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버킷리스트

당신의 내면에 쌓인 멍울을 어루만져줄게요

by 이엔에프제이




“여보, 그동안 아이들 뒷바라지하느라 고생 많았어. 이제부터 당신 하고 싶은 거 하면서 더 즐겁게 살아.”

“정말? 그렇다면 자기 마음 변하기 전에 바로 시작해야겠는걸.”

“마음 변하지 않을 테니 걱정 말고 진짜 꼭 하고 싶은 것이 있는지 천천히 생각해 봐. 건강할 때 삶을 누려야 할 것 같아서 특별히 수고한 당신에게 기회를 주는 거야. 시간과 경제적인 것까지 아낌없이 지원해 줄게.”

아들 고등학교 졸업식에 다녀온 며칠 후, 남편과 오랜만에 드라이브하던 중 대부해솔길을 걸으며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남편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은 건 아마도 아이들의 교육문제를 남부럽지 않게 시켰다는 의미일지도 몰랐다. 남편은 아들과 딸, 둘 다 외고에 입학시켰으니 평소에 내색은 잘하지 않았지만 나름대로 뿌듯했던 것 같다. 딸은 G외고 1, 아들은 S대 경영학과 4년 장학생으로 입학을 앞두고 있었다. 어찌 되었건 처음으로 남편한테 인정받은 자부심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갔다.

따스한 햇살과 마주 앉은 나는 커피 한 잔을 진하게 내려 마시며 더 늦기 전에 버킷 리스트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대학원 진학, 세계 50개 나라 구석구석 여행하기, 가족봉사단 결성하기, 매월 1회 이상 연극이나 뮤지컬 관람하기, 그리고 혼자 배낭여행하기 등등. ‘맙소사!’ 적다 보니 크고 작은 것들을 포함하여 거의 백 가지가 넘어가고 있었다. 하고 싶은 것들과 보고 싶은 것들이 이렇게 많은 줄 예전엔 미처 알지 못했다. 사실 결혼 후 줄곧 아이들 위주로 전업주부의 삶을 살았으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라도 오롯이 나를 위한 시간을 갖는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성공한 인생인 듯 우쭐해졌다.


덩굴장미가 유난히 예뻤던 6월 어느 날, 첫 번째 버킷 리스트를 실행하고 있는 중이었다. 늦은 나이에 문을 두드린 대학원 공부는 결코 만만하지 않았다. 체력과 집중력의 한계를 넘나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신히 버텨내며 열심이었다. 그렇게 한 학기가 끝나갈 무렵이었다. 나는 평상시 하던 대로 아침 샤워를 하고 난 후 몸 전체를 마사지하듯 어루만졌다. 얼굴부터 목선, 그리고 가슴으로 내려오는데 손끝에 묵직한 것이 만져졌다.

‘어머나, 이게 뭐지?’

왼쪽 가슴에 육안으로 보기에도 오백 원짜리 동전보다 훨씬 크고 단단한 멍울이었다. 눈앞이 깜깜하여 그야말로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따로 없는 듯했다. 심장이 벌렁거리며 손발이 떨려 옷을 제대로 입지 못할 지경이었다. 급한 마음에 옷을 대충 걸치고 최대한 마음을 진정시키며 S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온몸이 파르르 떨리고 목소리의 떨림도 심하여 발음이 정확하지 않았다.

“거기 S병원이죠? 저 왼쪽 가슴에 엄청 크고 단단한 혹이 만져지는데요, 누르면 많이 아파요. 아무래도 암인 거 같아요. 빨리 치료를 해야 할 거 같은데 바로 예약되나요?”

“그러시군요. 다른 병원에서 소견서 받으셨나요? 없으면 받아오세요. 그리고 바로 예약은 안 되고, 제일 빠른 예약은 20일 후쯤 가능합니다.”

“뭐라고요? 저는 한시가 급한데 어떻게 20일을 기다리라는 건지 알 수가 없네요. 일단 그렇게 라도 예약해주세요.”

약간 퉁명스럽게 쏘아붙인 까닭에 기분이 언짢은 상태로 전화를 끊었다. 호사다마라더니 지금 딱 그 상황이었다. 누구의 아내도 아니고 누구의 엄마도 아닌 오직 나를 위한 인생설계를 멋지게 그려가고 있는데 암이라니, 그야말로 청천벽력이었다. 몸의 심각한 상태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멍울이 더 단단해진 느낌마저 들었다.

세상의 모든 질병을 혼자 짊어진 듯 엄청난 무거움이 심장을 압박하여 곧 터질 것만 같았다. 아직 해야 할 일은 산더미처럼 높고 많은데 어디서부터 어떻게 정리를 해야 할지 나는 그저 막막하기만 했다. 아들이 결혼하여 알콩달콩 행복하게 잘 살아가는 모습을 봐야 하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에 우아하게 빛날 예쁜 드레스를 입은 딸의 모습도 봐야 하는데, 뿐만 아니라 손자 손녀들의 재롱잔치에 참석하여 멋진 할머니로 인정받고 싶은 욕망도 있는데 어쩌란 말인가. 나름대로 성실하게 잘 살아온 거밖에 없는데, 하늘은 어쩌자고 이렇게 감당하기 버거운 가혹한 형벌을 주는 것인지 생각할수록 마음이 착잡했다.

나는 예약 날이 다가올수록 긴장되어 초조한 마음이 쉬 가라앉질 않았다. 마침내 그날, 두려움과 떨림으로 팽창된 심장을 최대한 이완시킨 후 진료실 안으로 들어갔다. 내가 먼저 물었다.

“선생님, 저 진짜 암인가요? 아직 해야 할 일이 많은데 제발 저 좀 살려주세요.”

“어디 보자 그런데 발견할 당시랑 지금 현재 크기는 그대로인 것 같은데, 여러 가지 검사 결과 다행히 암은 아니고 물혹입니다. 물혹은 몸속에 잠재되어 있다가 갑자기 심한 스트레스를 받으면 점점 커지기도 하고 자연스럽게 사라지기도 해요.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말고 기다려 봅시다. 그리고 최소한 2년 정도는 정기검사 잘 받으면서 지켜보도록 합시다.”

“선생님,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검사 잘 받을 게요.”

나는 굳어진 얼굴에 보랏빛 미소를 띠며 머리가 땅에 닿을 정도로 인사를 하며 진료실 밖으로 나왔다. 십년감수했다. 그날 이후 나는 전문상담사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