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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처리형 May 11. 2020

눈에서 꽃향기가 나던 사람

너는 참 반짝이는 사람이었다. 아름답다는 말을 너에게 하려고 하면 입에 걸린 말끝 감촉이 너무 좋아서, 차마 밖으로 뱉어내지 못하고 입안에서 한참을 굴려보고는 했다.


내가 너를 처음 보았을 때, 놀라움에 일순간 숨이 멎게 가슴이 차올랐던걸 기억한다. 어떻게 사람의 눈에서 꽃향기가 날까? 너의 얼굴은 침착하게 고요했고, 살아오며 길들여왔을 모든 착한 마음씨가 깨끗한 눈동자에 다 담겨있었다. 


너는 말보다 눈으로 얘기했다. 네가 말을 할 때면 나는 너의 입술보다는 눈을 보는 것이 더 좋았다. 너의 입에서 나온 단어들이 어떤 모양을 하고 있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너의 눈을 보고 있는 동안이라면 네가 무슨 말을 하건, 그것들이 나에게는 다 사랑 묻은 낱말들이 되었다.


처음 만난 날, 몇 마디 말을 주고받은 그 짧은 시간 동안, 나는 이미 너를 뜨겁게 관심하게 되었다. 아니지. 네 눈에 담긴 그 많은 사랑과 처음 마주한 그 순간, 나는 벌써 한 생각으로 너를 집념하고 있었던 건지도 몰라.


봄날의 햇살 가득 반짝이는 유채꽃이라면 이럴까. 여름의 뜨거운 열기 위로 내리는 여우비라면 이럴까. 가을의 쓸쓸한 길모퉁이로 쌓이는 낙엽 잎이라면 이럴까. 겨울의 정적한 바다 위로 사라져가는 일몰 빛이라면 이럴까. 


그 어떤 아름다운 것들을 갖다 놓는다 하여도, 내가 사랑한 너의 두 눈과 비교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어떤 아름다운 말을 가져와 꾸며도 너에게서 나는 담박한 향기를 온전히 다 표현해 낼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여러 날들이 가고 여러 계절이 가는 동안, 나는 늘 같은 자리에 서있는 한결같은 나무처럼, 그렇게 너의 옆에 머물렀다. 이제 그 시간들은 모두 지나간 것이 되었고, 우리는 더 이상 함께 하지 못하지만, 나는 너와의 인연으로 묶인 끈이 아직 다 끊어지지 않았음을 믿는다.


네가 올 수 없다면 나를 불러줘. 내가 갈게. 한 우주가 다 지나기 전에 우리 기어코 다시 만나자. 너와 내가 처음 봤던 그곳에서 꽃이 지는 시간에 다시 만나자. 꽃과 함께 서로의 모든 마음이 같이 시들었다 하더라도 괜찮아. 너의 눈에서 불어오는 봄꽃 같은 향기로 그새 다시 피어오를 테니. 우리 처음 만난 그날처럼...



-처리형 유튜브-

https://www.youtube.com/channel/UCMKAfCDsK4pWxrz2USDvAag


-처리형 인스타-

https://www.instagram.com/churihy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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