때 한없이 미안한 마음이 내 가슴 안에서 아프게 맴돌았다. 나의 어떤 틀에 박힌 고정관념의 사고로 인한 숱한 갈등의 시간을 잘 견디어 준 가족들이 그저 고마울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의 사고는 참 건강한 것 같다. 나를 닮지 않음이 다행스럽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차분하게 현상을 극복하려는 강한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함을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어쩌면 우리의 인생도 퍼즐 맞추기와 닮은꼴이 아닐까. 그동안 채워진 나의 인생 퍼즐 판이 원하든 원치 않든 가족 구성원의 생각보다도 내 중심이었다면, 나머지 절반은 각자의 삶의 재미난 흔적들로 채우면 어떨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