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날 한낮의 사색
가끔 점심을 일찍 먹은 날이면 운동삼아 회사 근처를 산책한다. 주로 이용하는 코스 중 하나가 정동길인데, 우연찮게 덕수궁이 무료개방 기간 중인 것을 발견하고는 별생각 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지난봄 덕수궁 미술관에 보고 싶은 전시회가 있어 들렸던 이후로 오랜만이었다. 느릿느릿 산책하듯 여러 건물들을 둘러보다 문득 예전 이곳의 주인이었던 사람들은 지금 어느 누구도 살아있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얼마나 대단한 권세를 누렸던, 얼마나 많은 것을 가졌었던, 그들은 지금 모두 죽고 없다. 그들이 가졌던 모든 소유물 역시 그들의 죽음과 함께 사라지고 없다. 한때 모든 걸 가졌다 하더라도 죽어 사라진 사람보다는 별로 가진 것은 없지만, 지금 살아서 이곳에 서있는 내가 훨씬 행복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생각이 들자 바득바득 사는 것에 대한 욕망도 조금은 누그러졌다. 옛날 이곳을 들락거렸을 권력가들, 정치인들 그들은 살아있는 동안 조금이라도 더 많은 권력과 재산을 얻고자 온갖 욕심 속에 살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랬던 그들은 지금 모두 죽어 지하에 묻혀있다. 그들의 욕망도 그걸 위해 타인을 짓밟아가며 했을 노력도 그들의 죽음과 함께 모두 묻혔다. 이제 와 그 모든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마음이 누그러진 덕분인지, 아름다운 새소리와 나뭇잎이 바람에 사르륵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어떤 음악보다도 더 조화롭고 아름다운 소리였다. 매일 이어폰을 귀에 꽂고 다녔던 시기가 있다. 그때는 저 아름다운 자연의 소리들을 모두 놓치고 살았을 것이다. 다행히 지금 이 소리들을 들을 수 있어 행복하였다.
덕수궁의 뒷문은 정동길과 덕수궁 돌담길로 이어진다. 정동길에는 유독 붉은 벽돌의 건물들이 많다. 옛 건축양식의 흔적들이다. 나는 그 오래된 느낌 나는 붉은 건물들이 좋다. 보고만 있어도 과거에 와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 그 앞에 서서 그곳을 스쳐갔을 수많은 사람들의 일상을 떠올려본다. 그곳에서 일하고 부대끼고 오고 가고,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저 건물에서 잠시 적을 두었다 갔겠지. 그런 상상에 빠지다 보면 묘한 기분이 든다.
한때의 산책을 즐긴 후, 덕수궁 돌담길을 빠져나오는 길에 양쪽으로 늘어선 가로수 위에서는 수컷 매미들이 온 힘을 다해 울고 있었다. 엄청난 진동에 내 몸까지 부르르 울릴 정도로 큰 소리였다. 그 압도적인 합창으로 이 세상의 다른 소리는 모두 묻히고, 한순간 다른 세상에 서있는 듯한 환희를 느꼈다. 그들은 세상에 나오기까지 수년간을 땅속에서 보낸다. 우리가 아는 매미가 되어 이 세상에 존재하는 시간은 여름철 그중에서도 지극히 짧은 한때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의 일생으로 봤을 때 지상에 있는 시간은 그들의 생에서 거의 마지막에 가깝다. 하지만 그들은 그런 예정된 죽음 따위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고 살아있는 지금 온 힘을 다해 운다. 그렇게 열렬하게 울다 자신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암컷과 교미를 하고는 장렬하게 죽는다. 살아있는 짧은 시간 온몸으로 살다가 온몸으로 죽는 것이다.
생야전기현(生也全機現) 사야전기현(死也全機現)
불교에서 전해 내려오는 말이다. 살아있을 때는 온몸으로 철저히 삶에 치중하고, 죽을 때는 생에 어떤 미련도 없이 갈 수 있는 삶을 살라는 뜻이다.
그 순간에 그 길에서 나는 살아있음의 한가운데 서 있었다. 지금을 완전하게 사는 작은 생명들이 나에게 삶과 죽음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 주었다. 적어도 내 삶에서 만큼은 주변이 아니라 정중앙에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치열하게 그리고 처절하게, 살아있음 그 한가운데를 걸어 보고 싶어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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