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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워드 Nov 30. 2023

트레이드오프: 잃어버린 것들 vs 얻게 된 것들 -3

드립커피를 내리며 든 상념들

요새 새벽마다 만나는 BACHA 드립커피 


#17 커피 취향이 바뀌어가고 있어. 예전의 나는, 미식 취향이라곤 찾아 볼 수 없었지. 커피는 카페인의 각성 작용 때문에 마셨고, 술은 알코올의 이완작용 때문에 마셨을 뿐. 바쁘던 어린 시절엔 주로 믹스커피를 마셨어. 특별한 잇점도 있었지. 배고플 때 도움이 됐거든. 카페인과 설탕과 크림의 달달한 조화가 좋았어. 아침을 거르고 온 날엔 특히 그랬고. 혈당 부스터와 각성작용의 콤보효과로 몇 시간 정도는 버틸 수 있었으니까. 믹스커피 다음엔 블랙커피를 마셨어. 사내라면 당연히 카우보이 복장을 하고 빨간 딱지 말보로 담배를 피워야 하는 것처럼 세뇌시키는 광고처럼, 어른이라면 당연히 블랙커피를 마셔야 할 것처럼 느껴졌지. 믹스커피의 달달한 위안은 영혼 없는 플러팅처럼 느껴져 지겨워진 부분도 있었고. 블랙커피의 시고 쓴 여운이 남는 맛이 좋아졌거든. 



#18 블랙커피는 주로 스틱이나 캡슐로 만들어 마셨지. 최근에는 바샤커피(BACHA Coffee) 브랜드의 드립커피를 알게 되었어. 싱가폴의 유명한 차 브랜드인 TWG Tea의 계열사에서 만든 제품이지. 드립커피는 간편하지는 않아. 뜨거운 물이 담긴 주전자를 준비해야 하고, 조심스럽게 커피 백의 상단을 잘라서 내용물이 쏟아지지 않도록 주둥이가 넓은 컵에 거치해야 하고, 느린 속도로 물을 부어가면서 '기다려야' 하니까. 여과포를 통해서 커피액이 잔 속으로 흘러내리는 속도는 빠르지 않기 때문에, 서두른다고 더 빨리 만들수도 없지. 그런데, 묘한 매력이 있어. '기다림'이지. 기다린다고는 하지만, 사실 몇 분도 안 되는 찰나같이 짧은 순간, 시간을 더 늘리기도, 더 줄이기도 어렵지. 그동안 내 머리 속으로는 온갖 삶과 사람에 대한 단상들이 지나가. 논리보다는 영감에 가깝고, 지성보다는 감성이나 영성에 관한 것들. 오늘은 그리움에 대해 생각했어. 나는 무엇을 그리워하면서 살고 있을까.  



#19 지난 며칠 사이, 새벽마다 쓴 글들을 다시 읽어보았어. 나는 돌아오지 않을 순간들을 그리워하고 있었어. 격렬한 순간, 힘들었던 순간을 함께 해 주었던 사람들을 기억하고, 사랑했고, 드물게는 미워했어. 하지만, 사실 그 순간들은 나의 대뇌피질에서만 어렴풋한 신경전달물질의 흔적으로 남아있었을 뿐, 사실 지워져가고 있는것이지. 조금만 더 지나면 완전히 지워지겠지. 나는 아마 사라져가는 것들을 붙잡고 싶었나봐. 문자로 기억들을 정리해서 인터넷에 박제해 두고 싶었나봐. 그때 그 사람들에게, 표현하지 못했어도 고마웠고 사랑했다고, 간혹은 미워했지만 용서했다고 말해주고 싶었나봐. 죽을만큼 힘들었던 어떤 순간들은 기억을 왜곡해서라도 다른 기억으로 포장해서 전시해 두고 싶었나봐. 그냥 모든 것들이 사라진다면 너무 허탈할 것 같다는 생각이 내 머릿속 백그라운드 작업창에선 계속 돌아가고 있었나봐.



