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에서 혼자

나는 종종 멍 때리는 순간이 좋다

by 이엔에프제이


날이 저물기 시작할 무렵 마치 급한 약속이라도 있는 것처럼 서둘러 집을 나섰다.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어김없이 나타나 마음을 흔들어 놓는 무엇이 있다. 혼자 뚜벅뚜벅 가려니 내 속에서 꿈틀거리는 무엇이 함께 가자며 반응해 온다. 이 가을, 그렇게 소리 없이 찾아온 무엇을 어찌 외면하랴. 아주 오래전부터 나에게 거머리처럼 달라붙어 좀처럼 떨어지질 않는데 그냥 보듬고 가야지 어쩌겠나 싶다.


언제부턴지 나의 삶의 한편에는 내가 살아내기 위해 자주 애용하는 것이 있다. 가끔 남편과 의견 충돌이 있을 때, 지인들과 약속이 어긋났을 때, 그리고 불현듯 그 외로움이 뼛속까지 침투해 올 때 무작정 차를 몰고 목적 없이 나서기도 한다. 신호등의 반응을 감지하지 못하고 계속 직진하여 달리던 때도 여러 번이었다. 때때로 위험한 순간을 지나 안도의 숨을 쉬며 차가 멈추어선 그곳에서 한참 동안을 멍하게 있다 보면 저절로 생각이 없는 세계로 빠져든다. 내 삶은 그렇게 또 살아져 간다.


그런데 오늘은 도심에 있어 자주 가는 카페에 가고 싶었다. 그곳은 내가 좋아하는 작가를 만나 함께 나눈 이야기들로 인해 긍정의 에너지를 충전한 곳이기도 하다. 그 작가와 순간순간 마주칠 때의 따듯했던 시선을 두리번거리며 찾아보았으나 보이지 않았다. 테이블 위에 작은 꽃병과 은은한 불빛으로 채워진 그곳은 마치 엄마의 자궁 안에 포근함처럼 아늑했다. 그리움의 흔적을 찾아 점점 더 깊이 빠져드는 내내 얼굴엔 옅은 미소가 번졌다.


몇 년 전부터 서울에서 멍 때리기 대회가 열렸다. 번번이 기회를 놓쳤지만 반드시 한 번은 도전해보고 싶다. 멍 때리는 시간에는 아무 생각 없이 멍하게 있는 것이다. 주인의 명령에 따라 바쁘게 움직이던 뇌를 잠깐이라도 쉬게 하는 방법이기도 하지만, 나에게는 그보다 더 특별한 시간이기도 한다. 굳이 애쓰지 않아도 누구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은 비밀스러운 이야기가 스스로 정리가 되기도 하고, 때때로 불쑥불쑥 올라오는 미움의 감정과 불안이 사라지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멍 때리는 동안 무엇보다 바닥까지 내려갔던 무기력증이 다시 회복이 되곤 한다. 그렇게 그 시간은 누구에게도 간섭받지 않고 내 속에 있는 또 다른 나와 잠잠히 마주하는 시간이어서 좋다. 그래도 그렇지. 꼬박 세 시간을 한 마디의 말도 없이 앉아 있다는 것은 아마 어떤 신이어도 힘들어했을 것만 같다.


저녁 약속이 있다던 남편이 웬 일로 일찍 귀가하여 평상시엔 잘하지 않는 호출을 했다. 설마 그럴 리가 없지만 시월의 마지막 밤이란 걸 알기라도 한 걸까. 양가감정의 혼란 속에서 나의 멍 때리는 시간은 그렇게 강제 종료로 끝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