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타그램
브런치를 시작함과 동시에 인스타그램을 통해서는 시와 비슷한 것을 쓰고 있다. 시가 아니라 시와 비슷한 한 것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시의 구조와 운율 미를 가지지 못한 시의 형태만을 살짝 빌려온 '짧은 글'이기 때문이다. 한 때, 훌륭한 시인 분들이 쓴 시들을 읽으며 언어적 표현의 극도의 아름다움을 경험하면서, 나 역시 이런 시를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래서 많은 습작시들을 쓰면서 그 아름다움을 모방하려 애쓰고는 했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그 시들을 읽으면 민망함이 아랫배에서부터 올라온다. 거기에는 그 어떤 깊은 사색의 흔적도 없고, 그저 겉으로 드러난 표현의 아름다움만을 추구하려 한 맹목적인 꾸밈만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냥 아름다울 것 같은 단어들의 무의미한 조합. 딱 그뿐인 글들이었다.
인스타그램(이하 인스타)을 시작하면서는 조금 다른 글(시가 아니다)들을 쓰고 있다. 인스타는 10대 20대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SNS이기 때문에 다른 매체와는 문법이 조금 다르다. 직관적이어야 하고, 한눈에 띄어야 한다. 사진이 주가 될 수밖에 없는 곳에서 글을 쓰고자 한다면, 필연적으로 짧아져야 하고 간결해져야 한다. 또한 젊은 세대가 주가 되는 만큼 단어 선택이 쉬어야 하고, 단숨에 이해가 되고 공감이 되는 글이어야 한다. 표현적 아름다움을 추구하고자 온갖 멋진 말들로 꾸며놓아 봤자, 대부분의 인스타 세대에게는 '교과서에 나오는 시'처럼 여겨지고 공감을 받지 못한다.
그런데 이렇게 인스타의 문법에 맞추며 글을 쓰는 과정에서 오히려 많은 것들을 배우고 알게 되었다. 인스타에서는 실생활에서 사용하고 있는 실용적인 단어와 실용적인 문장을 활용해서 내 생각과 감정을 아름답게 표현해야 하는데, 이건 이 나름대로 어려운 점이 많았다. 우리가 실생활에서 사용하고 있는 단어들은 아무래도 아름다움과는 조금 거리가 멀다고 할 수 있는데, 이런 단어들을 활용해서 최대한 아름다운 표현을 하려고 하다 보니 의외로 쉽지가 않은 것이다. 소위 말하는 '꾸미지 않은 아름다움'을 표현해야 한다. 물론 정말로 꾸미지 않은 글은 투박하고 멋이 없으니, 꾸미지 않은 듯 잘 꾸며야 하는 것이다.
또한, 짧고 간결해야 한다는 점도 글을 굉장히 어렵게 만드는 제약이었다. 인스타에서 사람들이 게시물에 눈길을 주는 시간은 기껏해야 1초 내외에 불과하다. 이 짧은 시간 안에 눈길을 끌 수 있어야만 비로소 글이 읽힌다. 즉, 단숨에 눈에 들어오지 않으면 아예 글을 읽어보지도 않는다는 뜻이다. 배경이 되는 사진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일단 글이 한눈에 들어올 만큼 간결해야 한다는 점이 필수이다. 이 간결해야 한다는 제약이 글을 어렵게 만들지만 반대로 아름답게 만들어 주기도 한다. 간결해지려면 필연적으로 불필요한 단어와 문장을 모두 없애야 한다. 최대한 고르고 골라 표현하고자 하는 것의 결정체만을 남겨야 한다. 이렇게 글을 '조각하는' 과정에서 아름다움이 생겨난다.
물론 가끔은 짧고 실용적인 단어들로만 쓰인 짧은 글이 아니라 멋들어진 단어들을 한 껏 사용한 시를 쓰고 싶어 지는 경우도 있다. 물론 그렇게 쓰인 시들은 대부분 내 글 창고 속에 온전히 보관(?) 된다. 나에게는 아직 그런 단어들을 다룰 내면의 깊이가 부족한 것인지 무언가 엉성하고 조잡하다. 목검을 들어야 하는 사람이 진검을 들고 휘두르는 것 같은 느낌이다. 그래서 아직은 나에게 더 맞는 쉬운 단어와 쉬운 표현들로 글을 쓰고자 한다. 당분간은 계속 그런 글들을 쓰게 될 것 같다. 나에게 맞지 않을 말을 입힌 글은 결국 아름다울 수 없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인스타그램을 통해 글을 쓰기 시작한 건 정말 잘한 일 같다. 내가 가진 그릇으로만 담을 수 있는 말들이 있고, 그렇게 쓰인 글을 더 좋아해 주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처리형 인스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