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포워드 Nov 29. 2023

트레이드오프: 잃어버린 것들 vs 얻게 된 것들 -2

2015년 6월 22일의 기억

어제 밤 자전거 퇴근길 풍경.


#10 계절이 돌고 돌고 돌았지. 어린 시절의 기억들은 잊혀져갔어. 나의 방황들은 벌써 끝난지 오래 지났다고 믿고 있었어. 재능과 노력이 뒷받침된다면 삶은 누구에게나 좋은 선물만을 가져다 줄 것이라 생각했지. 마치 동화 속 주인공같이 생각했다고 할까. 사실, 대부분의 경우 그 생각들이 맞았어. 몇 가지 예외적인 경우들만 제외하면. 



#11 가장 힘들었던 한 순간을 떠올려 보라고 하면, 2015년 6월 22일이야. 동네에 조그마한 안과 하나를 개원하고 4년차에 접어든 시기였고. 병원경영도 나의 삶도 안정을 찾아가던 중이었어. 자신에 충만해 있었고, 모든 것들이 평화로웠어. 그 전날은 멀리서 온 친척들과 야유회를 다녀왔었지. 이른 아침 울리는 실장님의 다급한 전화 목소리, "원장님, 병원으로 나가보셔야 할 것 같은데요."     





#12 아포칼립스적인 세계가 눈 앞에 펼쳐졌어. 병원 건물은 소방차들이 둘러싸고 있었고, 창 밖으로 혀를 내미는 화염과 연기, 재를 뒤집어쓴 소방관들이 소화전 호스를 들고 방독면을 쓰고 건물 안으로 올라가고 있었지. 망연자실. 현실감 없는 이 느낌은 뭐지. 마스크도 쓰지 않고 제지선을 뚫고 병원이 있는 2층으로 혼자 진입했어. 눈을 뜨기 어려울 정도로 매연이 가득했고, 어제까지 환자를 보던 공간들은 검댕으로 뒤덮여 있었어. 아, 삶에서 이런 결말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 나는 한 번도 예측한 적이 없었구나. 내 머리는 지난 40여년 간 붙어 있던 내 몸에서 떨어져 나가는 것처럼 고통스럽게 느껴졌어. 성공만 생각하면서 살았지, 실패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거든. 아둔했던 나는. 



#13 화재 수습과정은 더욱 힘들었어. 병원은 복구 불가능한 정도였지. 우리 병원 구성원들은 일할 곳이 아니라, 있을 곳 자체가 없어졌어. 이 난리가 난 줄 모르는 환자들은 예약된 날짜에 병원으로 찾아올 것이고, 우리는 초라하고 망연자실한 모습을 보여 줄 수 밖에 없게 되겠지. 그건 죽기보다 싫었어. 다음날, 병원의 모든 시설과 장비를 철거하고 폐기하기로 결정했고, 머물 곳을 찾아야 했었어. 병원과는 많이 떨어진 위치의 편의점 뒤 허름한 공간에 칸막이를 세우고 임시진료소를 만들었어. 화재 현장에서 다행히 타지 않은 고객 정보 하드디스크를 찾아내어 실장 집에 임시사무실을 만들고 예약 환자들에게 한 명 한 명 전화를 돌렸어. 



#14 엎친데 덮친격으로 화재가 일어난 공간을 사용하고 있던 업체는 화재보험도 제대로 가입해 두지 않아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길도 막막했어. 사건의 원인을 은폐하고 책임을 축소하려는 인간들을 몇 명 만나게 되면서 인간과 시스템에 대한 회의가 들 정도였지. 대자보를 붙이고, 사람들을 끌고 시위하러 다니고, 내용증명을 수십통 보내고, 여기 저기 탄원하고, 망연자실한 구성원들 앞에서는 그래도 약한 모습 보이지 않으려 노력했어. 



#15 그 일은 시간이 많이 지나고 나서야 해피엔딩으로 결론이 났어. 임시병원을 거쳐 새로 만들어낸 병원은 고객들의 더 높은 평가를 받았고, 처절하고 아주 오랜 싸움 끝이긴 하지만, 결국은 사고당사자도 잘못을 인정하고 우리는 적합한 보상을 받을 수 있었지. 박살나기 직전이었던 조직은 어려움을 함께 견뎌내고 난 후 전우애로 똘똘 뭉친 강력한 팀으로 거듭났고, 함께 했었던 그 사람들은 여전히 함께 있는 사람들이 많아.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적당한 편안함 속에서 나의 재능과 노력으로 대충 살아가겠다고 생각했던 나의 생각 자체가 바뀌었다는 점이야. 나는 곁에 있는 사람들이 아니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 지금까지도 내 인생의 가장 신비로운 기억으로 남아 있는 화재 당일 상가관리인을 통해 들려 주신 그 분의 말씀 "욥기를 읽으세요"를 귀담아 듣지 않았다면, 내 인생은 또 어떻게 달라졌을까 (브런치스토리에 내가 쓴 다른 글 <뷰티풀마인드 Beautiful Mind>에 이 이야기들을 써 놓았어. https://brunch.co.kr/@deskshot0520/4)         



#16 어제 밤 자전거로 퇴근하면서 달빛에 비친 도시가 아름답다 생각했어. 하지만, 달빛이 없었다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을, 그저 깜깜한 밤이었을거야. 그 달빛은 태양이 내뿜는 강렬한 햇빛의 반사광이니까. 보이지 않는 밤에도 태양은 달을, 달은 우리를 비추고 있다는 걸 깨달았어. 우리가 느끼는 아름다움은,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일까,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되네.         


- to be continued - 


"해는 달을 비추고, 달은 세상을 비추지. 지금 곁에 없고 보이지 않아서 사라져 버린 것이라고 생각하는 모든 사람들과 모든 일들이 우리들을 지켜주는 힘이 되고 있다는 것을 믿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