#20 

우리는 '서로 다른 우주에서 와서, 잠시 같은 정거장에 앉아 머물다가 다시 각자의 길을 찾아 떠나는 사람들'이라고 주인공의 입을 빌려 이야기한, 드라마 <이두나!>의 대사처럼 살아가지. 매우 짧은 순간을 공유하고, 대부분의 순간은 잊혀져. 하지만, 어떤 순간들은 또 어떤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도 잊혀지는 것이 아니라 영구적인 흔적을 남겨. 깊은 사랑일 수도 있고, 지워지지 않는 트라우마일수도 있지. 세상 대부분의 일들이 논리적인 방식으로만 해결된다면,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겠지. 동일 시간을 지나는 다양한 사건과 사람들의 시그널은 같은 정도로 신경계에 흔적을 남기고, 같은 속도로 사라져가야 정상이겠지. 하지만, 그렇지 않아. 어떤 순간들은 길을 걷다가 도로로 뛰어든 덤프트럭에 부딪힌 것처럼 예측할 수도 없고 회복하기도 어려운 트라우마를 만들고, 어떤 순간들은 같은 사람과 몇년을 보내었어도 흔적도 없이 머리 속에서 사라져 버리곤 하지. 반면, 격렬하게 기쁜 순간을 공유했던 사람들은 오랜 시간이 지나고 다시 만나도 여전히 동지같고 연인같이 느껴져. 그 당시의 생각과 말과 행동들의 디테일들도 유튜브 리플레이처럼 언제든 기억 속에서 한 점의 오류없이 재생되곤 해.   



#21 사람들은 기질이 다르고 취향도 달라. 나도 역시 그래. 나는 복잡한 문제를 좋아했고, 복잡한 사람들에게 강한 매력을 느끼는 편이었어. 특히, 해결책을 못 찾고 방황하는 트라우마를 가진 사람들을 만날 때는 더욱 그랬지. 단순한 공감을 넘어 격한 감정이입이나, 혹은 현실개입까지 시도하게 되는 경우도 더러 있곤 했지. 의대 본과 3학년이었던 1998년 서울대학교병원에서 정신과 실습을 돌 때 실습학생 배정을 받았어.  정신분열증을 가진 17세 고등학생 남자아이였지. 우리는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어. 가정 환경이 불우했고, 억압적인 부모님 밑에서 자라던 아이였어. 이야기를 듣다보니 이 아이는 피해자로만 느껴졌고, 내가 개입해서 해결해 줄 수 있을 것 같은 망상에 빠졌지. 환자의 정보를 객관적으로 수집하고, 정확하게 분석하고, 의학적인 치료 방법을 제시해야 하는 임무를 가지고 있었는데, 나는 모든 걸 못했어. 면담하던 2주 내내 계속 마음이 불편했고 그 아이 생각만 했어. 잠시 스쳐 지나가는 그 아이의 표정, 말투, 행동 모든 것들이 나의 마음을 아프게 했고, 잠도 잘 못 잘 정도로 숨이 막히고 괴로웠어. 힘들어서 내가 정신과 선생님들에게 상담을 받았어. 전공을 정할 때 정신과는 절대로 지원하지 마라는 이야기를 들었어. 정신이 정상이 아닌 사람들을 주로 만나야 하는데, 나 같은 기질을 가진 사람들은 힘들어서 제풀에 지쳐 쓰러질거라고 했거든.



#22 이후로 25년이 흘렀네. 돌이켜 생각해 보니, 이후로도 나는 해결하기 어려운 상황, 혹은 육체적 혹은 심리적 트라우마를 가진 사람들에게 계속 끌렸어. 일에서도, 사랑에서도 그랬지. 모든 것이 완벽한 사람들에게는 동료 이상의 관심이 느껴졌던 적은 한 번도 없었어. 내가 해결해거나 도와주어야 할 것들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지. 의사가 된 이유도 그런 것과 관련이 있는 것 같아. 내가 고등학교에 다니던 때, 돌아가신 외할머니께서는 나에게 의대에 가지 말라고 하셨어. 생각해 보니, 정신과 선생님들과 똑같은 말씀을 하셨네. 멀쩡한 사람들만 보아도 머리 아픈 세상인데, 아픈 사람들만 보는 일을 하면서 어떻게 살 거냐고 하셨거든. 외할머니도 아마 내 기질을 매우 잘 파악하고 계셨나봐.  



