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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처리형 May 25. 2020

하나

어린시절의 첫사랑

 하나야, 이 작은 꼬맹이야! 어젯밤 꿈에서 나는 일곱 살 꼬마로 돌아가 너와 다시 만났다. 3월, 봄이 푸르른 아름다운 날에 처음 본 너는, 봄처럼 노오란 원피스를 입고 있었고, 나는 첫눈에 반했다. 꿈에서 만난 우리는 그때처럼 또 한 번 짝꿍이 되었다. 내 손을 잡고는 어른이 되면 꼭 자기와 결혼해야 한다며 쫑알대는 모습이, 먼지 가득한 앨범에서 찾아낸 그리운 사진처럼 눈물 나게 아렸다. 그런 너를 꿈속에 남겨 두고 나 혼자 돌아오기가 너무 힘들었단 말이지.


 봄이 여름처럼 뜨거운 오후에, 나는 너의 생각이 나서 걷지 않을 수 없었다. 가만히 있으면 가슴이 찜땅 뛰어오르는 것 같아, 참을 수없이 바깥을 돌아다니고 싶어졌다. 한참을 걷다 보니 땀이 우수수 흘렀고, 흐르는 땀과 함께 무더웠던 가슴이 조금은 시원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너무 반짝인 하늘에 눈을 들어보니 작은 구름 여럿이 철새 닮이로 무리 지어 움직이고 있었다. 구름 1호, 구름 2호, 구름 3호, 나는 그중 가장 귀여운 구름 하나에 이름을 붙여 주기로 했다. 너의 이름으로 말이지.


 이름을 붙여주고 나니 그 구름이 마치 너라도 되는 것 마냥 사랑스러워졌다. 하지만 그런 보람도 잠시, 이내 다른 친구들과 합쳐진 너는 금세 다른 모양을 한 구름이 되었다. 그 구름을 너라고 부를 수 있을까? 방금전 까지 하나였던 너는 여전히 하나일까? 이젠 하나가 아닌 걸까? 구름 3호였고, 하나였고, 하나가 아니게 된 구름처럼, 아무것도 아니었고, 우리였고, 우리가 아니게 된 우리란 말이지.


 헤어지던 순간을 기억하니? 한 손을 엄마에게 꼬옥 매달린 채, 남은 한 손으로 열렬히 인사하는 너의 작은 손이 살랑대던 그날. 졸업식이 끝난 후 함께 서있던 유치원 입구는 우리가 늘 만나던 장소가 아닌, 이제 영원히 안녕하는 장소. 얼마나 마음이 서운했던지, 너를 많이 돌아보지 못해 미안해. 보면 눈물이 날 것 같아 그랬어. 그래서 절대 돌아보지 않으려고 꾸욱 눌러 담고 가다가도 그새 그리워져 3번이나 너를 돌아본 거야. 그리고 그 3번 모두 너는 울고 있었단 말이지.


 봄이 푸르른 아름다운 날이면 가끔 그날처럼 너의 생각이 나. 너는 봄처럼 노오란 원피스를 입고 있었고, 나는 첫눈에 반했다. 나의 나이가 되었을 너를 상상하는 건 너무 어려운 일이라, 그냥 꼬맹이였던 너를 생각해 버리고 만다. 서로의 손을 잡고 함께 뛰어놀던 우리는, 다락방 한켠에서 찾아낸 추억속 장난감처럼 눈물 나게 빛났다. 그런 너를 나는 꼭 한번 다시 만나고 싶단 말이지.

  -1988년 어느 소풍지에서 -



-처리형 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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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리형 인스타-

https://www.instagram.com/churihy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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