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편이 되어 준 바다

그 바다엔 포근함이 있었다

by 이엔에프제이


“앗, 따가워!”

“에고, 피가 나잖아.”

나는 유독 바다를 좋아하는 까닭에 바닷가에 가면 신발을 벗는 습관이 있었다.


그날도 그랬다. 마침 날씨도 따듯하여 맨발로 걷고 싶었다. 답답했던 마음이 신발을 벗는 순간 뭔지 모를 해방감을 경험한 듯했다. 알 것 같았다. 묵직한 그 무엇이 밀려오는 파도에 실려 나가는 느낌이랄까. 그러곤 멀리서 힘차게 전진해오는 파도엔 비장의 무기라도 실어오는 양 시선을 돌릴 수가 없었다. 발바닥의 찌릿한 통증이 계속 신경 쓰였다. 이번에는 모래사장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도저히 걸을 수 없을 만큼 아팠다. 아무래도 잔 유리 조각이 깊게 박힌 듯했다. 은빛 모래사장 깊숙이 숨어 있던 날카로운 유리 조각을 미처 보지 못했다.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였던 것이 어디 이뿐일까마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하여 방심하면 안 된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통통 부어오른 발목만큼이나 신경질이 났다. 어떤 개념 없는 사람들이 저지른 발칙한 행동 때문이라는 생각이 지워지질 않았다. 은근히 화가 치밀었다. 그렇다고 당장 어찌할 방법도 없는데 말이다.


몇 년 전, 바다 살리기 국민운동본부에서 진행하는 일정에 따라 자원봉사를 다녀온 적이 있다. 집에서 좀 가깝다는 거 말고 다른 이유는 없었다. 잘하는 것이 하나도 없는 나 하나의 사람이라도 오로지 좀 더 깨끗한 바다를 살릴 수 있다면 기꺼이 동참하고 싶을 뿐이었다.


오월인데도 상당히 더웠다. 바닷가에 도착하자마자 나눠주던 바다색 조끼를 입고 한 손에는 집게를 들고 다른 한 손에는 마대 자루를 들은 채 바닷가 모래사장 주변을 청소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눈에 보이는 것이 별로 없어 무늬만 봉사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이대로 끝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자 좀 더 깊숙이 모래사장을 파고들었다. 그랬더니 여기저기서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왔다. 깨진 유리 조각, 플라스틱, 폐비닐, 병뚜껑, 눈에 잘 보이지 않던 담배꽁초, 스티로폼 등등. 순식간에 들고 있던 마대 자루가 가득 채워졌다. 좀 놀랐다.


얼마 이동하지 않았는데도 쓰레기는 이미 산더미를 이뤘다. 혹여 아이들이 이 상황을 물어오면 뭐라 말할까. 답이 떠오르지 않아 화끈거리며 부끄러웠다. 누군가는 아무 생각 없이 양심까지 버렸을 터이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최소한의 양심을 가지고 시간을 내어 치워야 하는 현상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어쩌면 버리는 자나 줍는 자들은 동시대에 자녀를 두고 있을지 모른다. 문득 그들은 같은 바다를 보면서 자녀들에게 어떤 말을 할까 궁금했지만 물을 순 없었다.


어느새 땀이 범벅이 되었다. 만인의 사랑을 받은 바다일수록 쓰레기로 인한 몸살을 호되게 앓았을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사람은 모두 이기적인 존재인 듯하다. 언제나 궁지에 몰리면 적당한 합리화를 포장하여 설득하는 것을 보면 더욱 그렇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누군가는 세상엔 이유 없는 무덤이 없다고 했나 싶었다. 벌써 세 번째 자루를 채웠다. 조금씩 제 모습을 드러낸 바닷가 주변은 역시나 아름다웠다. 오월의 햇살을 받은 은빛 모래사장은 한껏 매력을 뽐내며 들떠 있는 거 같았다. 힘들었지만 입가에 미소는 덤이었다.


모처럼 땀을 흘렸더라도 수고의 대가는 먹는 즐거움이면 충분했다. 생각지 못한 막걸리 한 잔까지 곁들였으니 더할 나위 없이 짜릿한 시간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꿀떡꿀떡 단숨에 넘어가는 한 잔 술이 이렇게 달곰한 꿀맛이었다는 게 새삼 놀라웠다.


분명 바다는 우리에게 많은 유익한 것을 남겨 주길 원하는데 왜 알지 못하는 걸까. 아니 어쩌면 알고 싶은 노력조차도 하지 않는다는 게 현실이 아닌가 싶었다. 지금이 바로 그때라는 걸, 알아차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머리 위에서 뱅글뱅글 돌았다. 무엇이 되었든지 관리를 받는 건 참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도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하물며 진한 연인 사이일지라도 서로 기본적인 관리는 해야 한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었다. 관리라는 건 관심이라는 전제가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바다는 나의 불순한 생각들을 정화해주는 존재임에 틀림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어떤 상태로 가든지 늘 한결같은 마음으로 안아주었다. 수없이 많은 사람이 나를 아프게 하고 배신하여 떠났지만, 그 바다는 끝까지 내 편이 되어 주었다. 참으로 많은 위로가 되었다.


누구나 사랑하는 사람한테는 좋은 거만 주고 싶듯이, 조금만 더 관심을 두고 집중적으로 바다를 사랑해야 할 거 같다. 깨끗하고 투명한 바다를 보는 건 곧 나의 기쁨이요, 우리 모두의 간절한 소망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