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꺼내보는 약속 같은 거다
나는 문화센터에서 첫 ‘파워스피치’ 수업을 하게 되었다. 파워스피치는 말하기와 다양한 표현력을 통해 발표력을 키우기 위한 수업이었다. 대상은 초등학생들이었다. 나는 오래전부터 흡입력 있는 목소리로 청중을 사로잡는다는 칭찬을 들었던 터라 자신감이 있었다. 나름대로 완벽하게 강의 내용을 숙지했기에 수업 교재는 따로 준비하지 않았다. 하지만 첫 수업은 공개수업으로 진행된다는 걸 깜박 잊고 있었다. 수업이 시작되면서 몇 명의 학부모들과 관계자들이 강의실 한쪽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긴장의 땀이 보이지 않는 숨구멍에서 하염없이 흘러나왔다.
그날의 주제에 대해 아이들의 1분 스피치는 한 사람씩 문제없이 진행되었다. 반응이 좋아 수업이 재미있는 줄 알았다. 우쭐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강의를 더 잘하고 싶은 욕심도 났다. 하지만 웬걸 수업 중반을 지날 무렵 한 두 명의 아이들이 딴짓을 하며 집중력이 떨어지는 것을 목격한 후 나는 급속도로 당황되었다. 자신감은 등 뒤에 숨어버렸고, 혀가 꼬이면서 호흡은 빨라지고, 시선은 불안정했다. 철저하게 준비했던 수업 내용은 온데 간데없이 순식간에 날아가 버렸다. 마지막 마무리를 어떻게 했는지 아무것도 생각이 나질 않았다. 학부모들과 면담도 해야 하는데 그날따라 50분이란 시간이 어찌나 길던지 야속하기만 했다.
첫 스피치 수업인데 참 허망하게 끝나고 말았다. 얼굴은 발갛게 달아올랐고 몸엔 힘이 쫙 빠졌다. 회원이 늘어야 하는데 오히려 줄어들까 봐 전전긍긍했다. 어쩌면 첫 경험의 실수가 나를 돌아보기에 꼭 필요한 어떤 처방전 같았다. 그날 이후, 다행히 수업을 계속하게 되었다. 나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심혈을 기울여 수업 교재를 만들었다. 문화센터와 초등학교 ‘방과 후 학교’ 세 군데를 더 확장하여 바쁘게 스피치 수업을 몇 년 동안 계속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표현력의 부족으로 인한 따돌림을 받은 상처가 있었다. 안타까웠다. 그들이 편견 없이 세상을 마주하도록 자신감을 키워주고 싶었다. 무엇보다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을 방어할 수 있는 말하기 능력을 키우는 게 우선이었다. 어디에서든지 자신과의 싸움에서 포기하지 않는 아이들은 금방 눈에 띄게 달라지곤 했다. 워낙 내성적인 탓에 자기소개도 잘하지 못했던 초등학교 3학년 여자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는 두 달 만에 수다쟁이가 되어 학교에서 반장까지 하게 되었다면서 연신 자랑을 했다. 나는 엄지를 치켜세우면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괜히 나를 자랑하는 것 같아 쑥스럽지만 이 짜릿한 맛을 어디에 견줄 수 있단 말인가? 그렇게 보일 듯 말 듯 조금씩 변화된 아이들을 보면서 비로소 나의 삶을 찾은 듯 뿌듯했다. 가끔 이 작은 것을 통하여 살아있는 에너지를 제대로 공급받은 최고의 수혜자는 바로 나일 거란 생각이 들곤 했다. 그렇게 잠잠히 내 안에 머무는 소소한 감정이 더없이 좋았다.
나 어릴 적엔 늘 소심하고 부끄러움이 많았다. 용기가 없어 발표도 잘하지 못했고 있는 듯 없는 듯 그런 시간 속에 묻혀 있었다. 이심전심이었을까? 어쩌면 이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문득문득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스피치 교육에 더 적극적이었는지 모른다. 꼭 파워스피치가 아니더라도 당당하게 자신을 나타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마치 나의 일처럼 간절했다.
바쁜 일상 중에서 모처럼 쉼의 여유를 즐기고 있던 어느 날, 초등학생인 아들이 과제 발표에 대해 걱정하는 것을 보았다. 내가 도와주겠다고 했는데 단번에 거절당했다. 어이가 없었다. 스피치 강사인 나의 도움을 받으려 하지 않는 아들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날 밤, 겨울비처럼 스산하게 전해온 아픈 마음을 다독이며 아들한테 거절당한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어리석게도 다른 아이들의 발표력이 향상되고 있는 동안, 정작 내 아이들이 발표에 대한 두려움에 떨고 있다는 것을 알아채지 못했다. 생각할수록 미안한 마음에 견딜 수 없어 얼마 후 스피치 강사를 그만두었다. 바쁘다는 핑계로 아이 들과의 관계를 소홀히 한 나의 자업자득이었다. 결국 내 아이들에게는 인정받지 못한 참으로 아이러니한 파워스피치 강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