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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래도 May 11. 2019

아웃포커스

인스타그램을 넘기다 보면 세상에 예쁜 것이 참 많다. 사진 속 멋진 풍경이나 음식과 사람의 색감과 표정이 생생히 살아나며 나의 시각과 허기를 자극한다. 가만히 보면 주로 사람이나 꽃을 찍은 사진에 많이 사용되어 시선을 자극하는 주범 기법은 '아웃포커스(Out of focus)'다. 


포커스의 정도를 '심도'라고 하는데, 얕은 심도로 배경을 흐릿하게 하고 주인공을 도드라지게 하는 사진 기법을 '아웃포커스'라고 한다. 그래서 심도가 얕게 찍히는 렌즈에는 사물이 예쁘게 찍혀, 여자 친구를 주로 찍는다는 뜻의 '여친 렌즈'라는 애칭도 달린다.


이와 달리 눈으로 보듯 골고루 초점이 맞게 촬영하는 것을 팬포커스(Pan focus)라고 하는데, 보도 사진은 주변 배경과 중심인물을 같이 잡아 맥락을 이해시키기 위해 팬포커스를 주로 사용한다.


아웃포커스 사진은 추억을 닮았다. 추억 속 그 사람은 희미한 기억의 배경을 뒤로하고 또렷이 떠오른다. 기억 속 혼잡한 사람과 풍경들 사이에서 환하게 도드라진다. 어린 시절 부모님, 친구들의 추억, 그리고 첫사랑... 아스라한 배경을 깔고 슬그머니, 그러나 선명히 기억 속에서 등장한다.

아웃포커스는 주인공을 돋보이게 하지만 대신 배경을 희생한다. 예쁘게 피어있는 한 송이 꽃에 포커싱하는 순간 주위의 다른 꽃 들은 시선에서 사라진다. 우리 아이에 초점을 두고 사진을 찍으면 주변 아이들과 다른 가족들은 순간 희미하게 뭉개져 보인다. 그래서 아웃포커스는 최고이거나 나의 것이 아니면 무관심하게 없는 취급해버리는 요즘 세상과도 닮았다.


활짝 핀 꽃 주위의 덜 핀 꽃이나 지는 꽃들, 카메라를 바라보는 우리 아이 주변 다른 아이들도 다 같이 바라보고 보듬어주는 심도 깊은 사진이 나는 좋다. 모든 사물과 사람은 혼자 도드라지며 의미 있지 않으며, 같은 배경 속에 어울려 존재한다. 인간의 시력은 진화를 통해 점점 심도를 더해왔다. 인생의 중요한 순간 찍은 사진들에는 같이한 모든 이들이 또렷이 담겨있다.

어차피 우리 추억 속에서 아웃포커스는 자동으로 이루어진다. 우리가 기억하고 싶은 예쁜 모습은 사진이 아니라 기억으로, 좋은 향기와 함께 오래오래 남을 것이다. 눈을 감아도 또렷이 떠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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