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볼 만한 도전이다
지경을 넓혀가는 불꽃
아이들에 대한 애착이 유독 심했다.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지만, 언제부턴가 아이들과 분리가 필요하다는 것을 집안에 흐르는 공기 중에 알게 되었다. 마음이 복잡했다. 그렇다고 선뜻 어떻게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막막하기만 하던 차였다. 여행이라도 하면서 차근차근 생각해볼 참이었다. 그런데 생각할수록 누구도 시키지 않았던 헌신 아닌 헌신을 자초한 결과가 너무 초라해 보였다. 우울했다. 많은 에너지를 아이들에게 다 쏟아부은 까닭이었을까. 내면의 감정은 갈수록 메말라지고 비대해진 나의 몸뚱어리는 급기야 무기력증에 빠지고 말았다. 좀 쓸쓸했다. 허탈한 웃음이 아프게 새 나왔다.
바닥으로 하염없이 추락하는 차가운 몸짓을 간신히 끌어안았다. 알게 모르게 이런 시간은 얼마 동안 지속하였다. 처참하게 버려진 느낌이 징그럽게 따라다녔다. 이대로 더는 안 되겠다 싶었던지 바닥에서 힘겹게 일어났다. 무엇이든 붙잡을 수 있는 끈이 있어야만 우울한 감정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날 거 같았다. 아니 어쩌면 이제라도 오롯이 나를 위해 살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것만이 살아야 할 이유인 듯싶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봐도 전업주부였던 나는 할 줄 아는 게 별로 없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머리에 쥐가 나도록 찾아보았으나 정말 없었다. 그러던 중 문득 오래전부터 청소년들에 대한 관심이 많았던 게 떠올랐다. 더는 망설이지 않았다.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가을 오후, 비록 좀 늦은 나이이긴 해도 용기를 내 ㅇㅇ대학원 아동·청소년 상담학과 입학원서를 넣어 두고 장거리 여행을 떠났다. 얼핏 보이던 불안함이 여행 중에 사라지고 뭔가 확정된 게 없는데도 홀가분했다.
여행에서 돌아온 며칠 후 두렵고 낯설기만 하던 '시작이 곧 반이다'란 말이 내 안에 쏙 들어왔다.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새내기처럼 옅은 미소가 제법 당차게 보였다. 상담을 공부하게 되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 켜켜이 쌓인 내면의 상처가 하나씩 치유되는 걸 보았다. 버틸 힘이 조금 생겼다. 그러더니 이 작은 힘으로 누군가를 위해 써야겠단 생각이 눈 깜짝할 새 지나갔다. ‘아, 나도 뭔가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만 해도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학기 중이었다. 덩굴장미가 거리마다 화려한 집을 짓고 있을 무렵, 생전 처음으로 소년원에서 실시하는 자원봉사 기본 교육을 받게 되었다. 새로운 도전은 나에게 설렘과 기쁨과 뭔지 모를 부유함까지 한가득 안겨주었다. 교육이 끝나고 소년원 아이들과 일대일 만남이 이루어졌다. 내가 만났던 첫 번째 아이를 기억한다. 덩치는 컸지만, 눈동자에 슬픔이 담겨 있어 끝내 나를 울려버린 그 아이에게 웃음을 찾아주고 싶었다. 그 후 일주일에 한 번씩 소년원에 있는 아이를 만나러 가는 날이 기다려졌다. 그도 그럴 것이 아이한테 딱히 무엇을 해 줄 순 없고 그저 아이가 하고 싶은 말을 들어주는 것뿐이었는데 그 아이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보잘것없는 나에게 마음을 열어 주었다는 게 내내 고마웠다. 어쩌면 누군가의 따듯한 시선이 무척이나 그리웠을 것만 같아 아무리 바빠도 발걸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아이와 약속된 시간을 지키기 위해 급하게 집을 나서는 중 접촉사고가 나고 말았다. 마음이 급했던 모양이었다. 현장 상황이 마무리되지 않았는데 얄궂게 째깍째깍 잘도 가는 시계만 쳐다보았다. 가까스로 소년원에 도착하여 아이를 만나고 나니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아이도 나도 웃었다. 오히려 위로를 받았다고 해야 할 성싶었다. 그날은 일 년 조금 넘게 만난 아이와 이별하는 날이었다. 나는 괜스레 걱정이 앞섰다. 어쩌면 돌아갈 집의 환경은 변함이 없는데 나머지 숙제를 잘해 낼 수 있을지 말이다. 하지만 다시는 이곳에서 만나지 말자며 철저하게 약속했으니 믿기로 했다. 다행히 그 아이는 지금까지 더는 오지 않았다. 나는 9년째 자원봉사로 소년원에서 아이들을 만나고 있다.
그전에 나는 잘하는 게 하나도 없었다. 그런 내가 싫어 알게 모르게 끊임없이 불평불만을 늘어놓고 살았는지 모른다. 아이러니하게도 상담을 전공했는데도 나 자신 스스로가 만족할만한 상담사가 되지 못할 거 같은 두려움과 불안 때문에 유료 상담을 포기하겠다고 합리화했는지 모를 일이었다. 어쨌거나 하나를 내려놓고 자원봉사를 통해 무료 상담을 하면서부터 나의 삶은 달라졌다. 누구도 감히 예측하지 못한 생기가 나의 불완전한 삶에 차곡차곡 채워지는 거 같았다.
그 때문이었을까. 이제야 비로소 무엇이든 잘해야만 하는 어떤 강박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이해할 수 없을 만큼 짜증이 났던 나의 완벽주의적 성향이 쥐도 새도 모르게 변했다는 게 참으로 놀라웠다. 어디 그뿐일까. 구석구석에 박혀 있어 시도 때도 없이 나의 마음을 찔러대던 외로움의 시간도 현저하게 줄었으니 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내게 있는 것을 활용할 줄 모르고 더 많은 것을 기대하기만 했던 지나간 시간이 부끄러웠다. 세상만사 모든 일이 원하는 대로 된 적이 과연 몇 번이나 있었던가.
그랬다. 머리로는 알 거 같은 그것, 결코 내 것이 될 수 없는 끝없는 욕심을 온전히 내려놓지 못한 채 밤새도록 전전긍긍하며 살았다. 안타깝게도 그게 나였다. 보이지 않는다고 하여 필요에 따라 막무가내로 사용했던 나의 두 마음이 이제라도 오직 한 길로 가겠다고 하니 내심 반가웠다. 잘하는 게 하나도 없던 삶이 결과적으로 가장 중요한 하나를 얻게 되었으니 더는 주어진 시간을 허투루 쓰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해본다.
파란 하늘에 구름 한 점이 눈앞에서 사라지지 않는 한 소년원에 있는 아이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을 것이다. 같이 밥을 먹고 같이 라면을 먹으며 그들의 눈빛에 슬픔 대신 기쁨으로 채워질 그 순간을 즐길 것이다. 좋다. 좋아진다. 점점 좋아진다. 그날 그렇게 시작된 불꽃은 꺼질 줄 모르고 더 멀리 더 높이 지경을 넓혀가며 활활 타오르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