#23 외할머니 뜻을 존중해서 대학입시 첫 해는 서울대 건축과를 지원했지만, 떨어졌어.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재수때에는 그냥 내 뜻대로 서울대 의예과에 지원해서 합격했어. 그리고, 안과의사가 되고 녹내장 전문의가 되었지. 생각해 보니, 지금은 기술의 발달로 녹내장 파트의 인기가 많이 좋아졌지만, 내가 지원했던 2004년에는 안과에서는 인기 없는 파트였어. 당시 녹내장 파트는 지금에 비해서는 약도 기술도 원시적인 수준에 불과했기 때문에 녹내장은 실명하는 질환이라는 인식이 팽배했고, 돈도 잘 못 버는데에다가 환자들도 까다롭다고 소문이 나 있었기 때문이었지. 왜 네가 굳이 녹내장 파트로 가느냐고 뜯어 말린 교수님도 계셨을 정도였으니까. 그런데, 나는 그런 것들이 좋았어. 남들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잔뜩 쌓여 있다는 것, 남들이 보기 싫어하는 환자들이 잔뜩 있다는 것. 그 이상으로 나를 흥분시키는 일은 없었거든.      



#24 지금의 나는,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녹내장 환자들을 만나고 있고, 다양한 기질을 가진 70여명의 병원 구성원들과 함께 일하고 있어. 하지만, 기질은 바뀌지 않나봐. 나는 모든 것들이 원만하게 돌아간다고 생각할 때, 오히려 나는 행복하지 않게 느껴지기도 해. 누가 보아도 예후가 달라지지 않을 초기 녹내장 환자나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이는 사람들만 내 곁에 있다는 것은 내게 큰 만족감을 주지는 못해. 그런 사람들만 곁에 있으면 내가 더이상 복잡한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부족해지고 있나 하는 자책감이 무의식적으로 들거든. 반면, 다른 병원들에서 해결못한 심각한 합병성 녹내장, 백내장으로 내원하는 사람들, 삶에서의 여러가지 상처들로 심리적 트라우마를 가진 사람들, 건강이 쇠약해지고 병마와 싸우는 사람들을 만나면, 여전히 나는 빠져들어. 내가 도움이 될 수 있는 기회의 순간이 왔다고 느끼기 때문인 듯 해.    


#25 이제는 어떻게 세어도 50인 나이가 되었네. 드립커피를 마시면서 드는 여러가지 생각들, 요새 며칠간의 새벽 글쓰기를 통해 이제는 예전엔 막연하게 느껴지던 어떤 것들을 조금씩 알게 되어 가는 것 같아. 


삶은 믹스커피처럼 마냥 달달하지만은 않다는 것. 삶은 스틱이나 캡슐커피처럼 심플하지도 않다는 것. 삶은 무턱대고 들이받고 개입하는 것이 아니라, 드립커피를 내리는 순간처럼 생각하며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 삶은 깊은 트라우마를 가진 사람들이 오히려 더욱 멋지게 만들어 나갈 수 있다는 것. 그런 사람들이 한걸음씩 내딛는 것을 도와주는 그런 삶이 나에겐 행복하다는 것.   


마지막으로, 삶의 여러 과정들을 거치면서 하나 하나 깨닫게 해 주시는 하느님께 감사드린다.

 

- end - 


오늘 새벽 드립커피를 내리면서 마무리한 이 시리즈 <트레이드오프: 잃어버린 것들 vs 얻게된 것들>의 끝은 저에게 큰 힘을 준 욥기의 구절로 마무리합니다. 모두 사랑합니다. 


"저는 알았습니다. 당신께서는 모든 것을 하실 수 있음을, 

  당신께는 어떠한 계획도 불가능하지 않음을!" (욥 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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