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엔에프제이 Mar 21. 2024

거짓말 중독

그냥 솔직하게 말하면 어때서

환절기가 되면 유독 피부가 신경 쓰인다.

화장대 위에 서 있는 기초화장품들을 하나씩 꺼내 와 민얼굴에 톡톡 찍어 바른다.

피부에 촉촉이 스며든 느낌이 좋을 땐 기분까지 퍼펙트하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정성스럽게 화장을 해도 마음에 들지 않을 때가 많다.

느닷없이 세월을 탓하다가 경제적인 여유가 없었음을 핑계 대고.

그러다가 일만 하느라 피부 관리할 시간조차 내지 못한 것을 원망한다.

야금야금 늘어난 잔주름을 감추기 위해 파운데이션을 덧바르다 보면 짜증이 난다.    

거울 앞에서 날카로운 신경전이 펼쳐지지만 약속 시간 때문에 항복할 수밖에.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면,

한 사람 한 사람이 들어올 때마다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잽싸게 스캔하고,

그러곤 아무 일 없는 것처럼 서로에게 반갑게 인사한다.

때론 부드럽게 때론 격하게.

환영이 끝나고 편안하게 자리에 앉았을 때 비로소 보이는 피부 톤.


누군가 용기 있는 자가 먼저 묻는다.

너 정말 예뻐졌다, 얼굴에 뭐 했니?

아니 난 그런 거 절대 안 해.

자연스럽게 시선이 옆친구에게 향한다.

넌 도자기 피부 관리받은 것처럼 빛이 나는데 솔직히 말해 봐.

나도 절대 안 했거든.

그렇구나, 근데 관리받아서 예뻐지면 좋은 거잖아.


누가 봐도 티가 날 정도면 피해 갈 수 없을 텐데.

굳이 거짓말을 하는 이유가 뭘까.

보통의 여자들은 원래 타고난 백옥 같은 피부를 부러워한다.

한 번이라도 피부가 좋다는 말을 들어 본 사람이라면,

그 부러움의 시선을 알기 때문에 빤히 보이는 거짓말을 하게 된다.

당사자에게 더는 집요하게 묻지 않고 험담도 하지 않기로 암암리에 약속이나 한 듯.

어쩌겠는가, 믿어줘야지.


그러곤 그녀가 쓰고 있는 화장품을 묻는다.

어차피 각자의 생김새와 피부 톤이 다른데도,

꿀피부가 될 수 있다면 당장이라도 화장품을 바꾸고 싶은 욕망의 눈빛들이다.

다음 모임엔 나도 거짓말이라도 해야 할까.

성향상 말하지 않아도 근질거린 입술 때문에 티가 날 게 뻔하지만.

모임이 끝나고 돌아선 그녀들의 뒷모습을 따라 늦은 오후 햇살이 뜨뜻미지근하게 따라간다.




이전 19화 하우스 카페에서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