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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처리형 Oct 07. 2019

선택하지 않은 길이 더 아름다워 보이는 이유

버킷리스트는 없다

버킷리스트: 죽기 전에 꼭 해야 할 일이나 하고 싶은 일들에 대한 리스트


 몇 해 전, 한 영화를 통해 버킷리스트라는 말이 유행했던 적이 있다. 불치병에 걸린 노인 2명이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버킷리스트'를 만들어 하나씩 실행해 간다는 내용의 영화였다. 그 영화를 본 후 자연스레 나는 죽기 전에 무엇이 꼭 해보고 싶은지 혼자 상상하며, 나만의 버킷리스트를 작성해 본 일이 있다. 해보고 싶었지만 아직 하지 못한 일들을 떠올려보고, 또 그걸 해보는 상상을 하는 일 자체가 소소한 즐거움이었다.


 얼마 전 노트 정리를 하다 그때 적어둔 버킷리스트를 우연히 다시 보게 되었다. 약 스무 개 남짓, 수년 전의 내가 적은 ‘죽기 전에 해보고 싶은 일’이 적혀 있었다. 그동안 어떤 항목을 달성했을지, 호기심 어린 마음으로 살펴보던 나는 놀라운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여러 해가 지난 지금까지 리스트에 적혀있는 일들 중 단 한 가지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 사실에 생각이 멈춘 순간, 내 마음속에 확신이 하나 생겼다. 아마 그 리스트의 적혀 있는 대부분의 것들을 앞으로도 나는 하지 않을 거란 확신.


 삶은 언제나 선택의 연속이다. 그리고 의외로 마음만 먹으면 웬만한 일들은 모두 선택할 수가 있다. 단지 그 일을 선택했을 때의 여러 가지 장단점을 살펴본 후 선택하지 않을 뿐이다.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면 언제든지 그만둘 수 있다. 이 글을 읽는 지금 이 순간에도 가능하다. 만나는 사람도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 당장 오늘 만나 절교를 선언할 수도 있다. 통장에 돈이 조금밖에 없어도, 여행을 갈 수 있다. 풍족한 여행이 되지는 않겠지만, 가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얼마든지 갈 수 있다. 법에 위반되는 일이라 해도 내가 선택만 한다면 못 할 것은 없다. 단지 그 뒤에 져야 할 책임을 자기가 견딜 수 있다면 말이다. 이건 이래서 못해, 저건 저래서 못해 라며 포기했던 수많은 선택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지금이라도 정말 하고자 하는 마음만 있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들이다. 단지 그 일을 선택함으로써 내가 감내해야 할 수많은 불편과 불이익이 싫어서 스스로 선택하지 않았을 뿐이다. 


 버킷리스트 속 많은 '포기한 선택'들도 실제로는 마음만 먹는다면 얼마든지 실현할 수 있는 일들이다. 결코 리스트 속 잠들어 있는 꿈이 아니다. 그럼에도 나는 수년 전에도 지금에도 그것들을 선택하지 않고 있다. 그것은 그 선택들이 나에게 이득보다 고통을 더 주는 일이기 때문이다. 


 선택하지 않았던 길이 더 화려해 보이는 건 그 길이 내 상상 속에 있기 때문이다. 그곳에선 슬픔도 없고 괴로움도 없기에 언제나 현실보다 아름답다. 버킷리스트 속 많은 선택들 역시 내 상상 속에 있을 때 더 아름답다. 선택에 따른 괴로움은 없고, 이룰 때의 즐거움만 있기 때문이다. 현실이 되는 순간, 상상 속 세계와는 다르게 감내해야 할 고통이 뒤따라온다.


 이러한 이유로 인생에서 버킷리스트는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 지금껏 하지 않았던 일이라면 다시 돌아간다 해도 하지 않을 테니까. 하지 못했던 일들에 대한 후회가 아니라 해왔던 일들에 대한 감사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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