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홀한 햇살 같은 꿈이라도 꿔야지
부산을 여행하던 중이었다.
열심히 살아온 나를 위한 보상 차원에서 엘시티에 숙소를 잡았다.
숙소에 도착하여 바다가 보이는 창가로 걸어가는데 다리가 후들거렸다.
한동안 잊고 지내던 고소공포증이 살아나는 듯 온몸이 긴장했다.
그런데도 용기를 내 창문에 손을 얹자 숨도 못 쉬고 수직으로 떨어질까 봐 심장이 쪼그라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64층 창밖에 펼쳐진 파노라마 뷰를 제대로 즐기지 못한 겁쟁이 같아 더 안쓰러웠다.
결국 창가에 서서 바다를 내려다보지 못하고 소파에 앉은 채로 관망했다.
저녁 산책도 할 겸 밖으로 나갔다.
해운대의 어둠을 밝혀준 주홍 불빛이 품은 온화함에 안기고 싶었다.
나만의 고요한 시간을 만들어 잠잠히 나를 위로하고 싶을 때 주로 사용하는 방법이다.
해가 지면서 식어가는 공기가 차가웠지만 견딜만했다.
신발을 벗어 손에 들고 희미한 달빛 아래에서 해변을 걸었다.
발을 적시는 파도의 온도가 긴장되었던 몸 안의 세포들에도 전해져 평온했다.
겉옷을 벗어 모래사장에 펴고 까만 바다와 마주 앉았다.
어둠에 시선을 빼앗긴 시간 동안 침묵했다.
주변의 사람들도 어디론가 사라졌다.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멍 때리던 나에게 철썩거린 파도소리가 땡을 외치며 다가왔다.
끝이 보이지 않은 답답함이 끝내 해소되지 않았다.
웃음기 사라진 요즘.
그리고
우리의 미래가 어둠에 갇힌 바다처럼 될까 봐.
막연한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어둠이 지나고 나면 눈부실 만큼 환한 새 날이 올 거라는 사실을 아는데도 사람들 마음엔 여유가 없다.
노력한 만큼 빠른 변화를 기대하지만 늘 더디게 따라온 주변 환경에 지치기도 한다.
그날밤 백수로 사는 꿈을 꾸었다.
일하지 않아도 물려받은 재산으로 먹고사는 꿈.
입가에 미소는 덤이고 어깨에 실린 자부심이 건방지게 거들먹거렸다.
이상하게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환경인데도 금세 적응되었다.
눈을 뜨고 싶지 않았다.
말하자면 현실까지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이 컸다.
하지만 기분 좋을 때 깨어나자.
미련을 가질수록 몸도 마음도 무거워질 게 뻔하니까.
약간 힘 빠져도 성실하게 일한 만큼 먹고살아야 한다는 현실을 부정하진 말자.
살다 보면 자존감에 문제가 생길뻔한 관계는 정리하는 게 낫다.
무리하게 관계를 이어가다 방전된 에너지를 충전하는 게 더 힘들 수 있기 때문이다.
돈 많은 백수가 아니어도 어디서든 나답게 살 수 있다면 지금 하는 일에 만족하기로 하자.
조만간.
팍팍한 우리의 삶에 황홀한 햇살이 가득한 꿈같은 세상이 올 것만 같아 설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