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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처리형 Apr 28. 2020

만나러 가는 길

봄바람 찬가

 얼굴에 닿은 공기가 솜사탕처럼 달게 느껴지는 어느 황홀한 오후에, 나는 너를 만나러 간다. 노란 프리지어 꽃들이 봄의 시작을 알리는 우주의 신호를 열렬하게 발산하고 있었고, 열어놓은 창문 사이로는 아직 완전히 데워지지 않은 도로의 미지근한 바람이 쉴 틈 없이 들락거렸다.

 

  너에게로 가는 길은 늘 그랬다. 매일 다시 태어난 것처럼 새롭게 설레었다. 오늘은 무슨 옷을 입고 나올까. 어떤 머리를 하고 있을까. 볼을 물들인 핑크색 블러셔는 더 진할까 연할까. 네가 좋아하는 검정 리본 구두를 오늘도 신고 나올까. 이런저런 상상에 잠기다 보면, 양옆을 지나는 풍경들은 흐릿한 배경이 되어 흘러가버린다. 그렇게 수십 번은 더 지났을 이 길이 내게는 매일 또 새롭다. 너의 집 앞에 차를 세워두고 네가 내려오기를 기다리는 그 잠깐 동안의 공백을 참지 못하고 나는 벌써부터 네가 그리워진다.


"다녀오겠습니다"

 문이 열리고, 너의 찰랑거리는 목소리와 함께 그리운 풍경이 나를 반긴다. 네 어머니의 밥 짓는 냄새와 네 아버지가 보고 있을 TV의 웅성거림이 어린 시절, 늦은 저녁까지 친구들과 놀다 집에 돌아와 문을 열 때의 기억과 닮아있다. 한없이 정겨운 장면에서 빠져나온 네가 2층 창문으로 얼굴을 내민다. 갈색 앞머리를 살짝 왼쪽 귀에 얹히고서는 나를 보며 웃는다. 얼른 내려오라며 손짓하자, 강아지처럼 총총거리면 뛰어내려온다. 그런 너를 말없이 마주 보다 살포시 품 안으로 그러안는다. 무슨 일 있냐며 놀란 눈을 하는 너. 

    

 그날, 그 계절의 봄은 한순간이었지만, 잠시 동안 우리 위로 멈춰있던 햇살의 온기와 4월의 산들바람이 어깨 위에서 사뿐히 쌓여가던 완벽한 한때를 나는 아직 잊지 못한다.



-처리형 유튜브-

https://www.youtube.com/channel/UCMKAfCDsK4pWxrz2USDvAag


-처리형 인스타-

https://www.instagram.com/churihy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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