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 반했어

어쩌자고 내게로 왔을까

by 이엔에프제이


“으앙, 손가락 물었어!”


어릴 적 순수한 마음에 그저 예쁘다는 표현으로 이웃집 개를 잠깐 쓰다듬는 사이 순식간에 물리고 말았다. 아직 여물지 않은 여린 살갗이 벗겨지고 그 속에서 뚝뚝 떨어지는 피의 현장을 목격했으니 어린 마음에 충격이 컸으리라. 그 찰나의 순간에 일어났던 두려움의 공포가 지금까지도 또렷하게 기억 속에서 맴돈다.


그렇게 확연하게 기억 저편에 자리 잡은 나의 트라우마는 강아지들을 볼 때마다 전신에 소름의 꽃을 피우곤 했다. 가끔 집 근처 공원 산책을 즐기는 나는 목줄을 하지 않고 강아지와 산책하는 견주들을 보면 욱하고 올라오는 불쾌한 감정을 다스리기 힘들어 그대로 표출하고 싶어질 때도 많았다. 그들의 이기적인 행동 때문에 나의 발걸음은 순식간에 얼음이 되곤 했다. 그로 인해 굳어진 표정과 긴장된 근육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상대방에 대한 기본적인 배려가 없는 몰상식한 사람들이라 치부하며 그렇게 단호하게 그들을 무시해야만 그나마 위로가 되었다. 그들을 보며 나는 어떤 상황에서도 애완동물은 키우지 않을 거라며 자신과의 굳은 다짐을 하곤 했다.


짧은 장마가 끝나고 유난히 폭염이 심한 어느 날, 뜻하지 않게 한 아이를 입양하게 되었다. 이처럼 작은 아이를 내 품에 안은 것은 아마도 그 사건 이후 처음인 듯싶다. 나는 두렵고 긴장된 마음을 최대한 안정시키며 아이의 눈을 마주 보았다. 야리야리한 작은 체구 위에 하얀 털이 복슬복슬하였고 새까만 두 눈동자는 눈물을 머금은 듯 촉촉하여 더욱 똘망똘망했다. 그 사랑스러운 아이 이름을 ‘코코’라고 지었다.


코코는 태어난 지 6개월 된 초소형 강아지 몰티즈였다. 가족회의를 통하여 코코가 우리 집 구성원으로 인정되었고 가족 모두는 코코의 안정된 적응을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다. 각자 역할을 분담하여 코코의 마음을 사로잡으려는 보이지 않는 경쟁도 있는 듯했다. 알게 모르게 흩어졌던 개개인의 생활 패턴들이 코코를 중심으로 다시 모여진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어쨌든 집안의 분위기는 계속하여 상승곡선으로 향하고 있었다.


삼일 째 되는 날, 코코에게 첨벙첨벙 물놀이를 시켜주고 싶었다. 나름대로 코코가 좋아할 것 같은 표정을 상상하며 천천히 물과 친해지길 바랐다. 그런데 그만 예상을 뒤엎고 물을 만나자마자 벌벌 떠는 모습에 나는 적잖이 당황하였다. 행여 어떻게 될까 싶어 괜스레 마음이 급해지자 허둥대며 아무것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누구나 처음엔 다 그러하듯이 나 또한 모든 것이 서툴렀다. 생각보다 어려웠고 등에서는 땀이 비 오듯 흥건하게 젖어들었다. 목욕 후 털을 바짝 말려야 한다는 조언대로 내 허리에 묵직한 통증이 느껴지는데도 일어나지 못하고 정성스럽게 드라이로 말려주었다.


그런데 맙소사, 코코에게 문제가 생긴 것 같다. 그날 저녁부터 안절부절 잠시도 가만있지 못하고 몸을 긁기 시작한 것이었다. 말을 하지 못하니 물을 수도 없고 얼마만큼 가려운 지 파악조차 할 수 없어 그저 답답하고 안쓰럽기만 했다. 차라리 내 몸의 가려움으로 대신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코코의 눈빛을 보면 볼수록 나를 본 듯하여 안타까운 심정이 내 삶 깊숙이 파고들어 온 듯했다. 순간순간 찌릿한 아픔이 진동으로 울릴 때마다 어쩌자고 저 아이를 대뜸 보듬었을까 싶었다. 코코의 촉촉한 눈빛에서 흘러나오는 애처로운 시선은 연민의 정을 불러일으켰고 나는 그런 코코에게 빠른 속도로 빠져들었다. 때때로 가족의 시끌벅적한 소란함이 사라지고 나면 문득 홀로 남아 견뎌야 할 코코의 외로움이 나에게 고스란히 전이가 되곤 했다. 그럴 때면 나는 만사를 제쳐두고 잰걸음을 쳐서 집으로 향했다. 어느새 코코를 향한 나의 서툰 사랑은 거의 중독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서부터 저녁 잠들기 전까지 하루 온종일 코코 사랑에 빠진 후, 기존의 나의 일상은 마비가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이들은 마치 엄마의 사랑을 뺏기기라도 한 듯 은근한 질투를 하고 있었다. 아무렴 아이들은 오랜 시간 동안 늘 공허한 마음에 젖어있던 나의 삶의 일부를 알 리가 없었다. 그로 말미암아 비록 일방적인 사랑이라 할지라도 메말랐던 감정의 호흡이 다시금 충만하게 채워지는 것 같았다.


그나저나 코코의 가려움은 열흘 째 계속되었다. 그저 시간이 지나면 해결되리라 믿었던 나의 무지함으로 코코는 애꿎은 피해자가 된 셈이었다. 결국 병원에 가서야 나의 잘못을 알게 되었다. 목욕 후 제대로 말리지 못하여 피부염이 생겼다고 했다. 얼마나 가려웠을까. 생각할수록 어찌할 줄 모르는 미안한 마음이 가슴에 아프게 박혔다.


그랬다. 참 많은 세월 동안 강아지의 털만 스쳐도 피가 거꾸로 솟는 느낌이 너무 싫고 무서웠다. 하지만 누군가의 도움으로 용기를 내어 코코라는 강아지를 내 품에 안게 되었고 지금은 그 사랑에서 헤어나질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코가 혀를 내밀고 반가움의 꼬리를 흔들며 다가올 땐 나도 모르게 움찔하곤 한다. 아무리 태연한 척 애써도 코코의 작은 혀로 손바닥을 핥아오면 심장마저 긴장을 한 듯 다시금 소름의 꽃이 피어오른다. 그럴 때마다 걷잡을 수 없이 내게로 침범해온 양가감정을 잠잠히 다스리며 견뎌내는 중이다. 몇 번을 반복해야 그 상처, 그 아픔으로부터 초연해질까.


코코는 마치 나의 그런 불안한 마음을 위로라도 하듯 살며시 내게로 와 곁에서 잠이 들었다. 세상모르고 평안하게 단잠에 빠진 코코의 옆모습이 미치도록 사랑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