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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엔에프제이 Aug 12. 2024

무장애 숲길을 걷다

우면산 어느 길목에서

무장애 숲길을 걷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종일 방구석에 갇혀 있다는 중압감에 시달린다.

방송매체는 무더위의 위험을 전하며 외출을 자제하란다.

그런데도 나는 방구석을 나갈 궁리만 한다.

답답증이 심장까지 내려와서 요란법석이다.

까짓 껏 죽기 아니면 살기겠지.

답답증에 걸려 죽느니 바람 한 점 없는 숲길이라도 걷는 게 차라리 나을 거 같다는 생각이 번개처럼 스친다.

더는 머뭇거리지 않고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은 후 생수 한 병을 들고 집을 나선다.

집 뒷산까지 쉬엄쉬엄 올라가는 입구에 무장애 숲길 이정표가 보인다.

무장애 숲길이라면 왠지 편견을 없애자는 의지가 담긴 거 같아 특별히 가슴에 와닿는다.

우거진 나무 사이사이에 데크로 만든 숲길이다.

땅에서 올라온 풀내음과 흙냄새만 맡아도 건강해진 느낌이다.


어디 그뿐일까.

줄지어 서 있는 나무에서 풍기는 향기가 코끝을 자극한다.

치유의 능력이 담긴 향기인 듯 답답증에 죽을 것 같은 마음이 거짓말처럼 평온해진다.

맑아진 정신으로 하늘을 올려다보니 지나가는 공기가 입안으로 쏙 들어온다.

누가 더 빨리 하늘에 닿을까, 키재기를 하는 듯한 나무 사이로 햇살이 방긋 인사를 하고 사라진다.

다시 만나길 기대하며 나는 걷기에 집중한다.

지그재그로 만들어진 숲길이라 지나갈 때마다 보인 사람들의 표정이 즐겁다.

  

다행인 것은 편견이 보이지 않다는 것이다.

알게 모르게 내면의 미성숙한 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도, 지금까지 쉼 없이 달려온 유명 인사들도 산책길에선 그저 좀 더 건강하게 살고 싶다는 바람뿐인 듯하다.

사회생활을 하는 동안 원했든 원치 않았든지 인간관계에서 쌓인 불순물들을 하나씩 빼내는 작업을 하는 거 같기도 하고.

땀으로 범벅이 된 모두의 옷차림이 안쓰럽다.

그래도 빵빵하던 그때가 좋았다고 말할까.

조금이라도 홀쭉해진 지금이 좋다고 말할까.  


코너를 돌면 각양각색의 사람이 보인다.

유튜브를 보면서 전적으로 신의 도우심을 기대하는 사람들,

무더위에도 깍지 낀 채 서로의 온기를 느끼고 싶어 하는 젊은 연인들,

누가 봐도 인정할 만한 세상에서 가장 편해 보인 이웃사촌들,

일찌감치 전망 좋은 벤치에 앉아 한 손으로 부채질하면서 오는 사람 가는 사람 구경하는 친절한 국민 엄마들,

이어폰을 꽂고 어학 공부에 열심인 사람도 눈에 띈다.

스치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 필요가 없기에 오롯이 자신에게 집중하는 거 같다.

아마도 두 번째 인생 무대를 펼치기 위한 준비 과정이 아닐까, 짐작해 본다.


의도치 않게 일거양득의 효율적 시간이 흐른다.

나도 모르게 어제까지 지나온 삶을 돌아본다.

버리고 싶었던 가식덩어리가 떨어지도록 끝이 보일 때까지 걷기에 집중한다.

땀의 배출만으로 몸도 마음도 개운해진다.

건강하지 못하면 그토록 바라던 것들도 속절없이 무너질 텐데.

뭐든 무리하진 말자고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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